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열정 만렙? 좋은 쓰임 받으려 노력!”
7월 12일 개막하는 뮤지컬 ‘그날들’ 초연부터 다섯 시즌째 개근
‘열정 만렙’의 아이콘. 스물여섯에 데뷔해 50대를 넘긴 지금까지, 배우 유준상은 멈추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을 넘나들었고,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였으며, 그의 삶을 글로 적은 작가였다. 깊고 오래 판 여러 개의 우물은 어느 것도 균열 없이 맑은 물이 가득 채워졌다.
“이 직업은 누군가 써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실력이 없으면 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50대가 넘어서야 내 분수를 알게 됐죠. 좋은 쓰임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잘 버티는 거예요. 시간만 축내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서 버텨야죠.”
때때로 배우에게 시간은 야속하다. 그만큼의 깊이를 주는 약이면서도, 조금씩 ‘선택의 기회’를 좁히기 때문이다. 50대의 남자 배우가 2030 배우와 나란히 ‘타이틀 롤’을 맡아 마음껏 날개를 펼 콘텐츠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영 없는 것도 아니다. 유준상에겐 그런 작품이 뮤지컬 ‘그날들’(7월 12일 개막·예술의전당)이다. 그는 2013년 초연한 ‘그날들’의 다섯 시즌에 출연한 ‘근속 배우’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유준상은 “열심히 했고, 말을 잘 들어 10년간 꾸준히 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시간이 지나도 되도록이면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더 좋은 기량으로 관객과 만나길 원했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연출과 제작팀이) 계속 함께 하길 바랐던 것 같아요.”
김광석의 명곡들을 무대로 옮긴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은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20년 전 발생한 대통령 딸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유준상은 경호실장 차정학 역을 맡았다.
“10년을 해오니 대사 한 마디, 노래 하나마다 감정이 조금씩 달라져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더 알 것 같고, 같은 노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불러야 이야기와 맞아 떨어질지, 이 가사가 왜 여기에 있는지 보이더라고요. 나이 먹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40대 초반에 시작해, 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10대였던 큰 아이는 훌쩍 자라 20대가 됐다. 세월의 길이와 함께 쌓아온 ‘그날들’은 유준상에게 다양한 감정을 가져다줬다. 이전보다 대사의 힘이 깊이 새겨진다. 그는 “40대 중후반엔 이 이야기를 마주하면 너무 감정에 복받쳤다”며 “50대를 앞두곤 정말 많이 울었다”고 했다. 지금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최근 연습 중엔 “노래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서른 즈음에’) 하고 노래를 해야하는데, ‘계절’이라고 하는 순간 이렇게 ‘또 하루 멀어져 가는구나’ 싶었어요. 20대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하고, 인생의 장면 장면이 스치더라고요. 저 스스로 참아내면서 대사 한 줄 한 줄을 하고 있어요.”
그의 가장 강력한 ‘눈물 버튼’은 무대 중앙에 마련된 고(故) 김광석의 자리다. ‘그날들’에선 언제나 객석 하나를 ‘김광석 자리’로 정하고 꽃을 둔다. 유준상은 “공연하다 그 자리가 보이면, 김광석 님이 저 자리에서 이 공연을 보고 있겠구나 싶어 울컥한다”고 했다. “만약 만날 수 있다면, ‘형님 노래 정말 열심히 부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경호실장 차정학은 ‘그날들’ 안에서 20대와 40대를 모두 오간다. 정학의 친구인 무영은 20대 시절만 나오는 만큼 K-팝 그룹 갓세븐 영재, ‘더글로리’의 김건우 등 20대 배우들이 함께 한다. 유준상은 “무대에서도 친구처럼 보이려고 몸 관리도 더 하고 있다”며 웃었다 .
“그런데도 아이돌 팬 관객을 보면 ‘둘이 친구라는게 말이 돼?’라는 표정이 다 보여요. 그래도 점점 뒤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게 느껴져 안도하죠. (웃음) 무대에 있는 순간 만큼은 20대라고 생각해요.”
유준상은 지난 10년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킨 ‘그날들’의 롱런 비결은 ‘이야기’에 있다고 했다. “지켜주지 못한 사람에 대한 아쉬움, 그리움, 미련, 용서....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이야기 안에서 용기와 희망을 말하고 있어요. 그게 이 작품의 힘이에요.”
40대엔 55세를 끝으로 ‘그날들’을 졸업해야겠다는 생각도 해왔다. 막상 그 나이 즈음이 되고 보니, “동작은 더 날렵해지고, 노래는 더 늘었다”고 한다. 매일 연기와 노래 레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 관리를 위해 테니스도 치열하게 친다. “나이 들면 레슨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 그의 신조다. “연출님이 ‘선배님, 65세까지 하셔야죠’ 하더라고요. (웃음) 연출님 믿고 더 가려고요.”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그는 직업의 영역도 다양하다. 뮤지컬 대본과 작곡도 겸하고, 최근엔 클래식 앨범도 녹음했다. 처음 앨범을 내던 10년 전, “내 곡을 언젠가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약속을 지켜가는 중이다. 촬영을 마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tvN)는 7월 말 시청자와 만난다. 올해 안엔 에세이도 발간하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쓰고 있다. 몽골 여행 중 스마트폰으로 찍은 단편영화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는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29일 개막)에 초청됐다. “원하는 역할이 들어오지 않고, 가족이 아프고,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껴져 ‘마음의 평정심’이 깨진 때에 찍은 작품이다.
“그즈음 너무 힘들어 몽골로 떠났어요. 사실 매순간, 매번, 매회 힘듦은 있어요. 그걸 이겨내야 한다고 마음을 먹으며 평정을 찾는 거죠. 매일같이 외치는 그 평온은 결국 힘든 순간을 극복해야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며 찍은 영화예요.”
주어진 것을 해야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그가 유준상이라는 사람 안에 담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음악, 영화, 책으로 내놓는 일은 그의 삶에 크고 작은 동력을 만든다. 그는 “창작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며 “거기에서 얻은 것을 연기하면서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배우이자 창작자로의 활동에 열정이 식을 날이 없다.
“20대엔 지금보다 더 열정이 넘쳐 주체가 되지 않았어요. 그땐 모든 것에 서둘렀죠.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어서, 모두가 참으라고 말릴 정도였어요. 이제 제가 스스로를 말려요. 50대지만, 아직 2030처럼 힘이 있어요. 뮤지컬은 여든까진 하고 싶어요. 힘이 있으면 계속 해야죠.(웃음) ”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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