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프리고진 기업 몰수 추진…애인한테 넘길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말 무장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사업체를 몰수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프리고진의 협조 없이 복잡하게 얽힌 이 사업체들을 효과적으로 인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일(현지시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패트리엇 미디어 그룹’을 압수 수색했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프리고진의 미디어 제국을 이루는 핵심으로 그동안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에 대한 지지 메시지를 소셜미디어 채널에 대량으로 살포해왔다. 산하엔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받는 인터넷연구기구(IRA)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연방보안국 요원들은 이번 압수수색에서 사무실의 컴퓨터와 서버를 샅샅이 찾아내 가져갔다. 패트리엇 미디어 그룹은 곧 푸틴 대통령의 숨겨진 여자친구로 아이 셋을 나은 것으로 알려진 리듬체조 선수 출신 알리나 카바예바의 내셔널 미디어 그룹이 인수하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프리고진은 지주회사 ‘콩코드’를 통해 바그너 그룹을 관리하면서 크렘린이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왔다. 푸틴 대통령은 콩코드와 바그너 그룹을 장악하기 위한 조처에도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위해 크렘린은 지난달 24일 바그너 그룹과 콩코드의 소셜미디어 채널을 막았다. 그동안 이들은 이 채널을 통해 크렘린의 정책을 널리 알리고 옹호하는 나팔수 구실을 해왔다. 콩코드의 여러 자회사들 역시 보안 요원들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보안 요원들은 이를 통해 권총, 가짜 여권, 몇백개에 이르는 회사 명단, 4800만달러(629억원) 상당의 현금과 금괴를 찾아냈다.
나아가 프리고진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야루스 역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서비스를 중지했다. 프리고진의 뉴스 통신사 ‘리아 판’의 임원 에브게니 주바레프는 지난달 30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서 통신사가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크렘린은 또 바그너 그룹의 용병이 파견된 아프리카와 중동 나라들에게 더는 이 조직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신문은 크렘린이 복잡하게 얽힌 프리고진의 방대한 제국을 순조롭게 인수하는 게 쉽진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우선 바그너 그룹과 아프리카 나라들의 계약은 비공식적이고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이 개입돼 있다. 이런 사업을 인수하려면 프리고진의 협조가 불가결하다. 프리고진은 지난달 쿠데타를 일으키기 몇 주 전 자신의 일부 지분을 측근에게 넘겨 지분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고진의 사업 제국은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뿐 아니라 금융·건설·물류·광산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딸 폴리나와 아들 파벨, 부인 등이 운영하는 개인 기업도 있다. 그와 관련된 무역회사 ‘브로커 엑스퍼트 엘시시’는 바그너 그룹이 통제하는 수단의 광산에 굴착기를 보냈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삼나무 벌채 허가권을 가진 기업 ‘부아 루주’에 트랙터를 보냈다.
외국에 용병을 보낼 때도 내부적으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회사들을 이용했다. 보안 요원을 파견하는 ‘세와보안서비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금융회사인 엠-인베스트의 자회사이다. 또 다른 용병회사 에브로 폴리스는 시리아 유전의 보안을 책임지는 대가로 생산량의 4분의 1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프리고진 제국의 복잡한 구조를 통해 인력회사 ‘서비스 케이 엘엘시’와 연결된다. 바그너 그룹은 적어도 6곳 이상의 해외 광산과 계약을 맺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장비·물품 등도 바그너 그룹과 얽혀 있는 다른 기업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말리에서는 바그너 그룹의 회사가 2021년 말 이래 2억달러(2619억원)을 받았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선 바그너 그룹이 통제하는 기업이 은다시마 금광의 채굴권의 상당 부분을 행사하고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된 금은 다시 프리고진의 다른 기업을 통해 외국에 팔려나간다.
신문은 프리고진의 사업 제국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고, 정확한 지분 구조가 드러난 적도 없다고 전했다. 바그너 그룹을 관찰해온 미국 전직 고위 당국자는 “따로 설립된 뒤 협력하는 사이가 된 많은 사업체가 프리고진 없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계속 기능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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