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교만 벗은 일본의 新반도체 전략
반도체 산업의 부활과 공급망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일본 정부가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발표한 관련 예산은 1조엔에 달한다. 일본 정부의 예산이 들어가는 기업으로는 일본 라피더스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가 있고, 여기에는 과거 반도체 부흥 전략의 실패가 '글로벌과의 협력 없이 일본만으로 하려고 한 데 있다'는 반성이 묻어 있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지금까지 일본 반도체 실패는 일본만으로 가능하다는 교만에 있다"고 분석했고 자민당의 아마리 아키라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 회장도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했다.
1990년 세계 10대 반도체 회사 중 일본 기업은 6개였고 심지어 NEC·도시바·히타치제작소가 각각 1·2·3위를 차지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2000년에는 10위 안의 일본 업체가 3개로 줄고, 2020년에는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존재감이 낮아진 '히노마루(일장기) 반도체'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의 최근 전략 중 하나가 라피더스다. 이 회사는 작년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등 일본의 8개 업체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업체로 2027년까지 첨단 미세공정인 회로 선폭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제품의 양산을 노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회사에 3300억엔을 지원할 예정인데, 지원금 증액도 검토하고 있다. 라피더스 전략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미국 IBM과 손잡았다는 것이다. 전문인력 100여 명을 IBM에 파견해 기술을 습득하고 2나노 제품을 공동 개발한다.
TSMC 등 해외 업체와의 협력은 일본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본 정부는 주요 산업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의 파장과 미·중 마찰의 영향 등을 경험하고 보조금 등 혜택을 주면서 글로벌 기업 유치에 힘을 쏟아왔다. TSMC는 규슈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2024년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인데, 일본 정부는 여기에 최대 4760억엔을 지원한다. 일본 정부·기업과의 협력과 시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 것인지 TSMC는 구마모토에 제2공장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TSMC의 제2공장에 대해서도 지원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마이크론이나 웨스턴디지털도 일본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한동안 사상 최악이라고 평가받던 한일 관계 등의 영향인지 일본 정부·기업과 글로벌 반도체 업체의 협력 트렌드에서 한국 기업 이름은 상대적으로 크게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부품 소재나 장비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협력 상대다. 일본 정부·업체의 움직임을 우리 기업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규식 도쿄 특파원 kim.kyusi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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