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휩쓴 '분노 시위' 벨기에·스위스로 번졌다
6일간 3000명 이상 체포·구금
파리 외곽도시 시장 자택 피습
마크롱, 220개 지역 시장과 회의
인종·종교·빈곤 문제 겹쳐 폭발
이민자·난민 많은 유럽 촉각
알제리계 10대 소년이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폭력 시위가 2일(현지시간)까지 6일간 이어졌다. 프랑스 내부에 곪아 있던 인종·종교 갈등이 터져 나오면서 시위가 폭력적으로 치닫는 가운데 벨기에와 스위스로까지 번지며 전 유럽이 긴장하고 있다.
유족 호소에도 시위 이어져
프랑스 내무부는 2일 시위 참가자 가운데 157명을 체포했다. 1일에는 719명이 체포되는 등 지금까지 3000명 이상이 구금됐다. 2일 파리 인근 도시인 라이레로즈에서는 뱅상 장브룅 시장의 집에 시위대 차량이 돌진해 불이 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피하는 과정에서 부인의 다리가 부러지고 아이 한 명이 다쳤다. 시위대가 차량과 건물을 불태우는 등 과격하게 나오자 정부는 특수부대까지 투입해 총력전을 벌였다.
알제리계 17세 소년인 나엘이 지난달 27일 사망한 사건이 1주일 가까이 프랑스 시위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엘은 검문을 피해 도주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는데, 이 상황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그동안 차별받아온 아랍·이슬람계 이민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 나엘이 북아프리카계였기에 교통 검문을 당하고 총에 맞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여겨 마음속 분노에 불이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의 한 독립민권사무소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나 아랍계 남성이 5년간 경찰로부터 5회 이상 불심 검문을 받은 비율은 백인 남성보다 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인 나엘의 할머니 나디아는 프랑스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시위대)은 나엘을 핑계 삼고 있으며 우리는 사태가 진정되길 바란다”며 진정할 것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일 밤 총리 등 관계부처 장관들과 대책회의를 열었다. 3일엔 상·하원 의장, 4일엔 시위가 발생한 220개 지역 시장들과 만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및 해결책을 찾을 예정이다.
프랑스 이웃 국가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일 밤 스위스 보주(州) 주도인 로잔에서 약 100명 규모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시위가 번져 64명이 체포됐다. 두 시위 모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10대들이 주도했다.
희미해진 자유·평등·박애
이번 사건은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와 자유·평등·박애 정신에 큰 충격을 줬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경찰의 나엘 살해 사건과 축구 경기에서의 머리 스카프 금지는 프랑스 정체성과 포용의 위기를 잘 드러낸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이민 정책에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이주민 비율은 유럽 평균(11.6%)에 비해 높은 13%다. 전체 인구(6530만 명) 중 약 855만 명이 이민자다. 이 중 아프리카 출신이 절반에 가깝고 이슬람을 믿는 북아프리카 3국(알제리·튀니지·모로코) 출신이 약 30%다. 프랑스는 이민 정책에서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다. 바로 공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철저한 분리를 뜻하는 ‘라이시테’다. 여성 축구선수의 히잡(이슬람 여성이 얼굴과 머리를 둘러싸는 천) 착용 금지를 지지한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최근 판결이 대표적인 사례다. 축구 경기에 종교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슬람 이민자들은 이 라이시테가 프랑스에 만연한 이슬람·아랍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종교·인종 차별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5년 흑인 10대 소년 2명이 파리 외곽에서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감전사한 사건 이후에도 프랑스의 사회 분열, 이민자의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했다.
시위는 공권력 개혁 논의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각각 1960년대와 1980년대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겪으며 경찰 권력을 제한했지만, 프랑스는 경찰의 반대로 40년째 아무런 조치를 못 하고 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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