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증권사 채권형 랩·신탁 만기불일치 운용 집중 점검
만기 도래하자 연체·교체 거래로 투자 손실 보전
금감원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 훼손… 잘못된 관행 형성"
"위법 사항 엄정 조치, 내부통제 기능 높이겠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사의 채권형 랩어카운트(랩)·특정금전신탁(신탁)의 불건전 영업행위를 점검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지난해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으로 채권형 랩·신탁에서 대규모 환매 요청이 발생하자 일부 증권사가 이른바 '채권 돌려막기'로 고객의 투자 손실을 보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금감원이 업무실태 집중 점검에 나선 것이다.
고객은 단기 여유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채권형 랩·신탁에 가입했지만 일부 증권사가 거래량이 적은 장기 기업어음(CP) 등을 편입해 '만기 불일치 운용'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일반적으로 장기 CP 등은 가격변동 위험성이 높은데도, 일부 증권사는 금리상승에 대비한 내부 리스크 관리도 하지 않아 고객 자산의 평가손실이 누적된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증권사는 판매 과정에서 고객의 투자목적과 자금 수요에 맞는 편입자산·예상 수익률 등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집중 점검 대상이 된 증권사는 법인의 거액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결국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만기가 장기(1~3년)이거나 유동성이 매우 낮은 CP 등을 편입하는 상품을 설계·판매한 것이다.
금감원 점검 결과 일부 증권사는 특별한 운용전략 없이 유동성이 낮고 만기가 긴 자산을 지속 보유(buy & hold)하다가, 계약만기 시점에는 운용 중인 다른 계좌에 장부가로 매각(교체거래)하는 방법으로 환매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매 과정에서 증권사는 랩·신탁 계약 만기 시 편입자산을 시장 매각해 환매 대금을 지급하거나 만기연장·계약해지 반환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는 고객 계좌 간 연계·교체거래로 만기가 도래한 고객의 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이전하거나 증권사 고유자금으로 고객자산을 고가 매입했다.
연계·교체거래는 계약 만기가 도래한 A 고객 계좌에 편입한 CP를 다른 증권사에 고가로 매도한 뒤 해당 증권사에서 만기가 비슷한 다른 CP를 B고객 계좌로 매수하는 방식이다.
B고객 계좌의 만기가 도래하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목표수익률을 보장하면서 연계·교체거래를 이어왔고 이는 결국 고객들의 손실 이전 효과에 지나지 않았다.
이밖에도 증권사 고유자금을 활용해 랩·신탁에 편입된 CP를 고가로 매입하는 방식도 썼는데, 대상 고객은 대부분은 일반인이 아닌 대기업·투자자였다고 금감원은 전했다.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이같은 증권업계 영업관행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금감원 관게자는 "투자자라면 누구나 합리적인 투자판단에 따라 이익과 손실을 향유해야 하며 이 원칙은 개인 소액투자자 뿐만 아니라 법인 고액투자자에게도 당연히 적용된다"면서 "하지만 일부 증권사는 법인 고액투자자를 위해 실적 배당상품인 랩‧신탁을 사실상 확정금리형 상품처럼 운영했고, 법인 고액투자자 역시 시장 상황에 따른 투자손실마저 감수하지 않으려는 잘못된 관행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고유자산 등을 활용해 손실을 보전한 행위는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만기 불일치 운용으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유동성이 낮은 장기채권은 가격변동위험이 높아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일부 증권사는 금리 인상에 따라 보유자산의 평가손실이 누적되는 상황에서도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교체거래 모니터링·이상 거래가격 통제 등을 수행하지 않고 고유재산을 활용해 손실보전 행위를 하는 등 내부통제·준법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금감원은 비판했다.
금감원은 이번에 점검 완료한 증권사 외에도 위법을 저질렀을 만한 증권사를 추가로 선정해 업무 적정성을 점검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점검 결과로 확인된 위법 사항에 대해 엄정히 조치해 잘못된 관행이 지속되지 않도록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며 "고객자산 운용 관련 리스크 관리·준법감시 체계가 미흡한 증권사에 대해서는 내부통제 기능을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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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viole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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