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투자 프레임 <10>] 이미 시작된 미래, ‘AI 버블’이 아닌 ‘AI 혁명’이다
투자자는 누구나 ‘좋은 기업’을 ‘좋은 가격’에 사고 싶어 한다.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이 쉽지 않다. 각자 생각하는 ‘좋은(good)’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은 밸류에이션(valuation·평가 가치)의 정도다. 비단 주식뿐 아니라 채권, 부동산, 원자재 등 모든 자산에 투자할 때 대상의 가치를 산정하고 고평가 혹은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작업은 투자자라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밸류에이션을 하지 않고 투자한다는 것은 탐험가가 지도를 보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것과 같다. 그만큼 여정이 험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과거에 보물을 찾던 방식으로는 지금의 보물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거 ‘나침반(전통적인 가치 평가 방법)’에 의존했던 항해 기술이 기술 발전에 힘입어 지금은 ‘레이다(새로운 가치 평가 방법)’로 대체될 때가 된 것이다.
밸류에이션 방법론에 얽매이지 말라
2022년 10월 주당 108달러(약 13만8056원)에 불과했던 엔비디아는 2023년 6월 431달러(약 55만947원)까지 4배 급등했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로 40배가 넘어섰을 때, 투자에 나섰어도 성과가 상당했다. 최근 실적 추정치가 더 개선되면서 PER이 87배에서 50배로 내려왔다.
엔비디아가 좋은 기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좋은 주가에 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AI)을 버블로 보는 이와 혁명으로 보는 이의 차이다. 먼저 AI를 버블로 본다면, 이들은 전통적인 밸류에이션 접근법인 PER과 PBR(주가순자산비율)을 감안해서 주가 상승이 과도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현재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 규모 혹은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다소 급하게 올라왔다는 것이다. 다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비교해 봐도 비싼 편이다. 6월 둘째 주 기준 엔비디아는 12개월 선행 EPS(주당순이익) 기준 PER이 50배인데,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두고 경쟁하는 미국 기업 AMD는 34배에 불과하다. 미국 시총 1위 업체인 애플(28배)에 비해서도, AI 생태계 모멘텀을 받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31.32배)보다도 PER이 높은 편이다.
전통적인 가치 비교는 전설적인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가 시작이다. 그는 상대적이건, 절대적이건 밸류에이션이 싼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스터 마켓(Mr. Market·증시)이 일시적으로 변덕을 보이더라도, 싼 주식이 제자리를 찾아갈 거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 실제 그레이엄의 투자는 1929년 대공황으로 1932년 고점 대비 투자 자산의 70%가 날아갔지만, 결국 이전으로 복구됐고, 이후 1956년 은퇴할 때까지 연 수익률이 20%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법은 지금도 유용한 접근법이지만, 과거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PER과 PBR이 지닌 한계 때문이다. 당장은 기업 실적이 좋지 못하고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의 규모가 크지 않다면 PER과 PBR이 높게 나타나 고평가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거나 타 기업이 추종할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라면 단순히 PER, PBR의 밸류에이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반대로 현재 기업의 이익 수준이 높고 축적된 자본 규모가 큰 회사라도 구조적인 쇠퇴기에 접어든 경우 PBR과 PER은 향후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저평가 매력이 높다고 착각해 섣부르게 투자에 나설 경우 자칫 ‘밸류에이션의 늪(Valuation Trap)’에 빠질 수 있다.
AI 산업, 밸류에이션 방법 달라져야
2016년 워런 버핏은 애플을 대량 매수했다. 그레이엄의 계승자로 알려졌던 버핏이 기술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것이다. 2017년 주총이 열린 오마하에서 버핏은 “애플이 기술주여서 투자한 것이 아니라 애플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신뢰했다”고 강조했지만, 이전까지 기술주를 경시했던 버핏의 철학과 결을 달리했다. 확실한 경쟁 우위를 지닌 기업에 집중 투자해온 버핏의 투자로도 볼 수 있지만, 필자는 기술을 가치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버핏의 고민이 담긴 투자였다고 판단한다. 이후 버핏의 쇼핑 리스트에서 애플은 최선호 대상이었다. 어쩌면 버드와이저, 코카콜라와 같이 경제적 해자에 기반해 열매를 수확하는 기존 투자와는 다른 접근이다.
기업 가치 평가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업종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신기술 도입과 함께 기업의 성장 및 쇠퇴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지금의 환경에서 기존의 특정 밸류에이션 방법론에만 의존해 투자 판단을 하는 것은 착오를 가져오기 쉽다. 버핏은 이러한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버핏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기술을 밸류에이션 산정에 더욱 깊숙이 반영해야 한다. 기술 기업은 미래를 위해 막대한 선행 투자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PER에서 ‘E(이익)’는 작아지고, PER은 너무 비싸 보인다. 그러기에 그만큼 투자하지 않은 전통 기업과 동일한 잣대로 봐서는 안 된다. 기술 기업의 특성상 먼 미래에 창출할 수 있는 현금 흐름 규모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당장 큰 이익을 내거나 대규모 고정자산을 보유하기보다는 사용자 기반 확장을 위한 투자를 지속해 장악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기업 가치 제고에 더 효과적인 전략이다. 만일 이러한 기업에 대해 전통적인 밸류에이션 방법만을 적용한다면 적절한 기업 가치 산정이 힘들 수밖에 없다.
AI 버블이 아닌 AI 혁명이 진행형이라면 가치 산정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최근 주식시장의 화두가 되고 있는 오픈AI의 채팅형 AI 챗GPT와 관련된 모멘텀도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 주가가 두 배 이상 상승한 엔비디아의 경우 챗GPT의 AI를 구동하기 위한 GPU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GPU 시장에서 점유율이 80%에 달한다. 따라서 챗GPT를 필두로 한 AI 시대를 기대하는 현시점에서 엔비디아의 기업 가치를 기존의 밸류에이션 방법론으로만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디지털 시대의 밸류에이션의 가늠자는 사용자의 증가 속도다. 2022년 11월 30일에 출시된 챗GPT는 사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출시 2개월 만인 2023년 1월 월 활성 이용자가 1억 명을 돌파했고, 4월에는 1억8000만 명을 넘어섰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명심하라. 지금 일어나는 혁신은 AI가 이룰 성취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AI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오늘날 문제가 되는 모든 한계를 돌파해 버릴 것이다.”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결국 모든 사물이 변화하듯 기업과 산업도 변화하고 투자 대상의 가치를 산정하는 기준 또한 변화한다. 따라서 전통적이고 고정적인 가치 평가 공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현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밸류에이션 방법론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AI 버블이 아닌 AI 혁명이 진행 중이라면, 기술 기업의 손익계산서는 전통 기업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존이 1997년 기업공개(IPO) 이후 2400배나 기업 가치가 올라선 것은 미래에 적응하며, 사용자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좋은 주식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면, 투자자도 이미 시작된 미래에 적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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