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도 발명자” “자연인만 가능”… 발명자 법적지위 논쟁 불씨

“스스로 학습한 후 독자적으로 창작한 인공지능(AI)은 발명자다” “발명자는 자연인이어야 한다”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지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불씨의 시작은 미국의 인공지능(AI) 개발자 스티븐 테일러가 자신이 개발한 AI가 식품용기 등 2개의 발명을 스스로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2019년 테일러는 자신의 AI인 ‘다부스’를 발명자로 표시해 국제 특허출원을 냈다. 다부스는 ‘프랙탈 구조의 식품용기’와 ‘깜빡임 빛을 내는 램프’ 2개를 발명했다. 테일러는 “다부스가 발명 지식을 학습한 후 나도 모르는 전혀 다른 성격의 2개의 발명을 개발했다”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6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한국 특허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테일러는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30일 현행법상 사람만이 발명자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미국과 유럽·호주는 대법원(최종법원)에서 AI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됐고, 영국·독일도 대법원(항소 법원은 불인정)에 계류 중이다. 한국 법원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AI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주요국의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AI의 발명·연구개발 활용도가 날로 높아지면서 발명자의 법적지위 논의에 불씨를 당기고 있다. 

반도체 칩 설계와 신약 개발 등 특허출원 분야에서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그동안 숙련자가 하던 반도체 칩 설계 부분을 AI가 대체하며 수개월 걸리던 반도체칩을 6시간만에 완성하거나, 기능을 집적화해 크기를 기존의 4분의1로 줄이는 등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AI의 쓰임은 활발하다. AI는 코로나19 백신의 안정성을 높여 효능을 100배 이상 증가시키고 신약 후보 발굴 비용을 수십 배 이상 절약하고, 기간도 5년 이상에서 46일로 단축시켰다.  

최근 인공지능이 미술, 음악 등 저작물 제작에 기여한 사례도 연일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에서는 올해 3월 사람이 표현 창작물과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이 상호 결합된 저작물에 대해 사람을 저작자로 해 저작권으로 등록해주겠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도 AI를 발명자로 볼 것인 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올해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IPO의 특허법상설위원회(SCP)에는 ‘인공지능 발명자의 법적지위’가 의제로 상정돼있다. 내년 6월에 한국에서 진행되는 선진5개 특허청(IP5) 청장회의에선 한국 특허청이 제시한 ‘인공지능 발명자 관련 법제 현황과 판례 공유’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특허청도 AI 발명자 관련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대국민 설문조사에 나선다. 국내외 논의사항, 주요국 법원판결, AI 관련 발명 심사기준 등 제시와 함께 AI 활용 실태, AI 발명 법제화·소유권 등에 대한 설문조사도 벌일 예정이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주요국 특허청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AI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재산권 이슈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 AI 발명자에 대해 어떤 특허법 체계를 갖춰야 할지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