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직접 캔다"…채굴사업 뛰어드는 전기차 업체들
GM·포드 등 美·유럽업체 채굴사업에 수십억달러 투자
자체 공급망 구축해 생산비용 절감·경쟁력 강화 목표
"경영진들, 리튬 확보 못하면 경쟁서 도태될까 우려"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핵심원료인 리튬 채굴 사업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리튬이 전기차 배터리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는 만큼, 값싼 중국산 전기차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생산비용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예상을 웃도는 전기차 판매로 리튬 조달이 어려워진 것도 안정적인 공급망에 대한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의 많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다른 기업들이 선점하기 전에 소규모 리튬 광산에 대한 독점적 접근 권한을 얻기 위해 칠레, 아르헨티나, 캐나다 퀘벡, 미국 네바다 등지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에 공급되는 리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리튬 광산 개발을 위해 올해 1월 캐나다 리튬 채굴업체인 리튬 아메리카스에 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GM은 지난해 자국 리튬 채굴업체인 리벤트와도 남미 광산에서 리튬을 공급받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포드 역시 지난 5월 미국 앨버말, 칠레 SQM, 캐나다 네마스카리튬 등 다수의 업체들과 리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또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호주 리오 틴토와도 계약을 체결해 아르헨티나에서 리튬을 채굴할 계획이다.
이처럼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직접 리튬 확보에 나선 것은 생산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전기차 판매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해 리튬 조달이 어려워졌고, 리튬 가격도 급등했다. 리비안의 R.J.스캐린지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초부터 리튬 가격이 너무 빨리 올랐다. 나쁜 거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포드의 리사 드레이크 전기차 담당 부사장은 리튬 투자에 대해 과거에 타이어 재료 확보를 위해 브라질에 고무농장을 건설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비교했다.
특히 내연차에서 전기차로 전환을 시도하는 업체들과 달리 처음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로 출발한 테슬라와 비야디(BYD) 등은 이미 배터리 핵심원료의 자체 공급망을 구축했다. 중국 업체들은 대규모 정부 지원까지 받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려면 리튬,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원료에 대한 안정적인 확보, 즉 독자적인 공급망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다수 내연차 업체들은 아직 명확한 리튬 공급망을 구축하지 못했다. GM의 배터리 원료 확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샴 쿤저르는 “향후 10년 동안 우리의 목표를 지원할 수 있는 공급망이 확립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GM은 2035년까지, 포드는 2030년까지 전기차 생산·판매 체제로 완전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스텔란티스는 2030년 유럽산 100%·미국산 50%를, 폭스바겐은 2033년 유럽산 100%를 각각 전기차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리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컨설팅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는 리튬 공급망 구축에 51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또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면 전기차 배터리 원료를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해야 한다.
NYT는 “업계 경영진들은 충분한 리튬을 확보하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나면 경쟁업체들을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보고, (조기에 리튬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개발 중인 모든 리튬 광산에서 채굴이 시작되면 리튬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직접 리튬 채굴에 나선 업체들이 결과적으론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리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 리튬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들은 리튬 광산에 대한 국유화를 시도하거나, 해외 투자자들이 자국 기업들과 합작하는 경우에만 리튬 채굴을 허용하는 등 채굴을 제한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카르텔 성격의 국제기구 설립도 논의하고 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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