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공자' 박훈정 감독이 그리는 코미디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박훈정 감독 표 블랙 코미디 면모가 톡톡히 드러난다. 마냥 밝지도, 마냥 유쾌하지도, 마냥 어둡지만도 않은 '귀공자'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다.
지난 6월 개봉한 '귀공자'에 대해 박훈정 감독은 "작품에 대한 반응들은 뒀다가 12월쯤에 보면 괜찮을 것 같다. 그때쯤이면 제가 덤덤하게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평온이 깃들 때 즈음에"라고 농담했다.
꽤 오랜 시간 '귀공자'에 심혈을 기울여 온 박훈정 감독은 "오래전 묵혀놨던 소재다. 코피노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주는 내용이었다. 그런 걸 보는데 화가 나더라. 그때 스토리를 떠올렸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귀공자'는 당초 '슬픈 열대'로 출발했다. 이에 대해 박훈정 감독은 "처음엔 좀 슬펐다.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씁쓸함도 있었다. 쓴웃음이 나올만한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있었다"며 "영화 자체는 지금보다 조금 더 냉혹하고 냉정했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마르코 입장에선 굉장히 마음 아픈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제목을 '슬픈 열대'로 했는데 시나리오 자체는 제목에 딱 맞았다. 근데 현장에서 편집본을 보니까 영화가 슬픈데 밝았다. 하다가 점점 밝아지더라. 결국 '안 슬픈데?' 하면서 제목이 지금의 '귀공자'가 됐다"고 웃음을 보였다.
바뀐 제목에 더해 '귀공자'는 출연진으로도 한차례 잡음이 일었다. 일찌감치 주연으로 낙점 지었던 배우 김선호가 사생활 논란으로 자숙에 들어간 것.
이에 대해 박훈정 감독은 "저는 귀공자 역할에 김선호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를 만나지 못했다. 논란이 된 건 사생활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에, 범죄에 연루된 건 아니라 조금 더 기다려보고 싶었다"며 "제일 중요했던 건 본인의 상태였다. 본인이 준비가 됐다면 어떻게든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선호는 대부분의 차기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박훈정 감독은 그를 끝까지 믿었다. 그는 "김선호가 연극을 오래 해서 그런지 기본기가 탄탄했다. 캐릭터를 자기식으로 잘 소화하고, 연출할 때 생기는 빈 공간들을 기가 막히게 채워준다는 장점이 있다"며 "시나리오에 쓰인 대로만 하면 굉장히 작위적일 수 있다. 근데 그걸 그럴싸하게 표현해 준다. 그런 점들이 정말 탁월한 배우"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김선호와 함께 호흡을 맞춘 이는 신예 배우 강태주다. 앞서 박훈정 감독은 '마녀' 시리즈를 통해 배우 김다미, 신시아 등을 발굴했다. 이어 이번 그의 선택은 강태주였다.
박훈정 감독은 "강태주는 일단 외모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가 해외에서 공부를 한 적이 없는데 영어나 일본어를 독학으로 잘하더라. 굉장히 똘똘하다. 그게 연기할 때도 필요한 부분이다. 최종 오디션에서 눈빛이나 에너지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며 "연기에 대한 절실함도 있었다. 이 친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봤던 것 같다. 그런 에너지가 느껴졌다. 다만 연기적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거기에서 오는 부족함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장점"이라고 말했다.
연이은 신예 발탁에 대해 박훈정 감독은 "기본적으로 기성 배우나 신인 배우 상관없이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고 싶은 것이 첫 번째"라며 "신인 배우를 썼을 때 연출적인 장점은 그 캐릭터로 봐준다는 것이다. 유명한 스타 배우를 쓰면 그 배우로 보는데, 신인 배우들은 그 캐릭터로 봐준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장점이다.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이 캐릭터에는, 이 배우가 적합하다는 판단이 되면 신인 배우를 쓴다"고 설명했다.
이번 '귀공자'는 기존 박훈정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유머 코드가 조금 더 돋보였다. 이에 대해 그는 "제 유머코드는 일반적이지 않다. 극소수만 공감할 수 있는 유머들이다. 저 사실 되게 웃긴 사람"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렇게 잘 되는 편은 아니지 않나 싶다. 영화 스태프들도 이 정도 해서 안 먹히면 안 되는 거라고 얘기하더라. 이 정도 하면 먹힐 줄 알았는데"라고 농담했다.
다만 마냥 '코미디'적이진 않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귀공자'는 액션신에서 다소 폭력적인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박훈정 감독은 "수위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예전엔 후반 작업에 피를 더 넣었는데 요즘엔 쓴 피도 지운다고 하더라. 이번에 많이 지웠다.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저는 폭력은 폭력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다. 저는 상업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상업적으로 제가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에 일반 관객들이 거부감을 갖고 안 보면 소용이 없다"며 "그렇다고 해서 수위를 낮춘다고 해서 제대로 전달이 안될 수 있으니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박훈정 감독은 "이런 작품들로 희열을 느끼진 않는다. 그냥 취향이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 같다. 옛날 홍콩 영화 같다고도 하시는데 사실 맞다. 저는 그 영향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훈정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코미디를 시도했는데 스태프들이 빼면 안 되냐고 하더라. 고민이 많다. 제 코미디가 안 먹히는 것 같다"며 "저는 좋은 배우, 좋은 스태프에 대한 욕심이 많다. 상황만 되면 같이 하고 싶다"고 인사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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