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부족해 투약사고도”…‘아찔’하고 ‘미안’했던 경험 증언한 간호사들
환자 18명 한꺼번에 간호도
간호사 1명당 환자 2.5명인
의료법 시행규칙 ‘유명무실’
“저는 적절한 간호사 인력을 배치받지 못해 (과도한 노동에 내몰린) 피해자임과 동시에 그로 인해 모든 환자에게 적절한 간호를 제공하지 못한 가해자입니다.”
비수도권 대학병원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간호사 A씨는 3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건물에서 개최한 ‘의료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과 의료질에 미치는 영향 증언대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간호사들은 혼자 많은 환자를 돌보다 보니 전인간호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료사고에 가까운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환자 18명을 한번에 간호한 경험을 털어놨다. 간병인이 없는 환자 중 2시간마다 가래를 제거해줘야 하는 환자가 있었는데, 수술 후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나 혈압·혈당이 비정상적인 환자를 돌보느라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한다. 가래 제거를 3~4시간 만에 한 그 환자는 결국 폐렴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환자는 회복 후 퇴원했지만 “범죄자가 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A씨는 말했다.
숙련 간호사가 부족한 실태도 환자 안전에 영향을 줬다. 수도권 대학병원 병동에서 7년간 근무하다가 사직한 간호사 B씨는 “신규 간호사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투약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B씨가 근무한 병동은 근무조당 간호사 5명이 환자 47명을 책임졌다. 간호사 5명 중 3명이 신규 간호사였다. B씨는 “투약하기 전에 약전을 찾아보고 용량, 시간, 경로 등을 확인 후 약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신규 간호사들이 (다른 간호 수요 때문에) 잘 알지 못한 채 약물을 준비한다. 중간 연차 선배 간호사한테 확인을 받기도 하지만 선배 간호사가 바쁘면 신규 간호사 혼자 알아서 해야 해 투약사고로 이어진다”고 했다.
간호인력 부족은 신규 간호사들이 업무를 익히는 데도 한계로 작용했다. 신규 간호사 C씨는 “매일 버겁게 일을 하고 퇴근 시간 2시간이 지나서야 퇴근한다”며 “(스스로가) 의료 소모품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C씨는 “한두 달 교육 후 병원에서 환자 8~13명을 돌봤다”면서 “교육 중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며 일을 했고, ‘내 가족이라면 이런 간호사에게 맡기기 싫겠다’란 생각에 멍청한 자신이 부끄럽고 환자에게 미안해 울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C씨는 “침상의 이름표 없이도 환자 이름을 불러주고, 불안해하는 환자 곁에서 손을 잡아주고 싶다”면서 “소진되어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토론자로 나온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학장은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간호사 1명당 환자 2.5명을 배치해야 하지만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인력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료사고라고 할 수 있다”며 “적정 의료인력을 배치하는지에 대한 감시 활동, (추가) 의료인력 투입을 촉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간호사 1명당 환자 수 5명), 보건의료인력 확충(의대 정원 확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공공의료 확충과 코로나19 대응에 따른 공공병원 회복 지원 확대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28일 전국 147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노동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쟁의조정 기간(12일까지)에 핵심 의제가 관철되지 않으면 오는 13일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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