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영국 아이들 끌어모으는 '아이스크림 밴'
아이들 모인 곳 어디든 찾아가
나처럼 1980년대 잉글랜드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의 일상은 꽤나 단조로웠다. 여름철 학교가 끝나면 한마을에 사는 친구들끼리 모여 공을 차거나 나뭇가지로 개미들에게 요새를 만들어 주며 놀았다. 그 당시 들을 수 있던 소리라고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나 근처 들판의 소들의 울음소리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밴이 마을로 들어오면 우리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몇 ㎞ 떨어진 곳에서도 우리는 밴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차량 위에 달린 확성기를 통해 동요 '테디베어의 피크닉'이 울려 퍼지며 아이스크림 밴은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피리 소리처럼 아이스크림 밴은 아이들을 끌어모았다.
밴의 뒤를 쫓는 아이들이 충분한 숫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차는 멈추고 아이스크림 판매가 시작되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던 우리는 이것이 지구상 유일한 아이스크림인 것처럼 여기며 큰 행복감에 젖어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다.
먹고 싶을 때 언제든 근처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는 이 이야기가 황당무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이런 1980년대 모습이 여전히 존재한다. 더운 여름 시골 지역에서는 아이스크림 밴에서 울려 나오는 동요가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놀이터를 순식간에 텅 비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놀랍게 들리겠지만, 영국 시골에는 아직도 작은 구멍가게마저 없는 마을이 많다. 작은 상점이 있다고 해도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는 주말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런 이유로 영국에는 2023년에도 아이스크림 밴이 계속 존재한다. 여름철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최소 하루에 한 번은 아이스크림 밴이 방문한다.
그럼 왜 아이스크림 밴이 수영장, 놀이터 근처에 상주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1950년대에 최초로 아이스크림 밴이 생긴 후로 상법과 교통법을 자주 무시하던 밴의 주인들은 지방의회와 계속되는 전쟁을 벌여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들이 15분 이상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이동해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기회가 되기도 한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밴은 사라질 것이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기회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스크림 밴에서는 하드부터 콘, 모든 종류의 빙과류를 판매한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바삭한 와퍼 타입의 초콜릿 바가 끼워져 있는 '99 with a flake'라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 팬 중 영국 방문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테디베어의 피크닉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 바란다. 일곱 살 아이보다 빨리 뛸 자신이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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