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악성 임대인’ 빚 떠안는 HUG…경매로 보증금 회수 늘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을 강제경매에 넘겼다.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A씨를 위해 집주인 대신 갚아준 보증금 2억원을 회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종 낙찰가는 이에 못미치는 1억4000만원이었다. HUG는 나머지 6000만원을 회수하기 위해 집주인의 다른 재산을 압류하는 등 채권 보전 절차를 밟고 있다.
최근 5년 간 HUG가 회수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채권 중 집주인이 직접 상환한 비율이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HUG가 주택을 강제 경매에 넘겨 회수한 비율은 급증했다.
주택 가격 상승기에 ‘갭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보증금 상환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악성 임대인’이 크게 늘어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00%→51%… 반토막난 임의상환 비율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HUG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지급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채권을 회수한 총액은 2017년 21억원에서 2022년 2179억원으로 늘었다.
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세입자가 자신의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가입하는 보증 상품으로, 2013년 9월 출시됐다. 집주인이 계약 만료일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HUG가 보증금을 가입자(세입자)에게 대신 갚아주고(대위변제), 나중에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내는 구조다.
2017년에는 집주인이 새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 등으로 HUG에 직접 상환한 비율(임의상환 비율)이 100%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8년 95%, 2019년 97%, 2020년 92%까지도 높게 유지됐다. 그런데 2021년부터는 집주인이 상환한 비율이 63%로 급감했고, 2022년에는 51%까지 내려앉았다.
반면 같은 기간 경매를 통해 회수한 채권 비중은 2020년 8%에서 2021년 37%, 2022년 49%로 절반까지 급증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HUG가 직접 해당주택을 강제경매에 넘겨야 하는데, 이 경우 보증금 전액 회수는 불가능해진다.
올해 3월 기준 임의상환과 경매 회수 비중은 75%와 25%로 조정됐지만, 이는 집주인이 상환한 비율이 늘었다기보다 주택시장 하락기 경매 시장이 위축되면서 낙찰이 어려워진 영향으로 해석된다. 지난 5월 기준 전국 아파트 낙찰율은 31%, 다세대 낙찰율은 18.2%에 그쳤다.
‘경매 회수’ 갑자기 왜 늘었나
2021년을 기점으로 임의상환 비율이 줄고, 경매회수 비율이 늘어난 건 이 시기 보증금 반환 여력이 없는 ‘악성 임대인(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이 대거 유입했기 때문이다.
HUG는 전세금을 3번 이상 대신 갚아준 집주인 중 연락이 끊기거나 최근 1년간 보증 채무를 한 푼도 갚지 않은 사람을 악성 임대인으로 분류한다.
악성 임대인은 HUG가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20년 83명에서 2021년 157명, 2022년 233명, 2023년 3월 기준 300명으로 점차 늘었다. 이들을 대신해 HUG가 세입자에게 변제해 준 금액은 1조2336억에 달한다. 아직 회수되지 못한 금액은 1조846억원으로, 회수율은 약 12% 수준에 그쳤다.
악성 임대인이 급증한 데는 HUG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발급 기준을 지나치게 완화한 영향이 컸다. 집값 급등기인 2021년에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100%인 주택까지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발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주택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반 하락하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대폭 늘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월 ‘전세사기 피해근절 종합대책’을 통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발급기준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낮췄다. 집값의 최소 10%는 자력으로 부담할수 있는 집주인에게만 보증을 발급해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업계에서 통용되는 깡통전세 기준이 전세가율 80%임을 고려할 때, 문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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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개선 통해 악성임대인 진입 막아야”
전문가들은 보증발급 요건 강화를 통해 악성 임대인의 임대차 시장 진입을 제한하지 않는 한, HUG의 보증 여력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HUG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미반환 사고와 대위변제액 급증 영향으로 지난해 13년만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김선주 경기대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임대인의 금융상태와 임대이력 등을 HUG가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임차인이 가입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임대인이 가입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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