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폭탄 증자로 재무구조 한 번에 개선하려는 無양심 기업들

김효선 기자 2023. 7. 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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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기자

기업들이 잇달아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이 커지자 유상증자를 택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에만 유상증자 공시는 10건 나왔다. 해당 기간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배나 많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한 곳이 최근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CJ CGV다. 지난달 20일 CJ CGV는 신주 7470만주를 발행해 총 1조2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5700억원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4500억원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조달하기로 했다. CJ CGV가 유상증자로 발행할 주식 수는 현재 상장 주식 수(4772만8537주)의 2배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도 비슷한 시기 조 단위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 지난달 23일 장 마감 후 SK이노베이션은 기존 주주 배정 후 일반공모 형태로 보통주 819만주를 추가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CJ CGV와 SK이노베이션보다 유상증자 규모가 작아 시장의 관심은 덜 받았지만, 에스디바이오센서도 지난달 13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3102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유상증자 조달 자금 대부분을 채무상환에 쓸 계획이라는 것이다. CJ CGV는 전체 유상증자 조달 자금 570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3800억원을 채무 상환에 쓸 계획이며 SK이노베이션 역시 전체 증자 금액의 30%에 해당하는 3500억원을 채무 상환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대부분 미국의 메리디언바이오사이언스 인수대금을 갚기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유상증자는 기업 입장에서 빚을 지지 않으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주주들에게는 주식 가치가 희석될 우려가 나온다. 더군다나 요즘의 유상증자는 과거와 다르다. 최근의 유상증자는 기관들에 외면받은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있다. 중소형사의 경우 특히 신주인수권부사채, 전환사채 등 메자닌 수요가 많아 정상적인 기업은 대부분 메자닌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자 주가는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CJ CGV는 유상증자 계획이 발표된 다음 날인 21일 21% 급락했다. 다음날에도 8% 밀리는 등 4거래일 동안 35% 넘게 급락하며 상장 이후 신저가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주가도 연일 하락하고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유상증자를 공시한 지난 13일부터 전날까지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하락 마감했다. 해당 기간 주가는 16% 넘게 빠졌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유상증자를 남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럴 바에 미국 장에 투자하자’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개인투자자는 “요즘 유상증자가 유행인지 이곳저곳에서 유상증자하는데, 주주 친화적인 기업이 별로 없다. 미국 장으로 가서 돈 많이 벌고 세금 더 내고 말지 국내에서 돈 뜯기기 싫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방만 경영하고 수백억 연봉에 성과급 받고 회사 좀 어려워지면 유상증자하는 게 ‘K-경영인’”이라고 꼬집었다.

유상증자를 아예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유상증자는 할 수 있다. 그러라고 자본시장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번 욕 먹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대량으로 유상증자를 찍어내 모든 숙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마인드는 일종의 한탕주의와 다름없다. 특히 회사가 잘 나갈 땐 성과급 잔치를 벌이다가 조금 어려워지니 바로 개인들에게 손을 빌려 유상증자하는 기업은 개인 투자자를 국내 밖으로 내모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국내 증시를 떠나는 투자자들도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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