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관련주 무르익고 공모주 달아오른다
국내 증시가 상반기를 예상 밖 강세로 마무리하면서 하반기 증시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증시의 상승세가 주춤하지만 국내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상승 추세가 꺾인 것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주식전략파트장은 "유동성 덕을 봤던 주식시장이 점차 실적 장세 실마리를 찾고 있다"며 "과속 방지턱을 떠올리게 되고 숨 고르기 과정이 필요하지만 기업 이익의 반등 등 이유로 상승 추세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에게 국내 증시 하반기 투자를 위한 관전 포인트와 투자 전략에 관한 조언을 들어봤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이 산업계 판도를 바꿀 주요 변수로 부상한 것은 물론이고 증시에도 주요 테마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AI 내에서도 순환매가 있었지만 방향성은 더 명확해졌다"며 "반도체, 자율주행 관련주들은 순환매를 거쳤지만 헬스케어는 꾸준히 상승하면서 주도 업종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루닛 같은 주도주가 나오면 다른 종목들로 매기가 확산되고 하나의 테마에서 업종, 섹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솔루션, 메타버스 등 아직 주가가 부진한 업종이 있지만 곧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5월 15일 이후 6월 27일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의 합산 지수가 5.3% 오르는 동안 AI 관련 주식들은 9% 상승해 3.7%포인트 더 올랐다. AI 진단기업 루닛은 지난해 7월 상장 당시 시가총액이 3150억원(공모가 3만원)에서 올해 5월 말 1조원(종가 8만3800원), 6월 들어서는 2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에 강세를 보인 종목 중에 실적이 양호한 신규 상장사(상장일 기준 1년 미만 기업)가 많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흥국증권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 15일까지 신규 상장한 기업(82개사) 중 올해 1분기까지의 실적을 발표한 기업 가운데 실적 흐름이 우수한 기업 10개(HPSP·더블유씨피·성일하이텍·윤성에프앤씨·제이오·루닛·보로노이·슈어소프트테크·윈텍·쏘카)를 꼽았는데 이들 종목의 올해 주가상승률은 대체로 높았다. 올해 들어 6월 28일 기준 HPSP 118%, 더블유씨피 78%, 성일하이텍 35%, 윤성에프앤씨 275%, 루닛 466%, 보로노이 46%, 원텍 133% 등이다. 2분기가 마무리되며 상장사 실적이 곧 나오는 만큼 실적이 양호한 신규주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국내 증시에서 AI와 신규주에 대한 높은 기대는 기업공개(IPO) 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모주의 상장 날 가격제한폭 확대 조치가 하반기 공모주 청약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거리다. 금융당국의 IPO 건전성 제고안에 따라 6월 26일 이후 상장하는 신규 종목의 경우 상장 날 가격 변동폭이 기존 공모가의 '63~260%'에서 '60~400%'로 확대된다. 상장 날 시초가를 공모가의 '90~200%'로 결정하는 절차가 사라지고, 공모가가 그대로 기준가격이 된다.
김윤정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장일 시장 변동성 확대 조치로 시초가부터 공모가의 '따따블' 수익이 가능해지면서 신규 상장 종목 투자자들은 상장 후 장내 거래에 앞서 공모 청약 참여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변경된 가격제한폭의 첫 시험대에 오르는 디지털 보안 기업 시큐센은 지난달 20일과 21일 진행된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서 1932.1대1의 경쟁률로 올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가격제한폭 확대 조치로 상장 날 공모가의 4배까지의 상한가 도달이 어려워진 만큼 과도한 주가 상승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전 규정에선 기준가격이 공모가의 200% 상단을 찍는 경우가 많았고, 그 이후에 위로 30% 범위에서만 움직여 다음날에도 상한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심리로 작용했다"며 "가격 제한 범위를 높여놓은 만큼 투자자들이 상장 첫날부터 균형가격을 발견할 수 있고, 종목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가격에 신속히 반영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력적인 기업에는 상장일에 투자자가 더욱 몰리는 반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기업은 더욱 소외되는 IPO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심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대표 수혜 업종으로 꼽히는 반도체 기업의 상장이 올해 하반기에 다수 예정된 점도 특징적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파두, 그린리소스, 워트, 아이엠티, 퀄리타스반도체를 포함해 사피엔반도체 등이 연내 상장을 준비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2차전지는 호불호가 갈리는 반면, 반도체업체들은 꾸준히 흥행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AI 열풍뿐 아니라 하반기로 갈수록 메모리 반도체 등 업황이 전반적으로 살아날 것으로 예상돼 투자자들의 주목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IPO시장이 얼어붙은 지난 1월 말 상장한 미래반도체는 희망가격 상단인 60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한 뒤 상장 날 '따상'(시초가 공모가 2배에 형성 후 상한가 마감)에 성공했다. 지난달에는 상반기 최대어로 꼽힌 반도체 회로기판 검사 기업 기가비스가 희망가격 상단을 넘어선 4만3000원에 공모가를 확정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해외에서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ARM은 모바일 기기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 시장에서 90%를 점유하고 있는 독점 기업이다. 소프트뱅크가 최대주주로 기업가치는 300억~700억달러가 예상되며, 상장을 통해 80억~100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80억달러 수준의 자금 조달은 2000년 이후 미국 IPO시장에서 8번째로 많은 규모다. 지난해 미국 공모시장은 81억달러를 조달해 2000년 이후로 최저 수준이다.
김수연 연구원은 "ARM의 상장은 미국 IPO시장 회복과 맞물려 있다"며 "최근 공모주가 시장을 이기고 있는데 팰런티어, 스노플레이크 등 AI 관련 주식들의 주가 흐름이 좋기 때문이다. AI 반도체인 NPU 사업군을 강화해 시장에서도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ARM의 상장이 하반기 전 세계 증시의 주요 이벤트가 될 수 있으며 국내에서도 AI, 반도체 관련 공모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강봉진 기자 /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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