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넘어, 동아시아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다
제5회: 동아시아 문제와 글로벌 언론관계
2020년 7월 미국 <뉴욕타임스>의 아시아 뉴스룸이 홍콩에서 서울로 옮겨 왔다. 이는 미국과 유럽 등 서구가 아시아의 전략적인 거점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관한 많은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지만,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동아시아의 중요성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그 동안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아시아 거점은 주로 홍콩에 상주해 있었다. <뉴욕타임스> 뉴스룸도 뉴욕, 런던과 함께 홍콩에 있었지만, 그 아시아 센터가 서울로 이전했다.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유명한 영국의 프리즈(Frieze)도 작년 가을에 한국에서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을 시작으로 매년 개최된다. 이 행사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동안 미국과 유럽의 아시아 센터는 주로 홍콩이나 동경에 있었다. 그 아시아 센터들이 서울로 이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홍콩이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허브의 역할을 해 왔지만, 2019년 송환법 반대운동으로 민주화 운동이 격화되고 중국 중앙정부가 이를 탄압함에 따라 서구 자본은 홍콩에서 금융허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에 따라 동경이 아시아 금융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21세기 산업의 쌀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의 생산기지도 미국은 자국으로 내부화하거나 대만의 TSMC 등의 공장을 일본에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 6월29일 정책공간 포용과 혁신의 목요포럼은 미중 갈등과 함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점점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어떤 인식과 전략을 가져야 하는 지에 관해 ‘동아시아 문제와 글로벌 언론관계’라는 주제로 서울에 주재하는 외신기자와 함께 전문가들이 토론을 진행했다. 임채원 포용과 혁신 정책기획위원장(에든버러대학교 방문학자)이 국가와 문명 연구의 관점에서 토론 내용을 기초로 ‘한류를 넘어 동아시아 르네상스’라는 주제로 정리를 했다.
미중 갈등과 동아시아 문명의 봄
1842년 아편전쟁이 영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고 난징조약이 체결되면서 동아시아는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문명의 긴 겨울에 접어들었다. 불과 3000명의 영국군에게 ‘잠자는 호랑이’라고 불리던 중국은 전쟁사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처참한 패배를 겪게 되었다. 1492년 지리상의 발견 이후 시작된 대항해 시대 이래로 아편전쟁 이전까지 중국은 여전히 유럽보다 경제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다. 세계 경제는 은본위제로 운영되었고 국제통화 수단인 은은 중국의 비단, 도자기 등 생산물에 대한 댓가로 유럽에서 중국으로 흘러들었다. 유럽의 무역적자는 갈수록 심각하게 악회되었다.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영국은 인도의 아편을 이용한 삼각무역으로 무역역조를 개선했지만, 아편 전쟁 이전까지 중국의 정치군사적 우위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중국의 허약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앞다투어 중국으로 진출했다.
그로부터 180여년이 지나서 동아시아 문명의 긴 겨울이 끝나고 다시 문명의 봄이 열리고 있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 반환 이후 그리고 시진핑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미국에 굴기(屈起)하는 국가가 아니라, 대등하게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세계 패권국가의 전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 지도부의 암묵적인 지향은 1842년 난징 조약 이전의 동아시아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 패권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난징 조약 이전에 청나라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 패권을 다시 중국이 가져 오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1997년 홍콩 반환에서 영국과 합의한 조약 내용은 향후 50년 동안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불과 30년도 되지 않아 이 합의는 중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무시되었다.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송환법반대 운동 등의 홍콩 민주화 운동은 이러한 합의의 파기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자치권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합의를 파기하면서 무리하게 북경 지도부가 홍콩을 중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완전히 편입시키려는 것은 1842년 난징조약 이전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되돌리려고 하는 염원 때문이다. 중국 중앙정부의 시선은 이제 홍콩 다음으로 대만으로 향해 있다. 이 홍콩과 대만의 전선에서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계와 한류
미중 갈등은 첨예화되고 있지만, 대등한 관계를 향해 가는 동아시아 문명은 긴 겨울을 지나 문명의 봄을 맞이하고 있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경제적인 경쟁과 함께 정치군사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한류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르네상스의 소프트 파워로 동아시아 문명의 봄을 맞고 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에서 한류는 전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영국의 대영박물관만큼이나 유명한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Victory & Albert Museum)에서 열리고 있는 ‘한류특별전’은 유료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의 아트 페어에서 한국의 현대, 국제 조현 갤러리 등에서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서 사실상 한류특별전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한류는 미술,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로 진화하고 있다.
한류가 유럽과 미국 등 서구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후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 그들의 한계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1960년대 이래로 학생운동, 인권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체와 전복’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이후 50년 이상이 지나고 있지만 서구는 그 다음의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최근에는 흑인 문화(black culture)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문명을 제외하면 세계 문명을 주도할 대안적인 담론으로 성장하고 못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유로운 문화가 피어나지 못하고 있고, 홍콩은 한 때 느와르 영화 등 문화부흥이 있었지만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화양연화(花樣年華)의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하고 세계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일본은 문화의 갈라파고스가 되어 세계적인 문화를 주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동아시아 문명의 봄에 이를 담당할 수 있는 세계적인 담론과 예술이 나오고 있는 것이 한류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르네상스이다.
동아시아 르네상스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지원
문명사적 맥락에서 한류를 보면, 이는 반짝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 지속적인 흐름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음악 등 몇몇 대중문화를에서 한류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동아시아 르네상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간분야와 함께 국회와 정부 등 공공분야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요청되고 있다. 한류의 다음 분야는 대중 문화와 가까운 동양화 등 ‘전통과 21세기를 잇는 현대미술’이 될 것이라는 예상들이 많다. 그러나 현재 동양화의 시장 가격은 서양 미술에 비해 턱없이 저평가되어 있어, 미술 분야에서 한류가 일어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국회와 정부 등 공공 분야가 민간의 문화예술 역량과 함께 새로운 동아시아 르네상스 캠페인의 필요성이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는 이 때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한류를 넘어선 동아시아 르네상스의 지원이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국회의장 집무실, 국회 접견실, 사무총장 사무실 등에 동아시아 르네상스를 대표할 수 있는 동양화 작품들이 상시전시되고 있다. 국회의장 집무실은 여야 원내대표 회담이 주기적으로 열리는 공간으로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동아시아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태극홍매(太極紅梅)’의 매화 그림은 ‘다시, 봄’이라는 주제로 동아시아 르네상스를 보여주고 있다. 16세기 피렌체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진주조개에서 태어나는 비너스를 통해 중세에서 근대로 문명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에서 매화 그림은 900년 전 남송 시대에 송백인의 매화희신보(梅花喜紳譜)가 나온 이후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한 문인화의 대표적인 소재였다. 특히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는 설중매는 동아시아 문인들의 기개와 기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동아시아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또 다른 매화그림인 ‘소청홍청매’는 동아시아 문명이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오고 있음을 백매와 홍매가 어우러져 문명의 봄을 표현하고 있다. 국회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는 한류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르네상스 캠페인은 국회 등 공공 분야에서 문화예술계를 지원하여 한류가 일시적인 흐름에 그치지 않고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 등 민간 영역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 대한 외신 프레임으로서 동아시아 르네상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한 국가에 대해 특정한 프레임으로 그 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언론의 특성상 외신들은 긍정적인 뉴스보다는 사건 사고가 되는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 대한 외신들의 프레임은 그 동안 부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남북 갈등뿐만 아니라 민주화 시기에는 학생운동과 노사갈등의 프레임이 작동했다. 지금은 압축성장 이후 그 부작용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세계 최고의 저출산 문제, 급속한 고령화, 노인빈곤 등 부정적인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한류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르네상스는 한국에 대한 외신들의 긍정적인 프레임을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한류는 180여년 동안 겪었던 동아시아 문명의 긴 겨울을 지나서, 한국이 21세기 인류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한국은 20세기의 식민과 전쟁 그리고 냉전을 이겨내고 산업화와 민주회를 이루고 동아시아 문명의 전통에 자유와 인권 등 서구적 가치를 수용해서 동서 문명이 화해하고 또 다른 차원으로 승화된 동아시아 르네상스가 발화하는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동아시아 르네상스가 미중 갈등의 문명 충돌이 아니라 소프트 파워를 기반으로 문명화해와 지구적 평화의 여는 문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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