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의 진화] ⓛ“월 250만원 기꺼이 내죠”... 런던 MZ 사로잡은 ‘코리빙 하우스’

런던(영국)=백윤미 기자 2023. 7. 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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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전문직이 주 타깃
친구 사귀고 중고 물품 거래까지
”시장 관심 확 늘어... 주거산업 자리잡을 것”

“비싸죠. 하지만 감당할 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런던에서는 주방 등 모든 걸 나눠 써야 해요. 여기서는 모두 개별적으로 사용하면서 친구도 만들 수 있어요.” (발레리야·29세, 그래비티 코리빙 거주자)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찾은 영국 런던의 하운슬로에 있는 코리빙 하우스 '그래비티' 웨스트코트점 전경. 4층 규모의 건물에 총 97실의 거주 공간과 공용 공간이 마련돼있다. /백윤미 기자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찾은 영국 런던 서부 하운슬로에 있는 코리빙 하우스 ‘그래비티(Gravity)’. 런던 시내 중심가에서는 보기 힘든 신축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런던시는 역사성이 짙은 오래된 건축물에 대해서는 보호를 명목으로 ‘재건축·재개발 허가’를 매우 엄격하게 내준다. 언뜻 보기에 이 곳도 런던 중심가인 1~3존(Zone)에서는 약간 벗어난 4존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재건축이 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지하철 피커딜리(Piccadilly) 라인을 탈 수 있는 하운슬로 센트럴 역이 불과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역세권이었다.

코리빙 하우스는 최근 런던에서 핫한 주거형태로 급부상하고 있다. 코리빙 하우스는 방뿐만 아니라 가구까지 갖춰져 있어 말 그대로 ‘몸만 들어가면 되는 집’이다. 다른 거주자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과 공용 오피스 공간, 헬스장, 수영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췄다. 이 때문에 런던의 젊은 전문직 등을 중심으로 각광 받고 있다.

런던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 등 세계적인 대도시는 대개 꿈을 찾아 도시로 온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주거 만족도는 매우 떨어진다. 화장실과 주방을 3~4명이 나눠 쓰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게는 거실에 커튼만 치고 두 세 명이 나눠 살면서도 100만원이 훌쩍 넘는 임대료를 감당한다. 자연히 사생활이 보장되기 어려운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아파트가 즐비한 만큼 시설도 노후하다.

그래비티의 개인 거주 공간 모습. 개인 화장실이 딸려 있고 퀸사이즈 침대와 옷장, 주방, 냉장고, 전자레인지와 인덕션, 테이블과 의자까지 갖춰져있다. 런던 중심지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조건의 시설이다. /백윤미 기자

반면 이날 찾은 코리빙 하우스는 이 같은 불편함을 속속 해결했다. 가격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10평 가량의 넓은 방과 개인 화장실, 인덕션이 딸린 개인 주방, 화장실이 보장됐다. 퀸사이즈 침대와 냉장고, 옷장, 테이블, 의자까지 갖춰져 있었다. 여기에 로비 격인 그라운드층에는 공용 주방과 휴식 공간, 공유 오피스 공간이 따로 있었다. 대여가 가능한 도서 코너도 보였다. 총 97실로 구성돼있는 웨스트코트 지점의 월 임대료는 1475~1675파운드(한화 약 246만~280만원) 선이다.

런던의 한 기관에서 교육협력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는 발레리야(29)씨는 “이곳에 산 지 6개월 정도 됐는데 지금까지는 매우 만족한다”면서 “물론 임대료가 비싼 편이지만 이곳에서 누리는 것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라운드층에 마련된 공용공간/사진=백윤미기자

◇'그들만의 SNS’... 앱에서 번개 모임, 중고 거래까지

그래비티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체 개발 앱도 거주자들의 만족도를 크게 높이는 요소였다. 기자가 이곳 임시 거주자로 등록하자마자 환영 인사와 함께 앱을 설치하라는 안내 메일, 경험&이벤트 매니저와 입주민의 생활 환경 전반을 체크하는 부동산 매니저가 배정됐다는 메일만 3통이 왔다. 입주 후에는 온라인 입회식을 예약하라는 내용과, 빨래부터 가구 임대까지 생활 편의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므로 필요 시 문의를 하라는 내용의 메일도 받았다.

앱을 설치한 뒤 메일로 별도 발송된 확인코드를 입력했더니, 그래비티 앱에 접속됐다. 그러자 런던 내 5개 지점에 거주하고 있는 그래비티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에 대한 정보가 제공됐다. 회원 인증 후 패션, 운동, 음식, 스포츠, 마음 챙김 등 관심 분야를 선택했더니 그에 맞는 커뮤니티 활동도 추천해 줬다. 요가와 마음 챙김 클래스, 브런치 모임, ‘베스트 드레서’ 선발 여름 파티 등은 무료로 제공됐다.

그래비티 앱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모임들. 실시간으로 참석자도 볼 수 있다. /그래비티 앱 캡처

그래비티 앱은 총 350~400명 정도 되는 이곳 거주자들의 SNS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권역별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채팅방이 따로 있었고, 실시간으로 교통 상황을 교류하거나 번개 모임이 꾸려졌다. 또 다른 거주자의 프로필을 클릭하면 이름과 사진, 출신 국가와 대학, 직업, 나이 등을 볼 수 있었다. 서로의 소식을 받아 보는 ‘팔로우’ 기능도 있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담벼락 공간에는 거주자의 개인 근황뿐만 아니라 중고 물품 거래 등도 이뤄졌다.

크레이그 매코맥 그래비티 마케팅 매니저는 “전 직장이었던 호텔에서는 하얀 건물에서 말쑥하게 차려 입고 일했지만 지금처럼 즐겁지는 않았다”면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이들의 생활을 돕고 깊은 유대관계를 맺으며 즐겁게 일하는 편”이라고 했다.

◇“여기서 만나 사업도”... 밥 먹으며 자연스런 인맥 형성

기자가 입주한지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1시, 그래비티 내 태국음식 브런치 모임에 참여했다. 그라운드층의 공용 공간 한켠에 태국식 볶음면인 팟타이와 유기농 두부를 넣은 카레 샐러드, 닭고기 카레, 스프링 롤, 쌀밥, 각종 소스와 음료, 감자칩 등이 차려져 있었다. 음식들은 이곳 매니저가 직접 요리해 준비했다.

오후에 마련된 태국음식 브런치 모임에 차려진 음식들. 거주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백윤미 기자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앨리스 팅게이 그래비티 경험&이벤트 매니저는 “식사를 준비할 때도 일반식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 중인 사람, 채식주의자 등을 고려해 메뉴를 여러 개 준비한다”고 했다.

시간이 되자 앱에서 사전에 참여를 예약한 입주자들이 한두 명씩 내려와 음식을 자신의 접시에 담고, 편한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안면이 있는 입주자들끼리는 자연스레 안부를 물었고, 최근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초면인 기자에게도 “언제 입주했느냐”고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는 분위기였다.

열쇠 보관함. 코드를 입력하면 열 수 있다./사진=백윤미기자

런던에 본사를 둔 한 기업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는 켄(26)씨는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가족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위치적 장점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컸다”면서 “실제로 이곳에서 친해진 인맥들이 커리어 성장에 도움을 주거나 사업적으로 협력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처럼 코리빙 하우스는 런던을 포함한 해외에서 고급 주거 문화를 이끌고 있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영국 런던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 등에서도 전문직 등을 타깃으로 운영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관련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리카르도 테사로 그래비티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코리빙 하우스는 런던에서도 이제 막 자리잡는 주거형태지만 올해 들어 투자자 등 시장의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코리빙 하우스는 하나의 주거 산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거주자들이 공용 공간에서 열린 브런치 모임에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거주자도 있다. /백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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