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여워서’ 심쿵…그런데 왜 깨물깨물하고 싶지?”[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기자 2023. 7. 3. 11:00
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귀여움’의 힘(2)
“귀여움에 ‘심쿵사(死)’ 당하는 게 가능한가요?”
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엉뚱한 질문 글. 허나 답변은 상당히 진지했다. “진짜 조심하셔야 합니다” “마음 굳건히 먹으세요” “정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등등. 귀여움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와서 죽을 리 만무하지만, 그만큼 귀여움에 압도되는 감정은 상당히 강렬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귀여운 대상을 보면 뇌에서 즉각적으로 기분 좋은 반응이 일어난다. 귀엽다고 느끼는 정도가 강렬하다면 다소 공격적인 말이나 행동으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앙증맞고 귀여운 대상을 ‘깨물어주고 싶다’ ‘꼬집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살펴본 기사(‘귀여움’의 힘 1부)에서는 ‘귀여움=보호본능 자극’의 원리를 살펴봤는데, 왜 이런 반대적인 현상도 일어나는 걸까.
귀여움에는 공격성이 뒤따른다?
귀엽다고 느끼는 정도가 강하면 돌봐주고 싶은 보호본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격성도 함께 불러일으킨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이라고 한다. ‘귀여움’과 ‘공격성’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결합이 역설적인 것처럼, 뇌에서 역설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 나오는 공격성은 상대를 진짜로 해치려는 공격성이 아니라, 장난스러운 수준의 작은 공격성이다.
이런 반응은 한 가지 감정에 압도되면, 뇌에서 반대 감정을 불러일으켜 몸을 평형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이뤄진다. 심장이 빨리 뛰어 심혈관에 자극을 주는 등 뇌에서 생리적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을 보면 그 원리를 이해하기 쉽다. 메달을 딴 기쁨의 강도가 압도적으로 크면, 뇌에서는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반대의 감정표현인 눈물이 나도록 한다. 이와 반대로 너무 슬프거나 화가 날 때 웃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도 웃음으로 부정적 감정을 상쇄해 감정의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원리다.
이와 같은 원리로 귀여움에 압도됐을 때는 부정적 감정인 공격성이 나타난다. 기쁨의 반대 짝꿍이 눈물이라면, 귀여움의 반대 짝꿍은 공격성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연구진에 따르면, 귀여움을 강하게 느낄수록 공격성도 강하게 나타난다. 연구팀은 성인 299명에게 ‘덜 귀여운’ 아기와 ‘더 귀여운’ 아기 사진 8장을 각각 보여줬다. 아기 사진은 컴퓨터 보정 작업으로 ‘아기 스키마(Baby Schema)’의 특징을 덜 강조해 덜 귀엽게 보이도록 하거나, 아기 스키마 특징을 더 강조해 더 귀여워 보이도록 했다. ‘아기 스키마’란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 오동통한 손과 발, 큰 눈, 작은 코와 입, 보들보들한 촉감 등 전형적인 아기의 신체적 특징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각각의 사진을 본 이들에게 ‘매우 귀엽다고 느낀다’ ‘보호해 주고 싶다’ ‘볼을 꼬집어 보고 싶다’ ‘깨물어 보고 싶다’ 등의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그 결과 더 귀여워 보이도록 편집한 아기 사진을 본 이들일수록 더 과격한 표현인 ‘꼬집고 싶다’ ‘깨물고 싶다’ 등에 동의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귀여운 공격성과 관련한 표현은 여러 문화권에 걸쳐 있다. 한국처럼 ‘꼬집고 싶다’ ‘깨물고 싶다’와 비슷한 표현도 있고, 문화에 따라 너무 귀여워서 ‘쥐어짜고 싶다’거나 ‘먹어버리고 싶다’는 표현도 있다.
체코 |
“muchlovat!” |
짜고(squeeze) 싶다 |
네덜란드 |
“Hij/zij is (ziet eruit) om op te (v)reten” |
먹고 싶다 |
프랑스 |
“mignon à croquer” |
아삭아삭 먹고 싶다 |
그리스 |
“θα σε φάω!” |
먹고 싶다 |
이탈리아 |
“da strapazzare!” “Lo mangerei” |
짜고 싶다/먹고 싶다 |
필리핀 |
“gigil” |
이를 갈거나, 꼬집거나, 쥐어짜고 싶다 |
베트남 |
“Yêu quá, chỉ muốn cắn/cấu một cái!” |
깨물고 싶다 |
인도네시아 |
“gemas” |
때리고 싶다 |
못생긴 동물은 빨리 멸종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은 귀여운 동물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판다는 귀여워서 멸종위기를 모면한 대표적인 동물이다. 한때 판다는 멸종위기종에 속했으나, 세계적 관심 속에 관련 연구가 다방면으로 진행되면서 야생 개체 수가 늘었고, 2016년에 멸종취약종으로 격상됐다.
이와 반대로 못생기고 귀엽지 않은 동물은 멸종위기에 놓여도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다. 호주 머독대학의 트리시 플래밍 교수 연구팀이 2016년 ‘포유류 리뷰’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한 못생긴 동물은 빨리 멸종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호주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이뤄진 포유류 관련 연구 1400여 개를 분석한 결과, 못생긴 동물은 관련 지원과 연구가 많지 않아 멸종위기에도 불구하고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대상에 포함된 331종 가운데 설치류 등 못생긴 동물로 분류된 개체 비율은 전체의 45%에 이르지만, 이들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못생긴 동물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어렵고, 관련 연구 지원도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들은 자연에서 (배설물 등을 통해) 식물의 씨앗을 퍼트리거나,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멸종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못생긴 동물의 서식지, 번식, 먹이 등에 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시민단체인 ‘못생긴 동물 보존 협회(Ugly Animal Preservation Society)’는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코미디언 사이먼 와트가 2013년 설립했다. 못생겨서 외면받는 동물들을 돌보자는 취지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동물 1위로 호주 심해에 사는 블로브피쉬를 뽑았다. 사이먼 와트는 “너무 오랫동안 귀엽고 꼭 안고 싶은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지배했다”며 “방치된 동물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때”라고 강조한다. 그가 펴낸 책 ‘못생긴 동물들’의 부제는 ‘모든 동물이 판다가 될 순 없다 ’였다.
사랑받기 위해…머리가 점점 커진 미키 마우스
인간의 선택을 받는 귀여운 개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동물의 세계처럼 캐릭터 산업도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귀여운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큰 머리와 큰 눈, 짧고 통통한 팔다리, 오동통한 볼을 가지고 있다.
미키 마우스의 시대별 변천사를 보면 이런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키 마우스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지금보다 덜 귀여웠으나, 대중의 요구에 맞춰 점차 진화했다. 1928년 첫 등장한 미키 마우스는 진짜 ‘쥐’처럼 생겼었다. 주둥이가 좁고 뾰족하고, 머리와 눈이 작았고, 팔다리는 가늘고 길었다. 성격적으로는 장난이 심하고, 다른 동물을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가학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자 부드럽고 공격적이지 않은 성격으로 바꿔 달라는 디즈니 팬들의 요구가 빗발쳤고, 이에 맞춰 외모도 점차 수정됐다.
미키 마우스는 점점 더 아기처럼 보이도록 외모가 변했다. 우선 머리와 눈 크기가 눈에 띄게 커졌고, 이마가 넓고 볼록해졌다. 주둥이는 둥글고, 통통하게 표현됐고, 가늘고 길었던 팔다리는 이전보다 오동통해졌다. 한 마디로 아기 스키마가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진화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 미 하버드대 지질학과 및 동물학과 교수는 이를 일찌감치 눈치채고 1980년 ‘미키 마우스에 대한 생물학적 오마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러한 미키 마우스의 변화야말로 진정한 진화적 변화”라고 했다. 점점 아기와 같은 특징을 더해가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해갔다는 것이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테디베어의 처음 모습은 지금보다는 다리가 길고 뾰족한 주둥이와 코를 가지고 있었다. 이 역시도 시간이 갈수록 점차 팔다리는 짧아지고, 동글동글한 얼굴 모습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모바일 메신저에서 매일 사용하는 이모티콘 캐릭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부 아기 스키마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귀여운 캐릭터 제품을 보고 갑자기 지름신이 내려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치며 나도 모르게 결제를 한 적이 있다면, 당신은 유독 아기 스키마에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지 모른다. 큰 머리, 짧고 통통한 팔다리에 홀려 어느덧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사고 있지는 않은가? 아기 스키마에 취약한 인간의 본능을 노린 ‘귀요미’들이 호시탐탐 당신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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