‘노란봉투법’ 무리한 교섭 강제?…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왜냐면] 김소연 |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하청노동자가 ‘진짜 사용자’인 원청과 교섭할 방법을 마련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무리한 교섭 강제”라는 놀라운 주장이 제기됐다. 노란봉투법에는 ‘사용자’ 개념을 ‘노동자의 노동조건, 수행업무, 노조 활동 등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는 자’로 확대한 조항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월19일 열린 ‘노동의 미래 포럼’ 3차 회의에서 “정부는 원하청 간 상생협력을 저해하는 규제는 개선하고, 연대에 대한 인센티브는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 본회의에 직회부된 노란봉투법을 겨냥해 “최근 노동조합법 개정안과 같은 무리한 교섭 강제가 아닌, 원하청 노사 간 자율적인 협력에 기반한 이중구조 개선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정부 입장을 밝혔다. 이정식 장관의 해법은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한 경우, 자신이 소속한 회사에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단체교섭’이라는 장을 통해 논의가 펼쳐진다. 우리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도 마찬가지로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과 복지 등을 개선시켜 왔다. 더 나아가 업종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써 ‘산별교섭’이라는 방식을 통해 지나치게 긴 영업시간과 정기휴점일 부족, 부적정한 냉난방, 화장실·휴게실 부족 같은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산업 전반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산별교섭이란 기업별 단체교섭 체제를 넘어 해당 산업 노동시장에 적용할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노사 간 단체교섭을 산업 단위에서 벌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직접 사용자’인 소속기업은 자신들에게 권한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는 산업 특유의 구조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데, 조합원들의 근무지인 백화점·면세점은 ‘직접 사용자’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임차’한 장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임대인’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공간의 영업시간이나 시설물 운영에 대해 ‘임차인’인 자신들이 개입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직접 사용자’는 근무지에 상주하지도 않는다.
한편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임대인’, 즉 백화점·면세점은 자신이 우리의 ‘직접 사용자’가 아니므로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올해만 해도 벌써 다섯 차례의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고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백화점·면세점은 우리 같은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자신들은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에게 일상적으로 업무 지시와 교육을 하고, ‘임대인’의 지침에 따르라고 요구하며 감시한다. 서로 모순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임차인’들은 자신이 을이고 ‘임대인’인 백화점·면세점이 갑이라는 핑계를 대며 교섭할 수 없다고 한다. ‘임대인’들은 계약 관계가 없으므로 교섭하지 않겠다고 한다. 서로의 핑계만 대는 갑과 을 사이에서 병 혹은 정의 위치인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영원히 교섭할 수 없다는 것인가?
세를 준 집의 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집주인이 보수해야 한다. 세입자가 불편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할 책임이 집주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도 고장에 대해 집주인에게 마땅한 보수를 요구할 수 있다. 집주인은 갑이고 세입자는 을이라서 집주인 눈치가 보인다는 핑계를 대면서 병과 정의 불편을 외면하는 것은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결국 을과 갑이 각각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만 병과 정이 겪는 고충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갑도 을도 해결의 의지나 책임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병, 정인 우리들은 끊임없이 갑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수차례의 교섭 요구에도 갑은 요지부동이다. 상대방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다른 손을 아무리 휘둘러도 손뼉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방의 노력만으로 “원하청 노사 간 자율적인 협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갑과 을 간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 헌법상 노동3권이며, 노조법은 이를 구체화한 법이다. 그렇다면 갑-을보다 불균형이 더욱 심한 갑-병, 갑-정의 문제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노란봉투법’이다.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의 교섭할 권리를 위해 국회와 정부가 하루빨리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고 실행하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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