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필리핀→호주 거쳐 英·美로…“아시아는 K-팝 고급반”
글로벌 음악 차트 지배자 된 틱톡
피프티 피프티, 틱톡 유저 영상 인기로
흙수저 K-팝 그룹 최초 美 빌보드 입성
인니→필리핀→호주 거쳐 英ㆍ美 확산
“K-팝 고급반 아시아”…K-팝 확산 기지
성시경 발라드ㆍ임영웅 트로트도 가능성
“문화적 현상 아닌 음악 소비로 접근…
각각의 나라마다 촘촘한 분석 필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23년 2월 26일. 틱톡의 인도네시아 유저는 이틀 전 발매한 K-팝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CUPID)’의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을 만들어 올렸다. 3월 초, 틱톡에선 이 노래의 ‘챌린지’가 시작됐다. ‘스페드 업’ 버전 영상 노출 이후 열흘 정도 지난 3월 11일 미국 빌보드의 세부 차트인 ‘월드 디지털 세일즈 차트’에 8위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같은 달 27일 마침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00위로 진입했다. K-팝 사상 최단 기간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기록이었다. 100위로 시작해 94위→85위→60위→50위→41위→19위→17위 →18위→20위→23위→21위→24위→24위. 미국 빌보드를 비롯해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 K-팝 걸그룹 최장 진입 기록을 세우고 있는 피프티 피프티의 흥행 과정이다. 탄탄한 K-팝 팬덤 기지인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영국과 미국 등 본토 팝 음악시장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배정현 틱톡 아시아 음악 개발 총괄은 “‘큐피드’의 경우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필리핀으로 넘어가고, 영어권인 필리핀에서 근접한 호주를 타고 영국, 미국으로 흘러간 것으로 관찰됐다”고 말했다. ‘큐피드’는 ‘MZ들의 놀이터’인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통해 영미 주요 차트를 최장기간 흔든 K-팝 첫 사례다.
틱톡은 이미 몇 해 전부터 글로벌 음악 차트의 지배자였다. 눈에 띄는 조짐이 나타난 것은 2021년이었다. 미국의 ‘괴물 신예’로 불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출발이 틱톡이었다. 로드리고의 데뷔곡 ‘드라이버스 라이센스(Driver’s License)’가 틱톡에 올라오는 영상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 무수히 많은 조회수를 만들며 미국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 틱톡에 따르면 2021년 틱톡 플랫폼의 트렌딩 곡 중에서 175개 곡이 미국 빌보드 ‘핫100’에 진입했고, 2022년엔 ‘핫 100’ 차트 중 1위에 오른 14개 곡 중 13개가 틱톡 등의 숏폼 플랫폼에서 바이럴 된 음악이었다.
배 총괄은 “미국에선 전 인구의 50%가 틱톡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비단 젊은 친구들만 사용하는 앱이 아니라 이미 대중화된 플랫폼이 됐다는 의미다”라며 “한국 시장에서 틱톡의 사용은 성숙 단계라면, 동남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선 기존의 여러 플랫폼을 대체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틱톡의 전 세계 사용량 증가는 K-팝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음악시장에서 틱톡은 K-팝 가수들의 컴백 ‘필수 코스’인 챌린지 수단으로 출발했다. 앞서 틱톡 효과를 본 가수로는 블랙핑크 리사가 있다. 물론 리사 개인의 ‘글로벌 인지도’와 영향력이 바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발매된 그의 첫 솔로 앨범 ‘라리사(LALISA)’에 수록된 ‘머니(MONEY)’는 발매 두 달이 지나 빌보드 ‘핫 100’에 진입했다. 당시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패러디 영상에 리사의 ‘머니’가 쓰이면서 차트가 움직였다. 피프티 피프티의 사례는 또 다르다. 인지도와 기획사의 힘이 전무했던 신인 그룹의 음악이 틱톡 내에서 자발적으로 확산됐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아시아와 북남미 전역, 영국에서다. 현재는 데뷔 7개월 만에 전속계약 분쟁에 휘말렸으나, 이들의 차트 성과는 ‘진행형’이다.
틱톡이 음악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것은 대중의 ‘음악 청취 방식’이 달라지면서다. 미국 MRC 데이터에 따르면 틱톡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답변자의 75%가 틱톡을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한다고 했고, 63%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음악을 틱톡을 통해 접한다고 답했다. 틱톡에서 접한 음악을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검색한 경험이 있다는 답변은 67%나 됐다. 틱톡 플랫폼 내에서의 음악 청취가 주요 차트 진입 성과로 나타나는 이유다.
틱톡에 따르면 이 플랫폼의 영상에서 사용된 음악이 미국 빌보드나 영국 오피셜 차트에 진입하면 본격적으로 ‘듣는 음악’으로 전환된다. 배 총괄은 “영상을 통해 음악을 접한 사람들이 스포티파이 등의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을 통해 음악을 소비하고, 그들이 다시 틱톡으로 들어와 ‘영상화’에 참여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거쳐 차트 ‘장기 집권’이 이뤄지는 것이다. 피프티 피프티의 사례다. 현재 틱톡에서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 관련 영상 조회수는 50억, 챌린지 관련 영상은 3억 8600만을 넘어서고 있다.
아시아 시장은 K-팝이 영국, 미국으로 확산하는 데에 중요한 ‘전초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각각의 나라가 동떨어져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배 총괄은 “아시아 시장의 유저들은 다른 시장에 비해 K-팝 고급반 학생들에 해당한다”며 “틱톡에선 K-팝 그룹의 앨범 발매 초기 아시아권이 미국 등 전 세계 전역으로 음악을 전파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K-팝을 좋아하는 아시아의 크리에이터는 ‘글로벌 바이럴’의 시발점이다. 틱톡이 음악스타트업 스페이스 오디티와 함께 틱톡 내 K-팝 영상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9월 기준 틱톡에서 생성된 K-팝 관련 영상의 92.8% 이상이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생성됐다. 이들은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와 같은 빅그룹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K-팝의 구석구석을 깊이 들여다보며 알려지지 않은 그룹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중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시장은 K-팝의 주요 소비 국가다. 스페이스 오디티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네시아는 전체의 6.8%로 K-팝 소비 국가 3위, 태국은 5.4%로 5위, 필리핀은 미국과 함께 4.7%로 공동 7위, 베트남은 3.3%로 9위에 올랐다. 톱10에 오른 K-팝 주요 소비국가 중 4개국이 동남아시아다. 틱톡에 따르면 인구 2억 7000만 명의 인도네시아는 K-팝 영상을 가장 많이 만든 국가(16.4%)였다. 이어 필리핀(13.5%), 미국(8.7%)이 순위에 올랐다.
배 총괄은 “로컬 음악이 굳건한 동남아시아 차트에서 K-팝은 자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태국의 주요 차트 톱50에선 한국 노래가 15개, 베트남 차트에선 12개가 올라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K-팝 고급반’인 동남아시아 유저들은 대체로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젊은 크리에이터가 많다. 이들은 최신곡부터 과거 발매곡까지 섭렵, 적극적인 영상 창작자로 활동한다. 트레저의 ‘다라리’ 역시 동남아발 글로벌 트렌드를 만든 곡이다.
영상을 통한 음악 소비의 장점은 두 가지다. “언어적 거부감이나 장벽 없이 음악을 듣는다”는 점과, “신곡, 구곡에 상관없이 영상과 어우러지면 바이럴이 된다”는 점이라고 배 총괄은 설명한다. 때문에 그간 주류 팝 시장 진입의 취약점으로 꼽힌 한국어 가사도 ‘언어의 제약’ 없이 차트 석권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생겨났다. 이미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K-팝의 입장에선 청신호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주목받지 못한 과거의 노래도 재조명 받을 가능성이 이 플랫폼을 통해 만들어진다.
비단 K-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시경표 발라드를 비롯해 임영웅표 트로트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높은 인기를 모을 수 있는 장르라는 분석이다. 틱톡에 따르면 K-팝은 전 세계의 문화적 현상이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보편적인 음악 정서는 우리의 ‘발라드’와 닮았다. 배 총괄은 “이 지역의 음악은 굉장히 서정적이고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맞닿아있어 한국의 발라드나 임영웅의 트로트 장르도 소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계를 넘나드는 바이럴 중 번안곡이 많다는 특징이 있어 원곡은 원곡대로 공유하고, 그것을 다시 불러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 동남아시아 시장이다”라고 설명했다.
K-팝이 초창기에 정착한 아시아는 주력 무대가 미국, 유럽으로 확대된 이후, 다소 ‘수동적인 소비 시장’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하지만 글로벌 SNS 시대가 도래하며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배 총괄은 “능동적인 젊은 세대가 많은 아시아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잠재력이 커,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스프링보드 역할을 한다”며 “K-팝은 여전히 문화 현상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음악 산업을 위해선 음악 자체의 소비가 이뤄져야 한다. 아시아를 하나의 음악 소비의 시장이자 공동 창작의 시장으로 바라보고 각 지역마다 촘촘히 분석해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연아·고우림 85억 신혼집 공개..."발 밑이 한강이네"
- “그만 때려요”…회초리 피해 5층 아파트서 뛰어내린 6세 남아 [차이나픽]
- 손지창·오연수 “중학교 선후배 사이…6년 간 비밀 연애”
- "나라 망신"…태국서 성희롱 저지른 유튜버, 여전히 음란방송
- 박명수 '한국무용 전공' 딸 교육비 언급 "돈 무지하게 들어간다"
- 이시언, ‘나혼산’ 하차한 진짜 이유...“ 연기 해도 예능만 기억”
- "이거 먹고 20년간 8억원 모았다"…日 45세男 ‘자린고비 식단’ 화제
- 한소희, 모델 채종석과 열애?…소속사 "전혀 사실 아니다"
- 중국산 김치 먹으면 암 걸린다?…中 김치 85% 발암 가능 물질 함유
- 썬글라스에 담요까지 두르고…유명 팝가수 공연장 나타난 팬, 무슨 사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