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판 '문동주 vs 김도영' 대전…최고의 투수와 타자 놓고 고민 빠진 피츠버그 [김한준의 재밌는 야구]
2022년 KBO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KIA 타이거즈는 행복하지만 난처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역 연고 1차지명을 행사할 수 있던 마지막 해였던 그해 드래프트에서 KIA 팜에 고3 최고투수와 최고타자가 동시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광주진흥고 투수 문동주와 광주동성고 유격수 김도영이었습니다.
KIA는 장고 끝에 '최고의 타자' 김도영을 선택했고, 당시 전국 단위 지명을 할 수 있었던 한화 이글스는 지체 없이 '최고의 투수' 문동주를 지명했습니다. 그해 문동주는 계약금 5억 원, 김도영은 4억 원으로 신인 계약금 순위 1, 2위를 각각 차지했습니다.
■ 한 대학에서 나온 투타 최대어…164km 투수 vs 75경기 연속 안타 타자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대학 최고의 투수와 대학 최고의 타자를 놓고 누구를 뽑을지 고민에 빠진 겁니다.
바로 우완 폴 스킨스(21)와 외야수 딜런 크루스(21)입니다. 2001년생 동갑내기인 두 선수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고교와 대학을 통틀어 투타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모두 LSU(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 소속입니다. 지난 2021년 한국의 투타 최대어가 광주 팜에서 나왔듯, 올해 미국의 투타 최대어가 LSU 한 곳에서 등장한 겁니다.
이 2명을 모두 보유한 LSU는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의 올해 대학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습니다.
LSU 1선발 스킨스는 198cm, 106kg의 피지컬에서 보여지듯, 엄청난 스터프가 강점입니다. 이번 시즌 122.2이닝을 던지는 동안 209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NCAA 남동부 컨퍼런스의 기존 기록(202개)을 갈아치웠습니다. K/9(9이닝당 탈삼진)이 15.3이나 됩니다.
평균 구속 98마일(157.7km/h), 최고 102마일(164.1km/h)까지 던지는데, 유망주의 재능을 최고 80·최저 20으로 평가는 '20-80 스케일'에서 스킨스의 직구는 만점(80점)을 받고 있습니다. 세컨피치이자 최고 89마일까지 나오는 슬라이더 역시 70점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WHIP(이닝당 출루 허용수)가 0.75, ERA(평균자책점) 1.69, 피안타율(0.165) 등 모든 세부지표 역시 압도적일 정도로, 이견의 여지가 없는 올해 드래프트 최고 투수입니다.
183cm 92kg의 신체를 자랑하는 중견수 크루스는 역대급 타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344타석에서 18홈런, 타율 0.426, 출루율 0.567, 장타율 0.713, OPS(출루율+장타율) 1.280을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대학리그를 '폭격'했습니다. 올해만 잘한게 아니라 3년 연속 비슷한 성적을 내 왔습니다. 특히 75경기 연속 안타라는 경이적인 기록도 세웠습니다.
이번 시즌 도루를 6번 시도해 모두 성공시키는 등 발도 상당히 빠릅니다.
'20-80스케일'에서 타격 70, 파워 60, 주루 60, 어깨 55, 수비 55를 받을 정도로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 그것도 그 툴의 크기가 매우 큰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스킨스냐, 크루스냐…기량보다는 계약금이 1픽 좌우할 듯
MLB 드래프트는 현지 시간 9일부터 시작됩니다. 딱 일주일 남은 겁니다.
현지에선 어느 선수가 됐든 스킨스와 크루스가 전체 2순위 내에서 모두 지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킨스는 2023 드래프티 랭킹 1위, 크루스는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지 보도들을 종합하면 현재 피츠버그의 시선은 크루스보다는 스킨스로 향한 것 있는 것 같습니다. 크루스가 피츠버그가 생각하는 액수보다 더 많은 금액을 계약금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돈을 쓰길 원치 않는 피츠버그인 만큼, 크루스보다는 스킨스가 유력하다는 전망입니다.
드래프트를 하는데 그냥 최고의 선수를 뽑으면 되지, 계약금이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은 MLB 드래프트의 특이한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 슬롯머니 배분이 중요한 MLB 드래프트
MLB 드래프트에선 돈을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습니다. 올해 전체 1순위 팀에겐 972만 달러의 슬롯머니가 주어지고, 2순위 팀에겐 899만 달러, 3순위 834만 달러가 할당되는 식입니다. 전체 30순위 지명권을 가진 팀에겐 273만 달러만 주어집니다.
모든 팀들은 각각 배정된 슬롯머니 안에서 지명한 선수들과 계약해야 합니다. 올해 피츠버그의 총 슬롯머니는 1,618만 달러입니다. 만약 크루스와의 계약을 위해 전체 1순위 슬롯머니인 972만 달러를 모두 사용했다면, 646만 달러만 갖고 나머지 19명의 선수들과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상위 라운드인 2~5라운드에 괜찮은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들과 계약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실제로 슬롯머니가 부족해진 메이저리그 팀들이 드래프트한 선수들과 계약에 실패하는 건 자주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장 가능성이 뛰어난 다수의 선수와 계약을 하기 위해선, 슬롯머니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피츠버그는 최근 몇년간 1픽을 슬롯머니보다 낮은 '언더슬롯' 전략을 펼쳐 왔습니다. 2021년 드래프트에서도 전체 1순위 지명권이 있었던 피츠버그는 1순위로는 거론되지 않던 포수 헨리 데이비스(를 지명 650만 달러에 계약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전체 1순위 슬롯머니는 840만 달러였습니다. 데이비스의 당시 평가는 드래프티 중 5위였습니다.
그해 2순위 지명권이 있었던 텍사스 레인저스는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던 잭 라이터를 지명했는데, 계약금은 슬롯머니(779만 달러)보다 높은 792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두 팀의 이 결정은 피츠버그와 텍사스의 2라운드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츠버그는 2라운드(전체 37순위)에서 당시 드래프티 중 17위의 평가를 받았던 투수 앤서니 솔로메토를 지명해 280만 달러에 계약했습니다. 37순위 슬롯머니(200만 달러)보다 80만 달러나 높았습니다.
하지만 텍사스는 2라운드(전체 38순위)에서 76위에 랭크됐던 외야수 애런 자발라와 83만 달러에 계약했습니다. 38순위 슬롯머니는 195만 달러였지만, 1라운드에서 큰 돈을 쓰면서 2라운드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의 선수를 지명할 수밖에 없던 겁니다.
■ 고민하는 피츠버그와 마음 편한 워싱턴
이제 선택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스킨스든 크루스든 피츠버그가 누구를 뽑든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피츠버그가 돈을 더 아껴서 2라운드와 3라운드에 평가보다 더 좋은 선수를 수집하기 위해 엉뚱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플로리다 대학의 외야수 와이어트 랭포드(21)가 꾸준히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랭포드는 이번 드래프티 중 3번째 평가를 받는 선수입니다.
드래프트 직전까지 피츠버그의 고민은 이어지겠지만, 웃는 팀이 있습니다.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진 워싱턴 내셔널스입니다. 피츠버그가 스킨스를 뽑으면 크루스로 가면 되고, 스킨스가 남으면 스킨스를 뽑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2년 전 한화가 문동주든 김도영이든 KIA가 뽑지 않은 선수를 마음 편히 뽑겠다고 콧노래를 부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만약 피츠버그가 랭포드로 가는 선택을 한다면, 워싱턴은 최고의 투수와 타자 중 1명을 기분 좋게 고르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전체 3순위 지명권이 있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도 웃게 될 지 모릅니다.
드래프트 당일 피츠버그는 어떤 선택을 할지, 최고의 투수와 타자는 과연 어느 팀으로 가게 될지 지켜본다면, 더 재미있는 드래프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한준 기자 ]
◆ 김한준 기자는?
=> MBN 문화스포츠부 스포츠팀장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에서 일했습니다. 야구는 유일한 취미와 특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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