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수 있을까”…이 문제, AI가 아니라 한국인이 결정?
‘인공지능(AI)은 발명자가 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인류가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람만을 발명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을 들어 AI의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특허청과 법원의 결정이 잇따라 나왔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결정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AI가 사람이 진행하면 수개월 걸리는 반도체 칩을 6시간 만에 만들어내거나, 코로나19 백신의 안정성을 높여 효능을 100배 이상 증가시키는 결과를 내는 등 그동안 사람이 해오던 일을 보다 혁신적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AI의 발명 능력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AI를 발명자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인 교수 “오로지 AI의 능력으로 발명했다” 주장
이 문제는 미국인인 스티븐 테일러 교수가 2018년부터 한국 등 전 세계 16개 나라에 ‘다부스(DABUS)’라는 이름의 AI를 발명자로 표시한 발명품에 대해 국제특허를 출원하면서 불거졌다. 테일러 교수는 자신의 AI 프로그램인 ‘다부스’가 스스로 발명을 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다부스’가 일반적인 지식에 대해 학습한 뒤 식품 용기 등 2개의 발명품을 스스로 개발했다는 주장했다. 테일러 교수는 “나 스스로는 이 발명과 관련해 아무런 지식이 없으며, 내가 개발한 AI인 ‘다부스’가 지식을 학습한 뒤에 식품용기 등 2개의 발명품을 창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부스가 ‘레고처럼 오목·볼록부가 반복된 프랙털 구조를 가져 손에 쥐기 쉬운 식품용기’와 ‘신경 동작 패턴을 모방해 집중도를 높여주는 램프’ 등 2가지를 발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주요 특허 선진국에서 AI의 특허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정이 잇따라 나왔다.
세계 각국 “사람만이 발명자로 인정되기 때문에 AI 발명은 인정할 수 없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30일 현행법상 “사람만이 발명자로 인정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면서 앞서 특허청이 내린 무효 처분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특허청은 지난해 특허 출원 자체에 대해 무효 처분을 내렸고, 테일러 교수 측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미국·유럽·호주 등에서도 대법원(또는 최종법원)에서 AI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영국·독일의 경우는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우리나라 법원에서 처음으로 AI를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이번에 나왔다.
“AI 발명을 인정할지 여부, 국민과 전문가의 뜻 물어 결정”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결국 인간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서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 특허청은 우선 국민의 뜻을 묻기로 했다. 특허청은 홈페이지에 ‘인공지능과 발명’ 코너를 이달 20일 개설한 뒤 여기에 AI를 발명자로 인정할지에 대한 국내·외 논의사항과 주요국의 법원 판결, AI 관련 발명의 심사기준 등을 올려 국민에게 알릴 예정이다. 이후 9월 말까지 국민의 뜻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또 10월에는 산업계, 학계, 연구계 등 AI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한 뒤 AI 발명자에 대해 어떤 특허법 체계를 갖춰나갈지 입장을 정리해나갈 계획이다.
특허청은 외국의 흐름도 이 입장 정리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특허 분야 선진 5개국(한국,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청장 회의에서 ‘AI 발명자와 관련된 법제 현황과 판례를 공유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특허청은 우리 국민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AI의 발명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뒤 이를 오는 10월에 열리는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특허법상설위원회와 2024년 6월에 열리는 특허 선진 5개국 청장 회의에 내놓고 국제적인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됐다”면서 “앞으로 한국이 이 논의를 주도해 국제적으로 조화된 AI 관련 특허 제도를 정립해나가겠다”고 3일 밝혔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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