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왜 극우로 퇴행할까 [권태호 칼럼]
[권태호 칼럼]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이명박 정부 말기,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엠비(MB)를 그리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민간인 사찰 등으로 정권이 궁지에 몰리는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았던 터라 그때는 마지막 집착 정도로 들렸다. 그런데 몇년 뒤 ‘불통’ 박근혜 정부에서 그 말이 떠올랐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박근혜 정부’를 그리워할 날이 오리라고는 또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그래도 이 정도로 난폭하진 않았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총연맹 행사에 참석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종전선언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반국가세력”이라 칭했다. 다음날에는 “김정은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지명하고, ‘군인 마스크를 벗게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군인을 (코로나19)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한 셈’이라고 한 유튜버 김채환(62)씨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에 임명했다. 그 이전에도 윤 대통령은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등 다양한 극우 인사들을 어울리지 않는 직책에 임명해왔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이런 극우 일변도에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미약하나마. 무엇이 윤 대통령을 이데올로기의 화신으로 만들었을까. ‘철학의 빈곤 속에 극우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본 걸까’, ‘극우 본색을 드러낸 걸까’.
6월 4주차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36%다. 대통령들은 늘 여론조사에 “일희일비 않는다”고 하지만, 과하게 일희일비한다. 그래서 여론 추이를 보며 발언 수위를 조정하고, 정책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 정도 지지율이면 ‘중도 확장’으로 향하는 게 공식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일희만 하고, 일비는 않는 듯하다. 왜 이러는 걸까.
나름의 소명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는 여권 인사들이 꽤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 선언을 할 때 부르짖은 말이 “검수완박, 부패완판”이었다.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줬으니 이제 ‘부패 카르텔’ 척결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검사 정체성을 대통령직에 그대로 끌고 온 것이다. 세상은 검사와 범죄자로 나뉘지 않는데, 컬러텔레비전에 흑백 화면만 송출하고 있다. 정치를 모르는데 알려고도 않는다. 정치란 타협과 조정의 산물인데 ‘정치적’이란 단어를 술수로 인식하니, 오직 수사에 매진할 뿐이다.
두번째로는, 아무도 제어를 못 하기 때문이다. ‘59분’이란 별명처럼 어떤 회의에서도 혼자 다 말한다는 얘기가 끊임없다. 여기에 검사 시절 습성인 격하고 거친 말로 사람들의 혼을 빼놓으니, 오랜 신뢰관계가 탄탄히 쌓이지 않았다면 감히 앞에서 토를 달지 못한다. 그러니 한쪽 방향으로 폭주하더라도 제지는커녕 “대통령에게 많이 배운다”며 추임새를 넣는다. 대통령에게 오히려 해가 되고 있다. 대통령실, 국무위원들의 직무유기다. 자기 확신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구조다.
세번째로는, 한국 사회 지배 엘리트의 자장에 매몰돼 있다. “태극기 부대에는 아스팔트 우파들만 있는 게 아니라 교수 출신, 서울대 출신 은퇴자들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그렇다. 극우 유튜브의 텃밭이 60대 이상 노령 은퇴층이고, 이들 중에는 식자층과 부유층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은 이들이다. 윤 대통령은 그 속에 있다.
네번째로는, 검찰의 존재다. 30%대 대통령에게 여당이 이렇게 꼼짝 못 하는 경우는 정권 초창기임을 고려해도 드문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당내에 친위 세력이 애초부터 깊게 자리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도 없었던 ‘검찰’이 있다. 야당을 향하는 칼날이 언제 나를 향할지 알 수 없는 탓에 한번 더 자제하게 되고, 한번 더 주춤하게 만든다. 군사정권에서 군과 중앙정보부의 역할을 지금 검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이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영 양극화로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 강경대응 이후로 노조 때리기, 일본 외교 문제, 킬러 문항, 오염수 논란에도 지지율이 더 빠지지 않는 걸 보면서 특유의 강공이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층 가운데 ‘합리적 중도’ 세력은 상당수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건 극우 세력과 반민주당 세력이다. 윤 대통령의 방향성이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더불어민주당은 싫은 이들이 윤 대통령에게 볼모 잡혀 있다. 그래서 적절한 극우 행보가 총선에 불리하지 않다는 고려도 깔려 있다. 진짜 ‘극우 행보’는 아직 안 온 것 같다.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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