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4남매 ‘홈스쿨링’…자연서 뛰놀며 배움의 본질을 찾다
아침에는 책 읽고 그림 그리고
오후에는 산으로 들로 박물관으로
4남매가 다양한 활동 아이디어 제안
“삶을 대하는 태도 완전히 바뀌어”
유치원을 다니는 첫째 아들이 질문을 던졌다.
“하늘은 무슨 색이에요?”
엄마가 “하늘이 무슨 색이냐면…” 답을 고민하는 순간, 아들이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이 하늘은 하늘색이래요. 그런데 지금 하늘을 한번 보세요. 푸른 빛 하늘에 하얀 구름, 그리고 저녁노을은 노란빛이랑 주황빛이랑 저 멀리 보면 핑크빛도 있어요. 한 가지 빛으로는 설명이 안 돼요. 어제는 또 다른 색이고 비 오는 날은 어두워서 회색빛도 있어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하늘색이라고 말해요?”
엄마는 머리를 ‘쿵!’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질문도 많고 자기만의 답도 많았던 아들은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 말이 없어지고 좋아하던 그림도 그리지 않던 터였다. 엄마는 ‘홈스쿨링’을 고민하게 됐고 도서관에서 홈스쿨링 관련 책을 전부 빌려서 읽었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홈스쿨링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다들 ‘오케이’. 경북 영천에 사는 이자경씨 부부는 유치원에 다니던 첫째 아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년간 4명의 남매를 홈스쿨링으로 키우고 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홈스쿨링을 시킬까, 누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검정고시는 언제 치를 것인가 등의 질문이 끊임없이 솟아났지만 부부는 대화 끝에 간결하고 명쾌한 원칙 하나만 세운다. ‘아이들이 원할 때 그때 스스로 공부하게 한다. 중요한 건 인성과 아이답게 자라는 것.’ 그리고 목표는 ‘아이들이 부모 품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관찰하고 배우고
4명의 아이들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각자 할 일을 한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 준비를 돕는다. 12살부터 10살, 8살, 5살인 아이들은 각각 쓰레기 담당, 현관 신발 정리 담당, 밥상 정리 담당 등이 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오전 일과는 주로 집에서 활동한다.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퍼즐을 맞춘다. 오후에는 주로 야외 활동을 한다. 모래놀이를 하거나 산에 가고 자전거를 타며 동네를 돌거나 곤충을 관찰한다. 평일에는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과학관을 다니고 주말에는 단체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각자 원하는 주제를 연구한 뒤 발표하는 ‘프로젝트 발표회’도 열고 2주에 한번 가족신문도 만들어서 조부모님께 우편으로 발송한다. 집 근처 마을과 산이나 바다 등지를 돌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은 이 가족이 11년째 하고 있는 활동이다. 한번은 플로깅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를 발표하는 ‘프로젝트 발표회’도 가졌다. 가장 많은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발표회를 하면서 의견을 나눈 결과, 아이들은 담배회사에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폐에도 안 좋고 자연에도 안 좋은데 담배를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한달에 하루는 잠시 동안이나마 전자기기를 쓰지 않고 소등을 하고 촛불로 생활하는 ‘별이 빛나는 날’을 보낸다.
지역 도서관에서 우수 이용 가족상을 받기도 했다. 1년간 무려 1천권 이상을 빌려본 것이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6명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책을 읽는 것은 이들 가족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꺼리를 제안하는 아이디어 뱅크다. 가정 내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부산 외갓댁을 다녀오겠다고 제안을 하기도 해서 기차를 타고 다녀오기도 했다. 한달에 한번 동네 친구들을 초대해 프리마켓(중고시장)을 열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다. 첫 사교육도 아이들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하모니카를 가르쳐준다’는 면사무소 현수막을 보고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다. 아이들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우더니 집에서도 수시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지난 7년간의 홈스쿨링 과정을 최근 <나는 홈스쿨링하는 엄마로 살기로 했다>(담다)로 펴낸 이자경씨는 아이들이 특히 성장한 부분에 “부모와 대화하는 자세, 스스로 학습하는 습관, 배우고 싶어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텃밭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밤낮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감이 남다르다. 특히 곤충의 세계에 매료돼 곤충학자의 꿈을 가지게 된 이지훈(12)군은 “곤충을 채집하고 관찰하고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야간 채집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면서 “나의 관심사를 쭉 이어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게 홈스쿨링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자경씨는 “홈스쿨링을 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게 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들 가족은 홈스쿨링의 장점을 충만하게 누리고 있지만, 다른 가족에게 추천하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자녀의 동의도 있어야 하고, 부부의 가치관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홈스쿨링에서는 아빠의 자리와 역할도 매우 크다.
홈스쿨링은 부부·자녀 동의 중요해
홈스쿨링으로 자녀들을 키운 선배 부모들도 이씨처럼 가족 내 동의를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세 자녀를 홈스쿨링으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낸 김형태씨는 “홈스쿨링을 알고 싶다며 찾아오는 부부와 대화를 하다보면 부부끼리 합의가 안 된 분들이 종종 있다”면서 “먼저 부부가 합의를 한 뒤에 찾아오라고 조언한다”며 웃었다. 그는 또 “아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홈스쿨링의 본질에 대한 동의다. 그는 “사람들이 ‘시간표는 어떻게 짜나요?’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키면 좋을까요?’ 등을 물으며 홈스쿨링이 교육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까가 아니라, 가정 안에서 내가 어떤 부모가 될지를 함께 고민해가는 것이 더 본질적인 홈스쿨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녀가 얼마나 삶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같이하느냐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홈스쿨링은 학습법이 아니라 삶을 전환하는 방법으로 쓰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 자녀의 초등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키운 최연주씨는 “학교 책상에 아이를 앉혀서 교육시키는 것은 200년이 채 되지 않은 방식이고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삶 속에서 가르치는 홈스쿨링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교육방식”이라며 “불필요한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고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어서 후회가 없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다만 홈스쿨링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3가지를 당부했다. 첫째는 부모의 의욕을 역량으로 착각하지 말 것. 의욕만 앞서고 역량은 이를 못 따를 때가 많다. 둘째, 부모가 받아온 교육과 부모가 가진 결핍에 기반해서 아이를 판단하지 말 것. 홈스쿨링이 맞는 아이도 있고 안 맞는 아이도 있으며 또 지금의 아이들은 부모 세대와는 너무나 다른 ‘신인류’이기도 하다. 부모가 24시간 다 바쳐서 헌신했는데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으면 힘들다. 셋째, 부모가 확실하게 자신이 없다면 검증된 커리큘럼을 가지고 홈스쿨링을 할 것.
한편, 홈스쿨링을 시작하기 전에 관련 책들을 읽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홈스쿨링하는 엄마로 살기로 했다>는 유아기부터 초등까지 홈스쿨링의 과정과 아이들과 부모가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홈스쿨링, 홈과 스쿨을 넘어>(민들레)는 홈스쿨링을 해본 부모, 홈스쿨링으로 자란 자녀, 홈스쿨링 교육 전문가들이 함께 쓴 책으로 홈스쿨링을 다각적 다층적으로 깊이있게 전하고 있다.
정보도 얻고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창구들도 있다. 다음 카페 ‘행복한 홈스쿨링’(cafe.daum.net/happyhomeschooling)와 네이버 카페 ‘한국언스쿨링연구소’(cafe.naver.com/unschoolingkorea)를 방문하면 같은 고민과 실천을 하는 부모들을 만날 수 있다. 중·고교 홈스쿨러라면 ‘홈스쿨링 생활백서’(www.facebook.com/forhomeschooler)를 참고하면 좋고, 기독교 신앙으로 홈스쿨링을 생각한다면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khomeschool.com)가 도움이 된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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