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토니 블링컨 美 국무장관 5년 만의 방중 | 악화일로 美·中 관계 무력 충돌 예방…대만 문제 등은 입장 차

박용선 기자 2023. 7. 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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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6월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접견실에서 상석에 앉아 토니 블링컨(왼쪽 두 번째)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미국과 중국 모두 양국 관계를 안정화할 필요성에 동의했다.”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6월 1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경쟁이 갈등으로 바뀌지 않도록 우리의 차이를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한다”며 미·중 관계 안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 주석 역시 이날 회동에서 블링컨 장관에게 “이번 방중이 미·중 관계 안정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며 “양측이 이번 협의 중 일부 사안에서 진전을 이루고 합의를 달성한 건 매우 좋은 일”이라고 화답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링컨의 중국 방문을 두고 “대단한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회담을 갖고, 기후변화, 국제경제 등 현안 해결을 위한 협력에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의 구체적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블링컨 장관이 지난 2월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정찰 풍선’의 미 상공 진입 사태로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서 취소됐었다.

이후 약 4개월 후인 6월 18~19일 블링컨 장관이 중국을 찾았다. 그는 이틀 동안 시 주석과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친강(秦剛) 외교부장(장관) 등을 만났다. 미 국무장관의 방중은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전 장관 이후 5년 만이다. 외교가에선 블링컨의 방중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관계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한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중 관계가 중국이 ‘최저점’이라고 표현한 불화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8년 6월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탁자를 두고 나란히 앉은 장면과 확연히 대비된다. 사진 뉴스1

미·중 갈등, ‘관리’ 국면으로…연내 양국 정상회담 거론

블링컨 장관은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과 약 35분간 회동했다. 이날 중국 국영 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블링컨 장관에게 “두 강대국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윈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양국이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 있다”며 양국 관계 개선 필요성을 밝혔다. 다만 시 주석은 “미국이 중국을 존중하고 중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며 기존 입장도 거듭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 역시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과 양국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중 갈등이 당분간 양국 정부의 관리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내 미·중 정상 간 만남도 거론된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으로 미·중 고위급 대화 채널이 재개되면서 시 주석이 오는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화상 회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회담에 이어 3차 미·중 정상회담이다.

블링컨 장관은 시 주석과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 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북한의 위험한 행동을 중단하게 압박할 ‘특별한 위치’에 있다”며 “중국이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시 주석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장 자리 배치 관련 논란도 일었다. 시 주석이 회담장 한가운데 상석에 앉고, 왼쪽엔 블링컨 장관 일행이, 오른쪽엔 중국 측 인사들이 각각 얼굴을 마주해 앉아, 시 주석이 하급자 회의를 주재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는 2018년 시 주석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탁자를 두고 바로 옆에 앉았던 것과 확연히 차이가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 주석이 블링컨 장관에게 중국의 이익을 존중하라고 지도한 것처럼 연출됐다”고 전했다.

블링컨-친강, 5시간 넘는 마라톤회담

이번 미·중 대화는 실무자 회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뤄졌다. 블링컨 장관은 시 주석 회담에 앞서 중국 외교 라인 1·2인자인 왕이 위원과 친강 부장 등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미·중 소통 복원과 무력 충돌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 마련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대만 문제 등 안보 현안과 반도체 제재 등과 관련해선 양국의 분명한 입장 차를 확인했다.

특히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진행한 블링컨 장관과 친강 부장의 약 5시간 30분에 걸친 마라톤회담이 주목받는다. 두 장관은 심화하는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무력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가드레일(안전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양국 군 사이에 ‘핫라인’을 개설하는 것도 이야기했다. 중국은 지난 2월 ‘정찰 풍선’ 논란이 불거진 뒤 미국과 군 핫라인을 폐쇄한 상태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 방문을 마친 뒤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양국 간 직통 군사 통신을 재개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국이 아직 응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계속 작업해 나갈 것”이라며 “양국이 최소한 의사소통 혼선과 오해 때문에 불가피한 갈등을 겪지 않기를 원한다는 점에선 동의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과 친강 부장은 대만 해협의 긴장 고조 상황에 대한 양측 입장과 상호 ‘마지노선’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미국 측은 대만해협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한 반대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고, 중국 측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는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이 중국을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개념인 디커플링(분리)을 대체하는 디리스킹(de-risking·경제와 무역 등에서의 대중국 의존도 완화)을 두고서도 팽팽한 논쟁을 펼쳤다.

바이든, 시진핑에 “독재자” 발언…미·중 관계 여전히 살얼음판

양국 관계는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시진핑 독재자 발언이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모금행사에서 “우리가 정찰 풍선을 격추했을 때 시 주석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몰라서 화를 냈다”며 “정찰 풍선이 알래스카를 지나 미국 본토로 날아가던 중 경로를 벗어난 것을 몰랐다는 건 독재자에게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전에도 시 주석을 여러 차례 독재자라고 언급했다. 그는 2021년 9월에도 시 주석과 통화한 직후 시 주석을 겨냥해 “21세기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믿는 독재자가 많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을 독재자로 칭한 바이든 대통령 발언에 대해 “강렬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밝혔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매우 터무니없고 무책임하며, 기본적인 사실과 외교적 예의에 엄중하게 위배되고, 중국의 정치적 존엄을 크게 침범한 것으로, 공개적인 정치적 도발”이라고 규정한 뒤 이같이 밝혔다.

Plus Point
토니 블링컨은 누구

사진 블룸버그

토니 블링컨은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 첫 외교 수장인 국무부 장관에 오른 인물로, 30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이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블링컨은 1993년 미국 국무부의 유럽국에서 외교관으로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법조인 대신 외교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블링컨의 아버지 역시 헝가리 대사를 지낸 외교관이었다.

블링컨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 국무부 부장관 등을 역임하며 외교·안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게 인연이 돼, 지난 바이든 대선 캠프에서 외교 정책을 총괄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블링컨은 2015년 국무부 부장관 임명 후 첫 출장지로 한국을 선택했을 정도로, 한국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한국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북한 문제 때문이다. 블링컨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선 강경파로 분류된다. 그는 2020년 9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최악의 폭군’이라고 칭했고, 2018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선 북한을 ‘세계 최악의 수용소 국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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