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성공 이끈 이 말, '지적 정직함'의 비밀 [視리즈]
세계적 영향 미칠 것이란 자신감
기술의 민주화 이끌어낸 원동력
전략적 실수와 패착 숱하게 겪어
실패 인정하는 ‘지적 정직함’으로
혁신적 성공의 길 걸은 엔비디아
젠슨 황의 항해는 어디로 향할까
# 우리는 엔비디아 경영론 1편(더스쿠프 통권 551호ㆍ2011년 젠슨 황 2023년 젠슨 황)에서 2011년 우리가 만났던 젠슨 황과 2023년 외신이 마주한 젠슨 황의 교차점을 살펴봤다. 12년이란 시간의 간극에도 그의 업무 방식, 리더십, 경쟁을 대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 그렇다고 젠슨 황이 한결같이 성공적인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그에게도 분명 실패의 역사가 있었다. 젠슨 황은 어떻게 시행착오를 딛고 그래픽 칩의 제왕이 될 수 있었을까. 엔비디아 경영론 두번째 편이다.
■ 키워드➍ 세계화 = 엔비디아 경영론 1편에서 살펴봤듯, 우리는 2011년 '제2의 잡스'로 부상하던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을 인터뷰했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지만,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들려줬던 업무 방식과 철학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루 14시간을 일에 쏟아붓는 하드워커이자, 소통을 즐기면서도 경쟁은 두려워하지 않는 젠슨 황의 면모는 엔비디아의 성장에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어느새 애플ㆍ테슬라 등 '글로벌 스탠다드'를 대표하는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12년 전 우리와 인터뷰 당시 "엔비디아는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했던 젠슨 황의 말이 현실로 이뤄진 거다.
젠슨 황 역시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엔비디아의 달라진 가치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는 올 3월 미국 언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AI를 위한 세계의 엔진(We're the world's engine for AI)"이라면서 "엔비디아는 이제 모든 국가와 모든 과학, 모든 클라우드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젠슨 황은 "거대 기업부터 수천 개의 스타트업,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에서 디지털 생물학이나 로봇공학까지 모든 분야로 엔비디아의 기술을 확산할 수 있었다"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기술을 민주화한 우리의 방식에 정말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 말을 좀 더 자세히 풀어보자. 젠슨 황에 따르면 과거 IT 회사를 창업할 땐 수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하지만 AI 슈퍼컴퓨터가 등장한 이후론 IT 스타트업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엔지니어는 여전히 스타트업의 핵심 인력이지만, 이젠 25~30명 남짓의 적은 인원으로도 얼마든지 IT 회사를 차릴 수 있다. 엔비디아는 슈퍼컴퓨터용 AI 칩을 만드니, 따지고 보면 스타트업의 문턱을 낮추는 데 엔비디아도 기여한 셈이다.
■ 키워드➎ 실패의 미학 = 엔비디아가 기술의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여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례로 엔비디아는 창업한 지 2년 만에 폐업 위기로 내몰렸다. 엔비디아의 첫 GPU(Graphic Processing Unit) 제품인 'N1'이 흥행에 참패하면서다.
투자금마저 바닥났지만 젠슨 황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N1의 실패가 부족한 호환성에 있다는 걸 간파하고, 차세대 모델인 'NV3'에선 업계 표준기술을 적용해 호환성을 높였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NV3을 기점으로 엔비디아는 PC용 GPU 시장의 선두 기업으로 올라섰다.
2011년 인터뷰에서 젠슨 황은 그 시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뼈아픈 실패가 없었다면 성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는 값진 교훈을 준다.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도전하면 성공의 열매를 딸 수 있다."
언뜻 '경영학개론'에 나올 법한 뻔한 지론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젠슨 황이 말하는 실패는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적 정직함을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하는 정신'으로 풀이했다.
2023년 젠슨 황이 얘기하는 '실패의 미학'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대만의 경영ㆍ경제 전문 미디어인 커먼웰스 매거진의 보도에 따르면 젠슨 황은 뉴욕타임스(NYT), 와이어드(WIRED), NPR 등 유수의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전히 지적 정직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가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관용과 실패로부터 배우는 능력이다. 이 둘은 지적 정직함을 기반으로 한다. 지적 정직함이란 실수를 숨긴 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잘못 투입하는 대신, 필요하다면 솔직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태도를 의미한다(2023년 3월 CNBC 인터뷰)".
젠슨 황이 추구하는 실패의 미학이 이상적인 이론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엔비디아에선 한번도 실행해본 적 없는 아이디어라도 이를 얼마든지 시도하고 또 '실패해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시행착오 끝에는 반드시 교훈이 있다는 엔비디아만의 철학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젠슨 황은 "모든 회사는 실수를 많이 하고, 나 역시 몇가지 전략적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면서 "다만, 직원들에게 실수 그 자체보다 실수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도록 주문했다"고 말했다.
■ 키워드➏ 혁신과 재창조 = 젠슨 황과 엔비디아는 실패를 통해 쉽게 좌절하지 않는 맷집을 키웠다. 덕분에 엔비디아는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혁명의 분기점에서 도태하지 않고 되레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2000년대 후반 아이폰의 등장 이후 2010년대를 지배한 '모바일 혁명' 속에서도 엔비디아의 입지는 굳건했다. 발 빠르게 모바일 전용 프로세서를 개발한 덕분이었다. 젠슨 황은 2011년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모바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슈퍼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모바일 시대를 지나 AI 시대에 들어선 지금, 엔비디아는 또다른 혁신의 선봉에 있다. 2023년의 젠슨 황은 글로벌 산업의 전환점에서 엔비디아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PC,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AI까지, 기술적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이전에 뛰어났던 회사들이 여전히 훌륭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우리는 각 기술의 혁명기에서 적응력과 민첩성을 발휘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reinvent)'해야 했다. 기업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향할 때 연속성을 유지하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대응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는 어쩌면 엔비디아처럼 준비된 회사만이 이룰 수 있는 '기적'일지도 모른다. 가령, 엔비디아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AI 시장의 개막에 대비해왔다.
그중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이미지 분류용 AI인 알렉스넷(Alexnet)의 등장이었다. 알렉스넷은 엔비디아가 만든 GPU로 딥 러닝을 진행했는데, 일반 칩에선 수개월 걸렸던 작업이 단 며칠 만에 끝났다.
"알렉스넷이 단순한 AI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 그 자체란 걸 깨달았을 때 너무나 놀라웠다. 핵심은 인간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대신 데이터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다는 거였다… 우리는 10년 전 이런 방식의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칩의 초점을 AI에 맞췄다. AI에 집중하는 연구조직을 구축했다. 그것은 훌륭한 결정이었다(2023년 3월 CNBC 인터뷰)".
이렇듯 숱한 실패와 끝없는 재창조는 젠슨 황에게 미래를 꿰뚫어 보는 눈과 성공적인 업적을 선물했지만, 정작 젠슨 황은 그의 통찰이 선견지명은 아니라고 말한다. CNBC 인터뷰에서 그는 "언젠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면서 "나머지는 약간의 우연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엔비디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도 더 크다. 자율주행차, 풍력발전소 같은 거대 산업부터 신용카드, 닌텐도 스위치에 이르는 일상 용품까지 엔비디아의 제품이 깊숙이 침투해 있어서다. 디지털 기술과 현실 세계가 맞닿아 있는 모든 접점에 엔비디아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난 30년 동안 혁신의 바다를 항해한 엔비디아는 또 어떤 미래를 그려갈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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