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의 리더십 통찰 <16>] ‘최고’를 뛰어 넘는 ‘위대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신수정 KT 부사장 겸 엔터프라이즈 부문장 2023. 7. 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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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알폰스 무하 미디어 아트전을 보았다.

그런데 누구나 그를 '최고'라 하지만, '위대한' 복서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 '위대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는데, 이러한 이들 또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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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얼마 전 알폰스 무하 미디어 아트전을 보았다. 음악과 같이 연출한 영상이다. 파리에서 공연 포스터를 그리던 가난한 무명 삽화가였던 체코 출신 알폰스 무하는 사라 베르나르라는 유명 여배우의 눈에 띄어 지원을 받는다. 이후 그는 파리의 스타 미술가가 된다.

신수정 KT 부사장 겸엔터프라이즈 부문장서울대 공학박사, 현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장, 전 SK인포섹 대표이사

그러나 그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저 인기 있는 작가로 끝났을 것이다. 화려한 파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조국에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자 그는 파리에서의 부와 명예를 다 던지고 조국으로 간다. 그러고는 거기서 국민과 조국의 희망과 자긍심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결국 그는 그저 돈 잘 벌고 사교계에서 화려한 화가가 아닌 ‘위대한’ 화가로 변신하게 된다.

프로 복싱 역사상 챔피언 중 단 한 번의 패배도 하지 않은 최고의 선수가 있다. 그의 이름은 플로이드 메이웨더다. 그는 신의 경지에 가까운 스피드와 테크닉으로 50전 전승을 거두고 무려 5체급이나 석권했다. 그런데 누구나 그를 ‘최고’라 하지만, ‘위대한’ 복서라 하지 않는다. 그는 승리를 위해 더티 플레이를 서슴지 않았고 인종차별, 여성 폭력에 연루되며 허세에 찌든 허접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무하마드 알리는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귀국 후 식당에서 흑인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인종차별의 부조리에 항의하며 금메달을 강에 던져버린다. 흑인 노예들에게 부여됐던 자신의 이름도 바꿔버렸다. 이후 그는 인종차별 극복을 위해 싸운다. 이를 불편하게 여긴 정부가 그에게 징집영장을 보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재판에 넘겨져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챔피언 타이틀도 박탈당한다. 이후 그는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다시 도전해 챔피언 자리를 획득한다.

무하마드 알리는 메이웨더와 달리 시합에서 수차례 패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선수로 여긴다. 왜일까. 그는 스포츠 기계가 아니었다. 부와 명성만을 좇지 않고 차별을 깨기 위해, 세상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수많은 뛰어난 이가 이 땅에 태어나고 사라졌다. 지금도 높은 권력의 자리, 명예의 자리, 부의 자리, 인기의 자리에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 ‘위대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위대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성공, 권력, 인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대의(大義)의 추구에서 나온다. 우리는 사람 간의 차별을 혁파하고, 소명 의식이 있고, 의를 위해, 또 세상을 더 낫게 하기 위해 살아간 이들을 위대하다고 한다.

이는 대단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작은 회사들의 대표들을 만났다. 작지만 세상에 가치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작은 기업도 위대할 수 있다. 빛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도운 이들, 묵묵히 주위를 위해 일한 이들도 위대하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는데, 이러한 이들 또한 위대하다. ‘최고’는 해당 분야의 단 한 명에게밖에 주어지지 않지만, ‘위대함’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누구나 가능하다.

리더들 또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 또한 소의와 눈앞의 안위에 급급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작더라도 조금 더 큰 뜻을 품고 행동하며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보는 또 한 번의 시간이었다. ‘좋음’이나 ‘최고’보다 ‘위대함’을 추구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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