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교의 시론]공포의 주술로는 집권 못 한다
野 오염수 방류 반대는 비정상
감정 아닌 과학으로 판단해야
장외집회에서 불안 조장 유감
민주당에 국가 위한 담론 실종
‘이재명 포비아’속 입법 폭주
공포는 집권 공식이 될 수 없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를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방사선 허용 기준치 이내로 바다로 배출한다면 한국은 막을 명분이 없다. IAEA는 오염처리수가 배출 기준을 충족하는지 2021년부터 연구해 왔다. 분석은 미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모나코 등에 있는 독립적 연구기관에서 진행됐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도 참여했다. 이들 연구기관은 전 세계 환경 방사능 측정을 위한 분석 실험실(ALMERA)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다. 과학자들이 뇌물을 받고 분석 결과를 조작할 가능성은 제로다.
지난 1일 민주당은 서울 도심에서 규탄대회를 가졌다. 자체 집계로 10만 명, 언론 추산 1만 명이 참석했다. 이재명 대표는 “일본이 우리의 바다를 오염시키려고 하면 당당하게 하지 말라고 말해야 주권국이 아니겠느냐”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는 한 국가의 정당이 장외로 뛰쳐나가 정부에 돌팔매를 던질 사안이 아니다. 이성적 국가의 의사결정은 감정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투명한 다핵종제거설비(ALPS)의 가동 효율성 점검과 지속적인 샘플 채취 및 분석 요구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무조건적인 반대는 국제사회에서 정답으로 인정되지 못한다.
2년 전 같은 날 이 대표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출마 선언문의 핵심 개념은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요약된다. ‘억강’ 두 글자에서는 이 대표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부자를 향한 불만과 기득권에 대한 증오가 묻어난다. 인류 최초 법전의 전형이 담긴 ‘우르남무 코드’의 서문에는 ‘과부나 고아를 권력자의 손에 넘기지 않고, 땅에 형평성을 확립해 저주, 폭력, 다툼을 추방하겠다’고 적혀 있다. 기원전 2112년의 일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우르에서 발흥했던 우르남무 왕은 갈등과 대립, 분쟁을 치유하고자 했다. 40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도자의 자질은 동일하다. 국가의 공평한 법 집행을 이행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기득권이라고 탄압을 가해서도 곤란하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에서는 국가 미래 담론 논의가 실종됐다. 올 들어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방송법, 간호법을 여당과의 협의 없이 줄줄이 본회의에 올렸다. 지난달 30일에는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도 단독 부의, 7월 임시국회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이들 법안은 모두 반자본주의적 요소나 극단적인 사회 대립 요인을 갖고 있다. 국부의 창출, 자원의 생산과 분배, 빈부 격차 해소, 과학기술 육성 등을 위한 진지한 탐색을 더 이상 민주당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미래에 대한 방향의 제시다. 지금 민주당은 그 역할과 기능을 스스로 외면한 채 포기하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이 대표는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이지만, 동시에 공포의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라는 것이다. 대장동 사건에 직간접으로 얽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5명이라는 사실은 제쳐 놓더라도 유세 과정에서 음식점을 나오다가 소녀의 팔을 밀치는 듯한 장면이나 싸늘한 눈빛으로 기자 질문을 외면하는 모습에서 어둡고 차가운 내면이 분출된다는 주장이다.
최근 민주당의 혁신위원회 출범은 비명계 의원들에게는 공천학살 예고편으로 여겨진다. 그에게서는 “군주는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적 속성이 떠오른다. 그래도 이 대표는 대선에서 47.8%, 1613만 표를 얻은 정치인이다. 지금도 40% 안팎 지지율을 손에 쥔 대권 1위 후보다. 이 대표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가 방사능 테러라는 공포의 주술을 집어 던져야 하는 이유다. 입법 폭주 트랙에서 벗어나 정부·여당과 국가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댈 때 국민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사법 리스크 탈출 가능성도 커진다. 이 대표는 투쟁의 촛불이 아니라 이성의 횃불을 들어야 한다. 국민 불안을 조장하는 공포정치는 집권 공식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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