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연의 아틀리에 산책 | 후기 단색화가 김근태] 해외 평단서 빛 본 돌가루 그림…“절망 빠진 사람 위해 그린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주위에 가구 공장, 판지 공장이 가득하고 인근 함바식당에서 일꾼들이 줄 서서 밥을 먹는 곳. 그 인근에 있는 주황 컨테이너 창고가 바로 후기 단색화가 중 한 명인 김근태(70) 작가의 작업실이다. 6년 전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녹음 가득한 산속이었는데 그사이 여기저기 개발되더니 이런 공장 지대가 됐다고 했다.
작업실 바닥엔 그의 그림이 열을 지어 누워있고 바닥엔 돌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그가 신고 있던 장갑이나 신발도 뽀얀 가루를 듬뿍 뒤집어쓰고 있었다. 돌가루를 소재로 하는 김 작가의 작품은 201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25만홍콩달러(당시 환율을 고려하면 약 3600만원)에 낙찰되면서 주목받았다.
낙찰 소식이 알려지자 “해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중년의 한국 후기 단색화가에게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의 단색화에 대한 인기가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이후 국내 경매에서도 김 작가 작품은 자주 거래됐다. 작년 5월 경매에서 김 작가의 작품 ‘Discussion(30호)’이 추정가 1000만~2000만원으로 나왔다가 1800만원에 낙찰됐다. 올해 2월엔 같은 연작 시리즈 ‘Discussion(50호)’이 1700만원에 낙찰됐다.
김근태 작가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작품 세계를 바라봐 주고 인정해 주는 시대에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면서 “‘돈 가는 데 정이 간다’는 말이 있듯 낙찰이 곧 인정의 증표”라고 했다. 이어 김 작가는 “그림 사는 것은 사실 아파트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내 작품 가치를 높게 사 주고 공감해 주는 컬렉터(애호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내외 전시 활동이 빼곡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평가도 좋은 것 같다.
“해외 평가는 나도 궁금하다. 다만 돈 가는 곳에 마음 간다고, 그게 증표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화랑 수백 곳이 나오는 아트페어에 국내 화랑은 5~6곳뿐이다. 여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5~6명이 작품을 내건다.
세계적 수준의 그림이 빼곡한 곳에서 지나가면서라도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훔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 순간 마음을 끌고, 검색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고, 살 건가 말 건가를 결정하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어려운가. ‘응, 이 작품 사면 앞으로 좋겠네. 지금이 적기네’ 하고 지갑을 열기까지. 미술을 컬렉팅하는 것과 아파트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은 주로 낙찰가 이야기는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다.
“작가들이 낙찰가에 관심이 없다는 것, 얼마에 팔리는지 모르니 갤러리에 모두 물어보라는 것 모두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내 그림이 훌륭하다 치자. 그런데 누가 봐주는 사람들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미술 시장이 이렇게 컸을 때 솔직한 이야기 할 때도 됐다.
이론도 좋고 다 좋은데 핵심은 사람 마음을 사도 된다는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저 그림을 봤더니 그림이 나한테 오더라.’ 그게 그 그림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작품을 탄생시키려면 그 작가가 수양이 되어있어야 한다. 작가는 수양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걸 인정받는지를 판단하면서 정진하면 된다.”
수양과 정진을 시작했던 때가 기억나나.
“1993년에 처음 유럽에 갔다. 그땐 슈퍼리얼리즘 그림이 유행했고 서양미술을 한창 흡수하기 바쁜 나이였다. 정보가 없으니 미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책을 보면서 쫓아가기 바빴다. 그러다 유럽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처음 보고 놀랐다. 서양미술의 시간과 역사, 기술적 축적을 따라잡지 못하고 겉모습만 따라왔다는 것, 이걸 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바닥을 친 것 같다.”
바닥이라면.
“과거와 결별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내가 열심히 해오던 것과 결별하게 됐다. 아무리 해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 뒤로 한 3년가량 애를 먹었다. 새로운 시작은 경주 남산에서 했다. 경주 남산에 가보면 불상이 지천이다. 석굴암에 가보니 위대함이 보였다. 그때 받은 감동을 잊지 못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경주 남산, 석굴암, 감포로 굽이굽이 넘어가면서 이 세계를 담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천 쪽에 광산이 있는데 거기 있는 돌을 빻아 작업을 시작해 봤다. 서양화를 따라 할 때보다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김근태 작가는 돌가루로 작업한다. 돌가루 반죽에 접착제를 섞고 묽은 농도의 물감을 캔버스 위에 두거나 흐르는 방향을 조정하면서 수십 번 겹을 만든다. 김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는 게 아니고 돌가루를 뿌려놓고 슬슬 흔든다고 말한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김 작가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계획이 없는 편이다. 어떤 화면을 대했을 때 어떻게 그릴 것인지 구상하고 그리는 작가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출발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채로 출발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계획을 배제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알고 있다는 거에 대한 의심이 들어서 그런다.
젊었을 땐 계획을 하고 그렸다. 그러다 내가 알고 있고 학습한 것을 어느 날부터 버렸다. 자연스러운 삶에는 그런 계획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내 그림은 같은 것이 없고 모두 다르다. 어떤 그림은 조금 찢어진 것도 있고, 물감이 떨어진 것도 있다. 그림에도 그렇게 자비가 있어야 한다.”
그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싶나.
“너무 채찍질하지 말라는 것. 완벽해지지 말라는 것. 그래봤자 완벽한 것도 없다. 우리 삶은 인위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앞에 무슨 일이 닥치면 그 일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행동하고, 그사이에서 찢어지고 오염된 것은 그냥 자비롭게 둬야 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고약한 일이 참 많다. 다들 살기 힘드니까, 계획대로 안 되니까 삶을 포기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밑바닥이란 게, 그 끄트머리에서 다시 빛이 올라오고, 삶이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걸 그림으로 함께하고 싶다. 평면을 자꾸 비워낸 내 그림을 보면서, 여기서 새로 시작하면 어떤 그림이 될까, 생각하길 바란다. 끄트머리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 출발점에 선다는 마음으로. 내가 그림을 하고, 그림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일이 새 출발이다. 매일매일의 삶이 그렇다면 아귀다툼하고 살 필요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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