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필수광물, 심해 채굴 시대 열린다···“해양생태계 파괴, 돌이킬 수 없을 것” 우려도

이윤정 기자 2023. 7. 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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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동부 퀸즐랜드 해안 산호초 군락. AP연합뉴스

본격적인 심해 광물 채굴 사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엔 산하 해양 규제기관인 국제해저기구(ISA)가 오는 9일(현지시간)까지 심해 개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으면,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심해 채굴 면허 신청을 하고 바다 깊은 곳에서 본격적인 광물 채광에 나서게 된다.

현재 심해에는 전기차,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필수 요소인 리튬을 비롯해 희토류, 코발트 등 신산업에 필요한 주요 광물이 대량 묻혀 있다. 녹색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광물을 심해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기대와 미지의 영역인 심해 생태계가 파괴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나우루가 쏘아올린 심해채굴 최후통첩

ISA는 과도한 심해 채굴이 해양오염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정선을 마련하기 위해 2016년부터 규제안 마련을 시작했다. 현재 국제 해역에서는 광물 자원을 탐사하거나 시험 채굴은 할 수 있지만, 상업 활동을 위한 대규모 채굴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은 2021년 법률 조항을 발동해 ‘2023년 6월까지 심해 채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고 ISA에 요청했다. 가디언은 “나우루공화국이 당시 유엔 해양법 협약에 있는 ‘2년 룰’ 조항을 내걸고 ISA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으면 2년 후에 바로 심해채굴에 나설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했다”고 설명했다.

나우루공화국은 ISA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즉시 나우루해양자원주식회사(NORI)를 통해 심해채굴 산업에 본격 뛰어들 계획이다. NORI는 나우루가 세계 최대 광산기업 글렌코어 등이 출자한 더메탈스컴퍼니(TMC)와 함께 세운 광물회사다.

ISA가 심해채굴 규제안을 마련해야 하는 시한은 오는 9일이다. ISA가 이날까지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으면, 각국 정부나 기업들은 심해채굴 면허 신청을 ISA에 할 수 있다. ISA 위원회는 이후 1년동안 신청서를 검토한 뒤 회원국 중 3분의1 이상의 찬성표를 얻은 정부나 기업에 ‘심해채굴 면허’를 발급하게 된다. ISA에는 유럽연합(EU)을 포함해 167개 나라가 가입돼 있다.

“기후변화 대응 위한 선택”
망간단괴. 위키피디아

세계 각국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망간단괴’라 불리는 검은색 광물덩어리다. 망간단괴는 망간, 니켈, 코발트 등 40여종의 금속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망간은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전지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재료이기도 하다. 망간단괴는 전 세계 심해에 1조7000억t 가량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해 채굴 찬성론자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터리의 핵심 광물 가격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40년까지 세계가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려면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인 니켈은 현재보다 19배 많은 4800만t을 채굴해야 한다고 추정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열대우림을 밀어버리고 니켈 등 신산업에 필요한 광물 채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7년 전 세계 니켈의 17%를 생산했지만, 2027년에는 비중이 85%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됐다. 전문가들은 심해채굴이 가능해지면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광물 부국의 삼림벌채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지질청은 심해에 약 3억4000만t의 니켈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육지 매장량 추정치의 3배가 넘는 수치다.

“해양생태계 파괴, 돌이킬 수 없을 것”
태평양 클래리온-클리퍼톤 해역(CCZ)에서 발견된 다양한 심해 생물들. /SMARTEX

문제는 심해 채굴이 해양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해 채굴 기술은 점차 발전하고 있다. 캐나다 심해 채굴 업체 메탈스컴퍼니는 하와이에서 남동쪽으로 2000㎞ 떨어진 태평양 심해 5000m 깊이의 ‘클라리온-클리퍼톤 단열대(CCZ)’에서 로봇으로 망간단괴를 채굴한다. 대형 청소기 머리처럼 생긴 로봇이 바닥을 훑고 지나가면서 광물을 빨아들이고 이는 바로 관으로 연결돼 육지로 옮겨진다. 메탈스컴퍼니 측은 “마치 골프장에서 공을 줍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미지의 영역인 해저를 함부로 파헤쳤다가 생태계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CCZ 7개 구역을 탐사한 크레이그 스미스 미국 마노아 하와이대 해양학 교수는 “생태적 피해를 입히지 않고 망간단괴를 채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채굴로 심해가 손상되는 것을 넘어 소음, 진동, 광공해로 해양생물의 삶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지난 2월 영국 엑서터대학교와 그린피스 연구진은 심해 채굴로 인한 소음공해가 고래의 소통을 방해하고 과도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또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퇴적물이 일부 해양 생물들을 질식시키거나 산호와 같은 해면 생물의 터전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채굴 과정에서 사용되는 연료나 기타 화학 물질이 누출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린피스는 인류가 아직까지 심해의 0.0001%만 탐사한 상황이라며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파헤쳐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심해 생태학 연구 전문가 크리스토퍼 켈리는 “우리는 아직 심해의 생물, 환경, 생태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심해 채굴을 시작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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