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동량 그대론데···발전기 공사·정비 빌미로 하청 임금 ‘620억원 삭감’

조해람 기자 2023. 7. 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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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공공운수노조 제공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화력발전소 설비를 정지·점검하는 ‘환경설비개선공사’ 등이 발전소 하청·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무비를 수백억원을 삭감하는 수단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입된 조치인데 정지기간 동안 이들의 노무비 삭감을 막을 조치는 부족했다. 발전소 청년 하청노동자인 김용균씨 사고 이후 이들의 노무비 착복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적정노무비’ 사업도 2021년 이후 멈췄다.

발전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피해가 몰리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고,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소외되는 노동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와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환경설비개선공사·계획예방정비 등을 이유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발전5사 하청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노무비가 총 628억1099만원 삭감된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직접·간접노무비가 약 428억원 삭감됐고, 노무비와 연동되는 복리후생비, 여비·교통·통신비, 운반·보관비, 하청업체의 이윤 등이 200억원가량 삭감됐다. 하청노동자들은 업체가 원청으로부터 받은 노무비로 임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이 같은 노무비 삭감은 노동자들의 피해로 돌아갔다.

공기 빠듯한데…정비 기간 넘기면 60~70% 삭감

하청업체 노무비 628억원은 발전소의 복잡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삭감됐다.

발전사들은 발전소의 운전·정비업무를 한국발전기술, 한전KPS, 금화PSC, 일진파워, 한국플랜트서비스 등 하청업체에 맡긴다. 하청업체들은 통상 발전소에 있는 여러 대의 발전기를 나눠 맡는다. 1차 하청업체가 재하청을 주는 사례도 많다.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 발전기들이 멈추는 일이 늘었다. 2016년 정부는 ‘석탄발전처리 및 오염물질 감축계획’을 통해 발전소들이 ‘환경설비개선공사’를 하도록 했다. 노후 발전기의 집진기(대기 중의 분진 등을 모아 처리하는 설비) 등 환경설비들을 개선하도록 한 것이다.

발전소들은 이에 대응해 하청업체와 공사 계약을 맺을 때 ‘정지기간이 일정 일수를 초과하면 그만큼 노무비를 삭감한다’는 특수조건을 걸기 시작했다. 정지기간이 90일 초과~180일 미만일 때는 초과한 기간에 해당하는 직접노무원가를 60% 삭감하고, 180일 이상일 때는 직접노무원가의 70%를 깎는 조건이다.

환경설비개선공사와 별도로 정해진 주기마다 발전기를 멈추고 정비하는 ‘계획예방정비’에도 노무비 삭감 조항이 있다. 1000MW급은 44~55일, 800MW는 37~45일 등 발전기의 용량(규모)에 따라 정해진 공기를 넘기면 그 기간의 노무비는 60% 삭감된다.

석탄화력발전소 운영 방식과 발전5사 인원 구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 제공

이 같은 노무비 삭감 조항은 ‘발전기 단위’가 아니라 ‘업체 단위’로 적용됐다. 예를 들어 발전기 10대가 있는 A 발전소에서 1~4호기 운전·정비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B사가 있다고 하면, 1호기가 환경설비개선공사로 정지해도 2~4호기는 정상 작동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업무는 줄지 않는다. 1호기 담당자들도 2~4호기의 경상정비(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정비)에 투입되거나, 1호기 정비공사를 위해 들어오는 수천 명의 외부인력과 함께 작업한다.

환경설비개선공사나 계획예방정비를 해도 하청노동자들의 노동량은 줄지 않는데, 임금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셈이다.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전체 발전기를 세우는 경우는 절대 없다”며 “공사를 위해 들어오는 외부인력에 대한 화재감시, 인적·일정 관리 등 다른 일들까지 중간에 하게 된다”고 했다.

90일과 180일이라는 환경설비개선공사 공기도 빠듯하다. 해당 공기는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기준을 준용한 것이라 ‘주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현재 실정과 맞지 않는다고 노동자들은 지적한다. 발전기별 계획예방정비 공기도 2013년 기준을 그대로 쓰고 있다. 특히 계획예방정비는 전력 피크기간인 하절기·동절기에 실시할 수가 없어서 주로 봄·가을 안에 몰린다. 사실상 봄·가을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계획예방정비가 돌아가게 되고, 하청노동자들은 6개월 동안 상시적인 노무비 삭감 위기에 놓인다.

삭감된 노무비는 고스란히 하청노동자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배 의원실 자료를 보면 5년간 발전 5사 협력업체별 삭감 노무비는 한전KPS 310억6040만원, 금화PSC 66억4105만원, 한국발전기술 59억3850만원, 일진파워 49억5650만원 등이다.

2018년 8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3호기 보일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석탄을 운반하고 있다. 남지원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남동발전으로부터 받은 ‘호기별 노무비 삭감액’을 보면, 2020년 진행된 삼천포5호기의 환경설비개선공사는 517일이 걸려 ‘180일’ 기준을 337일 초과했다. 공사를 진행한 한전KPS는 337일간의 직접노무원가인 69억9000만원에서 40억6000만원이 삭감된 29억3000만원을 해당 기간 노무비로 받았다.

한국발전기술은 2019년 2월 남동발전 삼천포6호기의 환경설비개선공사 계약을 따낸 시공사 BDI로부터 다시 수주를 받아 ‘2차 하청’ 형태로 공사에 투입됐다. 그러나 시공사의 부실시공·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애초 18개월로 예정됐던 공사는 34개월이 지난 2021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그동안 노무비 지급률은 2019년 70%, 2020년 46%, 2021년 55%를 기록했다. 계약금액 54억1000만원에서 23억1000만원이 삭감됐다.

신 지부장은 “노무비를 삭감 없이 지급해야 하는데 발전사가 임의대로 계약조건을 바꿔서 삭감하는 불공정 계약을 맺은 것”이라며 “협력업체들은 부당함을 알아도 이의제기를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2의 김용균 막자는 ‘적정노무비’, 시범사업 끝난 뒤 ‘방치’

이 같은 상황에서 그나마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전해주던 정책사업인 ‘적정노무비’도 중단됐다. 적정노무비 사업은 2018년 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 사고 등으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도입됐다. 발전소들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적정한 노무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2년간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2022년부터 적정임금제 정식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2020년 76억2000만원, 2021년 76억원의 적정노무비가 발전 5사 하청노동자들에게 지급됐다.

2021년 시범사업이 끝난 뒤에도 적정노무비는 도입되지 않았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에 적정노무비가 반영되지 않았다. 금화PSC와 한전산업개발, 일진파워 등 일부 업체만 2022년 4분기에 31억4000만원의 적정노무비를 받았다. 2023년 2월 기준으로는 한전산업개발(1억3000만원)과 원플랜트(4억4000만원)만 적정노무비를 받았다.

2019년 2월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씨의 빈소 앞에 시민들의 추모 메모가 붙어 있다. 권도현 기자

발전소들이 적정노무비 도입 시점을 미루려 하는 정황도 드러났다. 한국남부발전은 지난해 8월 류 의원실에 “2022년 10월 신규계약 체결 시 적정노무비를 정산할 것”이라고 답했다가, 같은 해 12월29일 “용역 결과 이후 신규 발주 경상정비 공사 설계부터 반영해야 한다는 일부 발전사 감사의견에 따라 2023년에 (적정노무비를)지급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남동발전도 지난해 9월 류 의원실에 “2022년 신규계약 체결 시 적정노무비를 정산해 지급할 예정”이라고 했다가 같은 해 12월29일 “연구용역 준공 이후 신규 발주되는 경상정비공사부터 반영해야 해서 2023년부터 적용 가능하다”고 답했다.

정부는 별도의 조치나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 발전산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노무비 삭감과 적정노무비 등은) 개별 발전사들의 계약과 관련된 사항이라 부처에서 계약을 어떻게 하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 간사는 “계획예방정비 표준공기 지침까지 설정하는 등 발전소 운영을 관리하는 정부가, 노무비와 관련된 부분에 책임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식사시간·식비까지 차별…발전소 ‘다단계 하도급’ 개선해야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발전사의 다단계 하도급 문화를 본질에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의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재하청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적정노무비’조차 받지 못했다. 노조가 생기고 나서야 단체협약을 통해 노무비를 인상할 수 있었다.

임금 외에도 식사 등 기본적인 영역에서 차별을 당하는 예도 있다. 김 지회장이 일하는 태안화력발전소는 직원의 소속에 따라 식비와 식사시간이 다르다. 원래는 모든 노동자가 4500원을 내고 식사를 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재하청업체 비정규직들은 6500원을 내고 점심을 먹어야 한다. 원청과 1차 하청업체인 한전KPS 직원들의 식비는 여전히 4500원이다. 식사시간도 원청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로, 하청·재하청업체 직원(12시~1시)보다 30분 길다.

한 2차 하청업체 직원은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 온라인 게시판에 “2차 하청업체 직원 대부분이 지역 주민인데, 지역 주민과 함께한다는 공공기업이 (지역 주민에게)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한 건 매우 차별적이고 공공기업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며 “시간을 달리 책정한 것도 혼잡방지 명목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늦게 식사하는 직원들은 매우 부족한 메뉴를 배식받고 있다”고 했다.

한 2차 하청업체 직원이 지난 5월12일 한국서부발전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 제공

김 지회장은 “발전소 담당 직원은 ‘물가 상승 등으로 식당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지만, 식당 운영이 어렵다면 전체적인 가격을 공평하게 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동료들도 그 이야기만 하면 ‘화딱지’가 난다며 속상해한다”고 했다.

이 간사는 “김용균씨 사고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널리 알려졌지만 발전사들이 다단계 하도급을 주는 구조는 여전하다”며 “원래 한전 하나의 체계였던 발전사가 5개로 쪼개지면서, 각 발전사들이 경쟁하듯 경비를 쥐어짜내며 가장 아래의 하청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가 열악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필수재인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도 외주화된 사업방식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책임지는 공영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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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백화점’인 발전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업무는 하청·비정규직의 몫이고, 식비까지 차별하기도 했습니다. 남지원 기자가 2018년 8월 태안화력발전소를 찾아 살펴봤습니다.


☞ [현장]비정규직은 점심값도 차별···화력발전소 노동자가 숨진 자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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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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