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뒷전, 2억9천짜리 수표와 진흙탕만 부각된 '2억9천:결혼전쟁'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7. 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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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진흙탕 싸움 보여준 ‘2억9천:결혼전쟁’, 과연 통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예능 <2억9천: 결혼전쟁>은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열 쌍의 커플들이 출연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2억9천은 마지막 살아남은 커플이 거머쥘 상금 금액이다. 하필이면 2억9천인 이유는 한 기관에서 조사한 평균 결혼 비용이 2억9천만 원(전세금 포함)이라서란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금 액수가 시선을 잡아끄는 건 분명히 있다. 굳이 <결혼전쟁: 2억9천>도 아닌 <2억9천: 결혼전쟁>이라고 액수를 앞에 내세운 건 그런 목적의식이 분명히 보인다.

열 쌍의 결혼을 예비한 커플들이 출연해 곧바로 시작한 첫 번째 미션은 이 프로그램이 어떤 서바이벌의 결을 갖고 있는가를 분명히 드러낸다. 갯벌로 이동한 열 쌍의 커플은 500미터의 갯벌을 통과해 목표지점까지 선착순으로 도착해야 한다. 거기서 7팀은 살아남고 나머지 3팀은 탈락이다. 턱시도에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커플이 함께 피니시 라인을 통과해 부케를 꽂아야 완수되는 그 미션이 이 진흙탕에서 시작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이 서바이벌이 앞으로 펼쳐 놓을 미션이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을 주기 때문이다.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그냥 걷기도 힘든데 턱시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걷는 건 보기만 해도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한번 넘어지고 나면 점점 무거워지는 웨딩드레스를 이고지고 걷는 상황이다. 신랑이 제아무리 체력이 뛰어나도 혼자 통과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 밀어주고 끌어주며 이를 극복하는 광경들이 펼쳐진다. 자못 커플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목표지점에 다다르면서 진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다. 7팀 안에만 들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7번째로 여유 있게 걷던 격투기 선수 홍준영, 박나영 커플을 8등으로 뒤처져 있던 최광원이 달려와 붙들고 늘어지며 몸싸움을 시작한 것. 박나영은 여기서 빠져나와 결승선에 섰지만 최광원이 홍준영을 잡고 있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 최광원의 짝인 신혜선 역시 결승선까지 들어와 자신의 짝을 기다렸다.

사실 격투기 선수인 홍준영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최광원에게 초크 같은 기술을 걸어 제압할 수 있었지만, 선수가 일반인에게 기술을 거는 건 매너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 사이 9위였던 홍한석, 마리암 커플이 결승선을 향해 달려오자 마음이 급해진 홍준영은 최광원을 풀어놓고 달려가다 넘어져 버렸다. 결국 7번째로 들어간 커플은 최광원, 신혜선 커플이었다.

물론 룰을 어긴 건 없었다. 커플이 함께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 되는 것이 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바이벌이라고 해도 매너를 생각해보면 최광원의 이런 선택이 주는 불편함은 분명히 존재했다. 지켜야할 매너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든 이기는 게 우선인 당장의 승패가 중요한 서바이벌이라는 걸 이 광경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미션이 끝나고 최광원은 연거푸 홍준영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지만, 남는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다.

2억9천. 결국 이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서바이벌이라는 게 실감됐다. 또 결혼자금을 위한 서바이벌을 표방하고 턱시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했으며 마치 <오징어게임>의 배경음악을 패러디한 것 같은 음산한 결혼행진곡을 깔고 있지만, 이 서바이벌이 과연 실제 '결혼'이라는 키워드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가는 미지수였다. 출연자들의 면면도 결혼자금이 절실하다고 보기에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미디어와 관계가 깊은 직업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보이는 건 결국 2억9천이라는 수치와 이를 두고 벌이는 '전쟁'에 가까운 진흙탕 싸움이다. 게다가 이런 자금이 '아무도 결혼하지 않는 시대'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의 명분과 과연 연관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과연 결혼자금이 없어 결혼을 하지 않는 시대인가. 그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문화의 구시대성이 이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은 아니던가.

치열한 진흙탕 싸움부터 보여준 <2억9천: 결혼전쟁>은 그래서 결혼이라는 명분은 희석되고 대신 '2억9천'과 '전쟁'만 부각되는 느낌이다. 예고편을 보면 이제 거짓말탐지기에 앉은 커플들이 서로의 속내를 끄집어내는 미션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결혼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를 사회적 요인이 아닌 개인적인 문제로 귀결시키는 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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