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열제 품질 논란에, 약통 라벨 오류까지...제약업계 구멍난 신뢰도

김명지 기자 2023. 7. 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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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현재까지 확인된 건 한 통이지만, 추가 조사 필요”
의료계 “국내 제약사에 재량권을 늘려주더니 구멍 생겼나”
제약업계 “추가 포장 오류 파악 못해...심각한 문제”
왼쪽부터 어린이해열제 대원제약 콜대원, 동아제약 챔프, 고혈압 치료제 현대약품 미녹시딜/업계 취합

동아제약과 대원제약이 올 들어 품질 문제로 어린이 해열제 강제 회수 처분을 받은 데 이어, 현대약품이 탈모약 용기에 치매 치료제를 넣어 유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약업계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에 힘을 실어주면서, 의약품 관리 감독이 해이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평소 제약회사들에 대해 온정주의와 솜방망이 처벌을 해오면서 이 같은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한약사협회는 3일 이번 현대약품의 탈모약 포장 오류 문제와 관련해 제약사와 식약처에 대국민 신뢰를 위해 국내 유통 의약품의 철저한 관리를 촉구했다. 대한약사회는 불량 의약품을 근절하기 위해 회원사를 대상으로 부정 불량의약품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약통 포장이 바뀌어서 생긴 것은 사상초유의 일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이전에도 제조과정에서 한 통에 30정을 표시했지만, 28정이 들어있거나 코팅된 약이 깨진 경우, 액상 파우치 형태의 감기약이 새는 문제가 접수된 적은 꽤 있었다”며 “하지만 약 포장의 오류로 1만 개가 넘는 약이 잘못 배포됐다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현대약품은 지난 23일 ‘타미린서방정 8㎎’이 들어있거나, 들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현대 미녹시딜 정’(제조번호 23018)에 대한 회수 작업에 들어갔다. 이는 해당 약 1병(30정)을 개봉해 환자용 약을 짓던 일선 약사가 이상한 점을 느껴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자진 회수 대상은 총 1만9991병으로 신고된 약이 제조된 당일 생산물량 전부다. 회사에 따르면 이 회사 충남 천안 공장에서 미녹시딜(탈모약)과 타미린(치매약)은 같은 용기에 다른 포장을 붙인다. 두 약이 생산을 공유하는 라인에서 치매약 라벨이 붙은 용기를 철거하기 전에 탈모약 생산 공정이 시작돼 단 한 병에서 오류가 생겼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현대약품은 이 한 병이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식약처는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식약처 의약품안전국 의약품관리과 오정원 과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오류는 1통이지만, 추가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포장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오송 본부 (식약처 제공)

더욱이 앞서 어린이 해열제 시장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동아제약 ‘챔프시럽’과 대원제약 ‘콜대원키즈펜시럽’의 제조와 판매가 중단됐다. 두 제품 모두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해열제인데, 챔프시럽은 잔균이 기준치 이상 발견됐고 키즈펜시럽은 액체와 가루가 분리되는 상 분리 현상으로 판매가 중단됐다. 그보다 앞서 챔프시럽에는 침전물이 생겨 자진 회수하기도 했다.

의료계에서는 식약처 관리 감독 소홀을 질타했다. 서울대 교수이자 산업계 출신인 오유경 식약처장 등 새 정부 들어 꾸려진 식약처 수뇌부는 규제혁신을 강조하며 친(親)기업 행보를 보였는데 그러다 보니 의약품 안전과 관리 감독은 소홀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식약처는 지난달에도 ‘규제개혁 2.0′을 발표하며 정부의 산업 육성과 지원을 강조했다.

해열제 사태에 이어 이번 치매약 사태가 벌어졌지만, 식약처장실에서는 일상적인 공지만 내릴 뿐 아직 이런 상황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거나 내부 단속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날도 오 처장은 네이버 카카오 KT 등 대기업 등을 만나 디지털 치료기기 관련 규제 혁신 간담회를 개최했다.

제약업계에서도 의약품 안전 불감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현대약품에서는 회수 대상 품목이 단 한 개라고 주장하지만, 해당 제조번호의 1만9991개 중에서 또 다른 포장 오류가 얼마나 있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약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인데, 지금 정부의 관심은 약을 빨리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파는 쪽으로만 관심이 쏠려 있다”며 “약업계에 대한 대국민 불신 사태까지 갈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식약처가 제약 산업을 육성한다고 기업에 재량권을 늘려주다 보니 구멍이 생기는 것 아니냐”라며 “식약처가 이번 일을 계기로 제약사 감독에 고삐를 조여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며 “사태 파악 이후 현대약품에 약사법 등을 적용한 처분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현대약품에서 고혈압약이 불순물 문제 때문에 자진 회수한 적은 있지만 라벨을 아예 잘못 붙여 문제가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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