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만져질듯 생생한 장미꽃
정물화 등 신작 20점 선보여
사실화는 붓자국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질수록 진짜같이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김재학(71)의 장미꽃은 가까이서 볼수록 더 진짜 같다.
'장미 작가' 김재학이 돌아왔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선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이 7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천의무봉(天衣無縫)한 붓터치로 그려낸 꽃과 과일, 소나무 등 사실화 20여 점을 걸었다.
김재학은 추상 회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 현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도 우직하게 사실적인 구상화만을 그리고 있는 뚝심 있는 작가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정물화와 사실화에 정착하게 된 것"이라면서 "그림은 누구나 눈으로 보고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철학"이라고 말했다.
장미, 작약, 진달래가 생생하게 묘사된 1층 전시장에서 눈길을 끄는 건, 꽃을 품은 화병들이다. 은(銀)기, 도자기, 유리화병 등에 흐트러짐 없이 꽂힌 꽃들은 복잡하게 구성되거나 색감이 강렬하지는 않지만 담백하고 경쾌하게 연출됐다. 작가는 "작업실에는 온갖 꽃과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완벽한 정물 하나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꽃도 이렇게 저렇게 꽂아보고 숱한 연출을 해보고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 때 붓을 든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구상화를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는 건 자연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장미를 그린 건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정평한 실력으로 수채화, 추상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1990년대 선화랑 그룹전에서 유난히 그의 장미꽃은 걸어놓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선대 김창실 회장이 내친김에 "장미꽃 정물화전을 열어보자"고 권유했고, 이후로 걸어놓기만 하면 팔려나가는 인기에 장미꽃을 떠날 수 없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물화와 함께 녹음이 짙은 소나무를 그린 화폭이 2m가 넘는 대작들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여행을 가서 만났던 소나무를 사진이 아니라 기억에 의지해 그린다. 정물보다 소나무를 표현할 때 더 자유롭다. 색감도 형태도 마음대로 그릴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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