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여덟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7. 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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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원(토니 모리슨 지음 / 바다출판사)

타인의 기원


나와 아예 다르다고 판단하고 타인 앞에 그어 버리는 선은 칼이 될 수 있다. 토니 모리슨은 범죄 행위를 상대에게 아무렇지 않게 하고는 이를 당연하고 낭만적인 행위로 포장하려 했던 노예제도의 부조리를 파헤치면서, 타자화로 얻는 달콤한 우월감이 인간성을 얼마나 망쳐 버렸는지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타인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깊이 탐구하고, 이를 인식하고 지양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타자화는 기술의 발전 앞에서 점점 더 무력해지고 있는 인류의 파멸을 앞당길 뿐이다. 이제라도 서로를 향한 칼을 거두고 손을 내밀어야만 한다. (현다연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현다연



■말을 거는 건축(정태종·안대환·엄준식 지음 / 한겨레출판)

말을 거는 건축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고 있는 한국. 이곳엔 수많은 보석이 숨겨져 있다. 세 저자는 서른 개의 한국 건축물을 소개하며 각자의 관점을 꺼내 이야기를 펼친다. 이건 마치 프리즘 같달까? 책이 참 맛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두고 안대환 건축가는 공간의 크기와 깊이감, 배치 등을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과 체험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이어 엄준식 건축가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빛과 어둠의 관점을 말하며, 정태종 건축가는 전시공간의 본질 및 공간 간의 연결성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우린 각자의 생각을 보여줬어. 너는 이 건축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세 저자가 동시에 말을 거는 듯하다. ‘용인의 카빙 하우스는 곡선을 사용해 산과 동화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바위처럼 보이려는 것이 아닌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관점에서 따박따박 화답하고 있었다. 시간에 따라 낡아가며 변화하는 건축, 건물과 건물, 건물과 도시의 ‘경계’를 다룬 건축…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들. 하기야 건축은 언제나 말이 많은 친구였다. 형태, 공간, 역사, 사람… 이 수다쟁이에게 한번 귀를 기울여 볼만하다. 눈앞에 모든 것들이 새로워지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김재훈 / 문화비평, 9N비평연대)

김재훈



■엄살원 -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안담·한유리·곽예인 지음 / 위고)



뭐하는 곳일까. 사회운동 또는 소수 정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한 명씩 불러 비건 음식을 해 먹이고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그 기록을 인터넷에 올리고 책으로 냈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밥으로 꼬드겼다고 보는 게 맞겠다. ‘의원’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왜 붙었을까. 이들은 고발과 자책 사이를 오가는 엄숙한 이야기 속에서 보풀 같은 웃음거리라도 끄집어내어 농담하고, 분노와 좌절감을 공유하며 ‘아무래도 그렇죠’라고 태연하게 맞장구친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 궁금해하는 것이, 그 경험과 연결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돌려주는 것이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공들여 무심하게 맞장구칠 준비를 하고 싶어졌다. (서경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서경



■예술마을의 탄생(이동연·유사원 지음 / 마리북스)



예술 전공자로서 매번 자문하는 것이 있다. 예술 혹은 예술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전국의 13개 예술마을의 시작과 과정, 현재의 모습과 공동체를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강릉 단오마을처럼 오래된 전통문화유산을 지닌 곳이 있는가 하면, 파주 문발동처럼 신도시에서 탄생한 예술마을도 있다. 이처럼 시작도, 목적도, 형태도 다른 이들은 ‘예술’ 아래 모이게 됐다. 예술을 매개로 공동체를 복원하고, 삶의 이유와 행복을 찾는다. 책을 수식하는 ‘일상과 예술이 하나’라는 말처럼, 예술이 작품으로 전시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리할 때 제 효용을 찾아낸 것이다. 읽다 보면, 문득 ‘이것도 예술이라 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할머니의 춤’마저 예술이 되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굳이 미술관에 걸릴 ‘작품’까지 필요할까? 그저 사람의 풋내가 나는 향긋한 몸짓과 소리만으로 예술이 된다. 삶에 녹아 있는 예술이야말로 사람에게 행복한 삶을 선사한다. (윤인혁 / 사회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윤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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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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