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그룹’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민간군사기업의 역사[사이월드]

박은하 기자 2023. 7. 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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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선언하고 로스토프나노두의 군 본부를 장악한 24일(현지시간) 한 바그너 용병이 완전 무장을 하고 장갑차에서 내리고 있다. 로스토프나노두 | 타스연합뉴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뉴스를 봤던 것 같은데 무슨 맥락에서 나온 건지 궁금할 때 있으시죠? ‘사이월드’가 단편적인 여러 국제 뉴스의 사이사이를 짚어 세계의 흐름을 보여드립니다.

러시아 지도부를 상대로 무장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 그룹의 정체는 ‘민간군사기업(PMC·Private Millitary Company)’이다. PMC는 용병들을 고용해 자체 무장을 하고 경비·경호 업무 뿐 아니라 국가 간 전쟁이나 대테러 작전에도 참여한다. 최소 34개국에 걸쳐 전 세계 170여곳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PMC의 연원은 짧게 잡아도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전 경험이 있던 퇴역 군인들은 PMC을 세워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의 분쟁에 개입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분쟁 건수가 증가세를 보였는데, PMC를 통해 전쟁을 ‘저비용’으로 ‘더 잔혹하게’ 치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이유로 지목된다. 바그너 그룹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부터 모스크바를 향한 반란까지, 국제 안보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의 존재는 PMC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 고조시키고 있다. 국제사회가 분쟁지역의 PMC를 규율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규범을 만드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20세기 전쟁 기업의 탄생

근대국가가 탄생한 뒤에도 민간이 군대를 보유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특히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개척과 통치에 사설 용병이 자주 동원됐다. 자체 군대를 보유한 영국 동인도 회사가 단적인 예이다.

현대적 형태를 갖춘 최초의 PMC로는 영국 퇴역 장교 데이비드 스털링이 1965년 설립한 ‘워치 가드 인터내셔널’이 꼽힌다. 스털링은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2년 항공특수서비스(SAS)를 창립했다. 영국 특수부대 산하에서 은밀하게 운영되며 정찰, 인질구출, 위험작전 등의 임무를 맡았던 SAS의 구조는 ‘워치 가드’에 그대로 이식됐다.

워치 가드는 런던에 본부를 두고 조세피난처에 역외기업으로 등록한 채 활동했다. 이전까지의 용병 조직이 임무가 있을 때마다 은밀하게 용병을 모집하고 해산하는 과정을 반복했다면, 워치 가드는 세계의 분쟁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은 최초의 기업형 조직이었다.

현대적 형태를 갖춘 최초의 PMC를 세운 영국 퇴역 장교 출신인 데이비드 스털링. 위키피디아

은퇴한 옛 특수부대원을 다시 고용해 예멘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잠비아, 시에라리온에서 군사자문을 했으며, 주로 걸프 국가를 상대로 무기중개까지 했다. 해외에서 영국 특수부대를 훈련시키는 역할도 맡았다. 이후 워치 가드를 모델로 삼아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세운 PMC들이 1960~1980년대에 여럿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직 특수부대 장교인 에벤 발로우가 1989년 창립한 ‘EO(Executive Outcomes)’는 바그너 그룹의 모델로 꼽힌다. 발로우는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을 시행하던 시절, 백인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봉기한 흑인 군인들을 진압했던 인물이다.

그가 은퇴 후 세운 EO는 자원 채굴권을 대가로 보츠와나의 다이아몬드 광산, 앙골라의 유전 운영사와 계약을 맺었다. 전투원은 물론 공격용 헬기 등 중화기를 확보해 사업 이권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도 직접 나섰다. 광산채굴권 등 이권을 끼고 용병 사업을 했다는 점이 바그너 그룹과의 공통점이다.

발로우는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포럼에 초대돼 러시아 장성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바그너 그룹은 이로부터 4년 뒤인 2014년 창설됐다.

냉전 해체 이후 급성장

PMC는 1990년대 냉전 종식 후에 수와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다.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이 군축을 단행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퇴역 군인들과 과잉생산된 무기가 대거 PMC로 흡수됐다.

냉전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소규모 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PMC를 찾는 수요도 꾸준히 늘었다. 특히 소말리아 해적이 활개를 치면서 아프리카 지역의 불안정한 상태가 심해지자 해운사, 유엔과 비정부기구(NGO)도 PMC와 계약을 체결했다. 일각에서는 PMC가 취약한 아프리카 국가 정부를 도와 테러리스트와 싸우거나, 야생동물 밀렵 거래를 줄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해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해운사에 고용된 PMC 용병이 갑판 위에서 상선을 보호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경찰 대신 PMC가 치안 업무를 맡기도 했다. 미국 공공청렴센터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1994~2007년 자국 PMC와 3000억달러 규모의 계약 3601건을 체결했다.

그러나 PMC가 몸집을 키운 결정적 계기는 전쟁이다. 강대국들은 PMC와 계약을 맺고 아프리카, 중동, 발칸반도 등의 분쟁에 개입했다. PMC 용병들이 의료, 수송, 경비 뿐 아니라 전투에 직접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민영화된 전쟁’이라고 불렸던 이라크 전쟁(2003~2011년)이 단적인 예이다. 2011년 공개된 미군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PMC 용병과 미군의 비율은 1.25 대 1로, PMC 용병이 더 많았다. 이 비율은 한때 3 대 1까지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을 거쳐간 PMC는 300여개로, 총 16만여명의 용병들이 투입됐다. 이는 불과 10년 전인 걸프 전쟁(1991~1992년) 때보다 10배 이상 많다.

저비용 전쟁과 증발하는 책임

국가가 PMC과 계약을 맺는 이점으로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가 꼽힌다. PMC와 계약한 용병에게는 훈련비와 퇴직금, 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PMC 용병의 사망과 부상은 해당 국가의 인명 피해로 공식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 정치적 논쟁을 부르지도 않는다.

돈을 받고 움직이는 용병은 시민사회의 통제를 받지 않고 국제법을 준수할 동기도 약하기 때문에, 전장에서 잔혹한 행위를 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유엔은 PMC에 의한 인권유린 실태 보고서를 꾸준히 내고 있다. 용병이 민가에 표시 없이 지뢰를 매설하거나 자원을 수탈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분쟁이 이들에게는 곧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다보니, 일부러 분쟁을 질질 끄는 경우도 보고된다. 하지만 이 같은 인권유린 행위가 처벌된 일은 거의 없다.

미국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1997년 설립한 ‘블랙워터’는 2007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민간인 17명을 살해했다. 징역 30년~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이들은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블랙워터는 민간인 학살로 이미지가 나빠지자 이름을 ‘Xe’로 바꿨고, 2011년 다시 ‘블랙워터 아카데미’로 변경해 군사자문업을 이어오고 있다.

2004년 아프리카 적도기니 쿠데타에 개입했던‘샌드라인 인터내셔널’의 공동 창립자 사이먼 만이 2009년 징역 34년형을 선고받은 것이 형사 처벌을 받은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이마저도 ‘실패한 쿠데타’여서 가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아들 마크 대처가 PMC에 돈을 댄 혐의로 체포됐다 59만달러의 보석금을 지불하고 풀려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아프리카 등지에서 바그너 그룹의 잔혹행위가 보고되면 “바그너 그룹이 벌인 일”이라며 선을 그어 왔다.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부차 학살을 주도한 것으로도 지목됐다.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아프리카 말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푸틴 위해 움직이는 러시아 PMC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격인 러시아 PMC는 푸틴 대통령 및 측근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활동 시점도 푸틴 대통령이 ‘다극화된 국제질서’를 강조한 시점과 맞물린다.

영국 매체 스펙테이터에 따르면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만 하더라도 5개의 PMC를 설립했으며 크렘린궁과 가까운 러시아 억만장자들이 비용을 대고 있다. 체첸 수장 카디로프 람잔 휘하 병사 1만2000명도 ‘푸틴 사병’처럼 움직인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2018년 설립한 ‘패트리어트’란 이름의 PMC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돼 있다. 바그너 그룹 역시 푸틴 대통령의 단골 레스토랑 요리사로서 친분을 쌓았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설립했다.

특히 러시아 PMC의 대표 주자인 바그너 그룹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말리 정부와 군사계약을 체결하고 무력을 제공하고 있다. 아프리카 독재 정권은 쿠데타를 우려해 자국군보다 바그너 그룹의 용병을 선호한다. 바그너 그룹은 이들 국가에서 광산 이권을 얻었으며,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을 지렛대 삼아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랑스를 밀어내고 자국 영향력을 확대했다.

포린어페어스는 푸틴 대통령이 제국주의적 전쟁을 수행하면서 전쟁을 통해 군부가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PMC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에 점령됐던 우크라이나 부차를 수복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2022년 4월 러시아군에 의해 페해가 된 도시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PMC 규율 국제규범 만들 수 있을까

국제법상 분쟁 지역에 PMC를 투입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유엔은 1989년 ‘용병 모집·이용·자금조달·훈련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을 체결해 용병의 분쟁 동원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용병 역할을 하는 PMC의 시장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마켓 워치에 따르면 세계 PMC시장 규모는 지난해 2043억(269조원) 달러였으며 2028년이 되면 약 55% 증가한 3162억달러(약 416조원)가 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PMC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평가받는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국제법 연구자인 카타리나 슈타인은 “UN 차원에서 PMC를 구속력 있는 계약에 묶어두려는 국제적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주로 미국, 영국, 남아공, 이스라엘에 의해 매번 막혔다”며 “이들 4개국이 PMC와 가장 많이 계약하는 국가”라고 도이체벨레에 말했다. 2008년 통과된 ‘몽트뢰 문서’는 민간군사보안회사(PMSC)의 활동에 관한 국가의 국제법적 의무를 재확인하는 최초의 국제규범이지만, 구속력은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번 바그너 그룹 반란은 PMC가 ‘전쟁 외주업자’이자 ‘하수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슈타인은 “이번 바그너 반란이 국제사회에서 PMC에 대한 근본적 생각 변화를 가져오고 PMC 배치를 규제하는 국제 규정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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