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꿀벌 감소 막는 유전자 치료] 장내 세균 통해 RNA 치료제 투입, 꿀벌 기생충 퇴치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2023. 7. 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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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에 있는 꿀벌들. 최근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해 농업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과학자들이 꿀벌을 위협하는 병원체를 퇴치할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했다. 사진 미 텍사스대

장에 공생(共生)하는 세균은 건강과 직결된다. 장내 세균이 건강하면 대장질환은 물론 뇌 질환도 막고 노화까지 억제한다. 꿀벌도 장내 세균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열렸다. 소화기관에 있는 세균으로 꿀벌에게 치명적인 기생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대 통합생물학과의 낸시 모란(Nancy Moran) 교수 연구진은 6월 13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꿀벌 장내 세균의 유전자를 변형해 치명적인 기생충인 ‘노제마 세라나에(Nosema ceranae)’를 퇴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노제마 세라나에는 꿀벌 노제마병의 원인인 단세포 미포자충이다. 곰팡이와 같은 균계(菌界)에 속한다. 꿀벌의 내장에 달라붙어 증식한 다음 세포를 뚫고 나와 포자를 퍼뜨린다. 포자는 꿀벌 배설물과 같이 몸 밖으로 나와 꽃에 붙어 있다가 다른 꿀벌을 다시 감염시킨다. 노제마에 감염되면 꿀벌의 수명이 40% 감소한다.

1 바로아응애가 퍼뜨린 ‘기형 날개 바이러스(DWV)’에 감염되면 날개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가운데). 다른 꿀벌과 비교하면 날개가 기형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사진 미 농업과학연구소 2 바로아응애는 꿀벌의 지방을 빨아 먹고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전달한다. 날개 아래 붉은색 부분이 진드기의 일종인 바로아응애다. 사진 미 텍사스대3 꿀벌을 위협하는 단세포 기생충인 ‘노제마 세라나에’ 포자를 1만 배 확대한 사진. 아래 막대의 길이는 2㎛(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다. 사진 스위스 베른대

장내 세균 이용해 병원균 유전자 차단

노제마병은 최근 꿀벌 개체수가 급감한 이른바 ‘꿀벌 군집 붕괴(CCD·Colony Collapse Disorder)’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하지만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푸마길린이라는 살균제가 있지만. 다른 동물에게도 해를 줄 수 있어 유럽에서는 사용이 금지됐다. 게다가 푸마길린이 듣지 않는 내성 노제마도 생겼다.

모란 교수 연구진은 환경에 피해를 주는 화학물질 없이 꿀벌 기생충을 퇴치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법을 찾았다. 유전자 침묵(gene silencing) 또는 리보핵산 간섭(RNAi·

RNA interference)으로 알려진 현상을 이용해 꿀벌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RNA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유전자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든다. 그런데 RNA 중 일부 조각은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다른 RNA와 결합한다. 그러면 해당 RNA가 복사한 유전자의 기능도 차단된다.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처럼 짧은 RNA가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RNA 간섭 현상을 밝힌 두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2018년 미 식품의약국(FDA)은 RNA 간섭을 이용한 희소 질환 치료 신약을 처음으로 허가했다.

RNA 간섭은 이중 가닥 RNA를 넣어 유도할 수 있다. 세포가 이중 가닥 RNA를 감지하면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그와 유전정보가 같은 RNA를 파괴한다. 문제는 이런 RNA를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꿀벌의 장에 공생하는 세균을 RNA 공장으로 활용했다. 꿀벌 장내 세균인 ‘스노드그라셀라 알비라(Snodgrassella alvi)’가 노제마에 필수적인 유전자 두 가지를 차단하는 이중 가닥 RNA를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꿀벌에게 노제마를 감염시켰다. 이중 가닥 RNA를 만드는 장내 세균을 설탕물에 섞여 먹인 꿀벌은 71%가 살았지만, 일반 꿀벌은 19%만 생존했다. 장내 세균을 투여한 꿀벌은 노제마 포자도 90% 이상 적게 배출했다. 꿀벌 소화기관에서 노제마가 파괴된 것이다.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는 “자연에서 곤충이 RNA 간섭을 면역 시스템의 일종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기생충 퇴치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꿀벌 위협하는 악당 3총사 동시 박멸 가능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꿀벌 군집 붕괴는 2006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2021년 1분기 78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지면서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직격탄을 맞는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농작물의 3분의 1이 꿀벌의 꽃가루받이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란 교수 연구진은 RNA 간섭이 꿀벌 군집 붕괴를 유발하는 병원체들을 동시에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연구진은 2020년 ‘사이언스’에 바로아응애(Varoa mite)와 기형 날개 바이러스(DWV·Deformed Wing Virus)를 RNA 간섭으로 동시에 퇴치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같은 방법으로 노제마 퇴치까지 성공했으므로, 병원체 3종을 동시에 박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아응애는 진드기의 일종이다. 다른 진드기와 달리 체액 대신 지방을 먹는다. 꿀벌에게 지방은 사람의 간과 같다. 면역력을 유지해 겨울을 나고 살충제를 이겨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바로아응애는 꿀벌에게 치명적이다. 바로아응애는 꿀벌의 몸에서 지방을 빨아먹고 나중에 날개 기형을 초래하는 바이러스까지 퍼뜨린다.

모란 교수 연구진은 장내 세균의 유전자를 변형해 RNA 간섭을 유도할 이중 가닥 RNA를 만들도록 했다. 이어 장내 세균을 설탕물에 섞어 꿀벌에게 제공했다. 유전자가 변형된 장내 세균은 꿀벌의 소화기관에서 내피세포 안으로 RNA를 전달했다. 실험 결과 바로아응애는 장내 세균을 먹인 꿀벌에서 일반 꿀벌보다 70%나 더 많이 죽었다. 또 장내 세균이 바뀐 꿀벌은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다른 꿀벌보다 36.5% 더 생존했다.

RNA 백신은 꿀벌이 원조

과학자들은 RNA 간섭 치료제가 꿀벌에게 백신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본다. 한 번 꿀벌에게 RNA 치료제를 주면 대(代)를 이어 기생충과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꿀벌이 애벌레에게 로열젤리를 먹일 때 질병을 막는 간섭 RNA도 분비하는 것을 확인했다. 간섭 RNA는 애벌레의 체액을 통해 몸으로 퍼졌다가 나중에 성충이 되면서 머리의 로열젤리 분비샘으로 이동했다.

로열젤리가 분비되면 간섭 RNA가 다시 다음 세대 애벌레로 전달되는 것이다. 인간이 RNA를 이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 전에 꿀벌이 먼저 RNA 백신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꿀벌용 RNA 간섭 백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갔다. 독일 바이엘이 인수한 종자회사 몬산토는 2011년에 이스라엘 신생 기업인 비로직스를 인수했다. 비로직스는 RNA 간섭 현상을 이용해 꿀벌 감염을 막는 기술을 개발했다.

몬산토는 바로아응애가 꿀벌이 애벌레일 때 주로 감염된다는 점에 착안해 RNA를 애벌레 먹이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동안 진드기 퇴치에 쓰던 살충제는 꿀벌에게도 해가 많았지만, RNA는 꿀벌은 건드리지 않고 진드기와 바이러스만 공격한다고 몬산토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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