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센 물질로 길어올린 해녀의 삶에 가치를 더하다
제주·포항·경주 해녀들이 직접 들려주는 삶과 노동, 문화
“해녀 공동체가 창출하는 가치, 사회적경제 정신과 맞닿아”
‘제주 해녀 문화’가 2016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고, 2017년 5월엔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됐지만, 문화유산으로서 이에 걸맞는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작업 등에 대한 진척은 별로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주 해녀의 경우 2021년 3437명으로 2011년 대비 1444명이나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연령대별로는 70~79살이 2146명으로 가장 많다. 해녀의 수가 급감하고, 해녀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해녀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보존하는 방안을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6월30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막한 제5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 내 세션으로 마련된 ‘해녀의 사회적 가치 포럼’에서다. 포럼은 (사)한국공동체정책연구원, (사)한국마을기업중앙협회, (사)지역과소셜비즈, 소셜캠퍼스 온 경북, 제주살래가 주최하고, (사)샤콘느가 주관, 영덕군과 울진군이 후원했다. 해녀들의 문화·사회·경제적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전승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 차원의 의제 및 과제들을 점검하고, 해녀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의 삶과 직업,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이뤄졌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안광희 마을기업 제주살래 대표는 해녀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마을 공동체의 문화·역사·환경·감성을 문화예술로 담아내고 알리는 작업을 소개했다. 안 대표는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단위의 소위 ‘그림 그리는 해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단순한 미술 지도를 넘어 예술 치료 지도사와 해녀의 교감을 통해 해녀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돕는 방식이 다. 안 대표는 “ 해녀의 삶이 지닌 감성, 애환 자체가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지녔다 ”며 프로젝트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해녀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 그리는 해녀’ 를 제작 ·출품해 2015년 미국 휴스턴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마을기업 제주살래는 현직에서 은퇴한 마을의 해녀들이 만든 핸드메이드 향초 제품을 중심으로 ‘엄마의 바다 ’라는 해녀문화콘텐츠 체험관광 상품을 판매 중이다 .
‘해녀 탐구와 해녀 공동체의 사회적경제 원리’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박철훈 (사)지역과소셜비즈 이사장은 “해녀는 바다라는 공유자원을 매개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직업인 동시에 어촌 가정과 어촌 공동체의 근간을 이룬다”며, “바다라는 공유 자원을 활용해 공동체 이익 증진과 사적 이익 추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지역 공동체 삶의 양식이자 독특한 문화 유산”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해녀 공동체가 창출하는 경제적·사회적 가치가 사회적경제 정신과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적 가치도 창출하고 있다. 해녀는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보여준다. 잠수장비 없이 자신의 호흡에 의지해 수산물을 채취하니 남획이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제주 다음으로 해녀가 많은 경북에선 해녀들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해적 생물을 긁어내 미역 포자가 자리잡게 한다. 박 이사장은 “해녀들은 호미가 서슬 퍼래지도록 바다 바위를 긁어낸다. 해녀들이 바다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2020년 (사)지역과소셜비즈가 경북 지역의 해녀 109명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결과, 94%의 해녀들이 ‘해녀가 줄어들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낮은 수입과 열악한 환경으로 해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려는 사례를 소개했다. ‘해녀 미역 부각’ 상품을 만들기도 하고, 해녀 디자인을 적용한 병과 도자기를 활용해 ‘해녀 전통주 상품’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해녀가 채취한 해초류를 활용해 비건 식품과 대체육을 개발하는 등 소셜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미역 인문학> 저자인 김남일 포항부시장은 탄소 흡수원으로서 미역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일 부시장은 “국비 지원과 포스코와의 협력으로 포항 지역에 환동해블루카본 센터를 설립해 탄소를 포집하는 해초류를 보존·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스코 등 기업으로 하여금 탄소를 포집하는 미역 등 해초류를 조성하는 ‘블루카본’ 분야에 투자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해녀들은 물질하는 바다 속을 ‘바다밭’으로 인식해 공동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미생물을 제거하고 미역과 다시마 등의 해초류 종묘를 뿌리는 일도 도맡는다. 실제 ‘2022년 경상북도 나잠어업 실태조사’ 결과 해녀·해남이 채취한 수산물 판매금액의 75.7%가 미역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 부시장은 ‘해녀들은 해양 환경 및 생태계의 수호자’라고 강조하며, 지속가능한 바다를 위해 경상북도 해녀를 보존하는 정책으로 △안전한 물질을 위한 첨단 안전 시스템 보급 △호미반도 국가 해양생태정원 조성 △해양전문 인력 양성 등을 소개했다.
2부에선 이정숙 경주 연동 해녀, 성정희 포항 구룡포 해녀, 경주 연동 이정숙 해녀의 장녀 정지윤씨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 ‘해녀 이야기’를 주제로 안광희 마을기업 제주살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저승의 돈 벌어 이승의 자식 먹여 살린다”는 속담은 해녀 물질의 위험함을 보여준다. 일이 힘들고 위험하니 해녀들은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움직였다. 서로 도와서 고된 삶을 이겨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포럼 현장에 참여한 해녀들의 이야기 속엔 물질 노동에 대한 고단함이나 어려움보다는 바다에 대한 사랑과 해녀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이정숙 해녀는 “아이엠에프(IMF)로 남편사업이 어려워져 30대 초반에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해녀 일을 시작했지만, 어릴때부터 수영도 잘하고 물에서 노는 것을 워낙 좋아했다”며, 바다에 나가는 일 자체를 즐거워했다. “바다 속에서 만나는 작은 생명들과 눈맞춤하는 일이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일상 풍경이다. 물고기떼를 넋놓고 바라보면서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정지윤씨는 어머니 이정숙 해녀와 할머니인 김순자 해녀의 물질을 배우며, 해녀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엄마와 할머니가 ‘해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독립적으로 본인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당당한 여성 장군’ 같았다”고 회상했다. 정지윤씨는 고령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해녀에 대한 사명감과 해녀 문화를 지키고 싶다는 책임감이 가득하다. 그는 해녀를 ‘멋있는 직업’이라 표현하며, “해녀라는 직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컨텐츠를 통해 해녀 문화를 알리고, 요즘 유행하는 프리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직업으로 연계시키는 방안도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정희(71) 포항 구룡포 해녀는 ‘포항시 1호’ 여성 어촌계장으로 유명하다. 2021년 구룡포 어촌계 계장선거에서 당시 해녀 경력 35년 차의 첫 여성 어촌계장이 탄생한 것이다. 성정희 해녀는 “물질이 서툴러 비어있던 내 망태기에 선배 해녀가 슬쩍 물건을 넣어주던 따뜻함을 잊지 못한다”며, “해녀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리더 연수교육 등을 찾아다니며 준비하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녀 문화를 살려내고, 구룡포리를 행복한 마을로 만들어 갈 계획”이라며, 지역 안에서 해녀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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