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열린 전세계 과학영재들 축제...환경에 초점 맞춘 연구 쏟아져
'개한테 물린 후와 사람한테 물린 후 생긴 박테리아는 어떻게 다를까.'
지난 28일 부산 소재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네덜란드의 고등학교 '오둘푸드 리세움'에서 온 영재들이 이처럼 다소 엉뚱하지만 일상에서 한번쯤 의문을 가질법한 연구 주제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개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구강 내에도 위험한 박테리아가 있을 수 있어 상처를 간과하지 말고 병원에 가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은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KSA)에서 열린 '2023 KSA 과학축전'에 참가해 그동안 연구해온 주제를 전세계에서 이번 축전에 참가한 영재들과 심사위원 앞에서 소개했다.
KSA 과학축전은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주최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AIST가 후원하는 국제학술·문화 교류 행사로 2008년 첫 개최 이후 올해 14회를 맞이했다. 올해 KSASF 2023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열린 첫 대면 행사다.
● 39개팀이 연구주제 발표 경쟁...한국 영재들 수학 분야 강점
올해 KSA 과학축전에선 미국, 호주, 중국, 태국, 케냐 등 전세계 총 20개국 29개 학교에서 과학영재로 꼽히는 고교생 90여명과 인솔교사 50여 명이 참가했다. 나흘간 열리는 KSA 과학축전의 꽃은 전세계 영재들이 '과학과 미래(Science and the Future)'를 주제로 한 자신들의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겨루는 콘테스트다. 도전장을 내민 팀은 지구환경과학 7팀, 생물학 8팀, 화학 8팀, 물리학 6팀, 융합공학 2팀, 컴퓨터 공학·수리 8팀으로 6개 분야 39개팀이다.
한국 학생들은 수학 관련 연구를 제시한 점이 눈에 띠었다. 우선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며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상한 필즈상 수상이 꿈인 김지원 군(18, KSA)은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이라는 연구주제를 발표했다. 세그멘테이션은 이미지에서 원하는 물체를 인식한 뒤, 그 물체만 추출하는 기술이다.
이윤상, 이채민, 박예서(17, KSA)군은 매듭이론 알고리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수학에서 3차원 공간에 들어있는 단순폐곡선을 매듭이라고 한다. 매듭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고난도 수학 이론 중 하나다. 이들은 매듭이론 선행연구에서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 수수께끼를 풀어낸 알고리즘을 소개했다. 이 연구로 지난 3월 학술지인 '청소년과학창의연구'에 논문을 게재한데다 지난해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전세계 영재들도 우려하는 '지구환경'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는 기존 과학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전세계 영재들도 실제 생활과 후속 세대를 위한 지구환경에 연구 초점을 맞췄다. 리호이 힘·트세 록 얀 군(16, 홍콩GT 컬리지)은 홍콩 수산물 시장에서 판매중인 조개류 속 중금속의 양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해 지구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싱가포르 누스고교와 KSA의 공동연구팀은 지구의 기상 상태를 관측하는 위성인 노아위성의 측정 결과를 분석해 한국과 싱가포르의 기후 변화를 비교한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중국의 산업 지대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한국과 싱가포르의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켈빈 리 군(18, 미국 세인트 존스 스쿨)은 활기찬 목소리로 '옥수수 대신 고구마를 심을 것'을 주장했다. 바이오연료인 에탄올은 옥수수 대신 고구마에서 추출하면 더 많은 양의 에탄올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다. 리군은 본인이 고구마를 으깨 에탄올을 추출할 때 사용한 도구를 발표장에 직접 들고 와 보여줘 관심을 집중시켰다.
● "경쟁 아닌 축제...서로에게 자극받는 미래 과학자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전세계 영재들은 치열한 발표 경쟁 속에서도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해외에서 온 참가자들도 다른 팀의 발표를 경청하고 열렬히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김지원 군은 "우리에게 오늘은 경쟁이 아니라 축제입니다"라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받거나 장래 희망을 다지는 기회가 된다는 소감도 전했다. 끼아라 메센 양(18, 네덜란드 오둘푸스 리세움)은 "다른 친구들의 연구 결과가 놀라웠고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았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리호이 힘 군(16, 홍콩 GT컬리지)은 "새로운 물질을 만들거나 관찰하는 화학자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연구 발표회를 관리한 권창섭 KSA 생물학 교사는 "학생들이 연구 자체를 즐기는 진정한 과학자로 자라 국가의 핵심 인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종배 KSA 학교장은 "앞으로 인류의 미래와 복지가 과학과 기술, 이번 행사에 참여한 미래 과학자들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건희 기자,안수연 기자 wissen@donga.com,yo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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