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작심 토로 “교육·노동·연금 3대 개혁 위해서라면 대통령 안 해도 돼…그만큼 절박한 상황”
“교육 개혁의 핵심, 좋은 답 아닌 좋은 질문 찾는 학생 기르는 데 초점 맞춰야”
(시사저널=김종일·박나영 기자)
안철수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지난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2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숨 고르기를 하던 안 의원이 정비를 마치고 최근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그가 요즘 유독 강조하고 있는 의제는 바로 3대 개혁이다. 교육·노동·연금 개혁의 절실함과 시급성을 환기하는 것은 물론 그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앞으로 안철수가 경제, 외교, 과학을 책임지겠다'는 새로운 슬로건도 선보였다. 안철수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6월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안 의원은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로 '3대 개혁의 필요성'을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틀을 바로 세우는 일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인데, 그 핵심에 바로 3대 개혁이 있다는 강조였다. 그는 이를 위해서라면 대통령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까지 했다. '진심'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안 의원과 1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 빈부 격차 오히려 악화시켜"
최근 3대 개혁의 절박함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유독 크게 내고 있다.
"제가 정치를 하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나라의 틀을 제대로 만들기 위함이다. 3대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면 대통령을 안 해도 된다. 진심이다. 대통령이 되더라도 3대 개혁을 해내야만 대통령을 한 의미가 있다. 대통령직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
정치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인가.
"그렇다. 처음 정치를 하면서 '정치가 무엇일까' 공부를 했다. 교과서를 보니, '권위에 의한 자원 배분'이라고 했다. 말은 맞는데, 와 닿지 않더라. 저는 정치가 이보다는 훨씬 더 범위가 넓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정치를 몇 년 해보니 스스로 정리가 됐다. 정치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 살아갈 삶의 틀을 만드는 과정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주어진 틀 안에서 교육 등을 받고 여생을 보낸다. 이 틀을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조금만 틀을 바꾸거나, 틀의 우선순위를 바꾸면 좀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게 지금 잘 안되고 있다."
'틀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국민연금을 예로 들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국민연금 제도는 빈부 격차를 오히려 악화시킨다.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보면 사실은 복지제도가 아니다. 소득 10분위(소득 상위 10%)는 대다수가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다. 가입 기간도 매우 길다. 그렇게 국가로부터 가장 많은 수혜를 받는다. 반면 소득이 제일 낮은 소득 1분위는 국민연금 가입률도 매우 낮고 가입 기간도 매우 짧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민연금은 지금 오히려 형편이 좋은 분들에게 국가가 더 많은 돈을 쓰는 구조가 됐다. 그렇다면 틀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가입률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개혁이고 정치다."
3대 개혁의 우선순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 게 바로 교육 개혁이다. 왜냐하면 개혁의 효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교육 개혁은 1970년대에 실시됐지만 그 결과는 1990년대에 나타났다. 우리가 지금 교육 개혁을 시작해도 2040년대가 돼야 결과가 나온다. 20년 후면 세상은 엄청나게 바뀐다. 지금의 한 해 한 해가 엄청 소중한 이유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지금은 챗GPT의 시대다. 교육은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키우는 건데, 옛날엔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어떤 분야가 어떻게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쉬웠다. 챗GPT의 시대는 다르다. 특히 이 시대엔 질문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좋은 질문을 잘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당장 인공지능(AI)에 더 좋은 질문을 입력해 더 좋은 답을 내놓도록 유도하는 '프롬프트(prompt)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새로 생겨났는데,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지금 우리의 교육제도가 과연 이런 인재들을 길러낼 수 있는가. 시급한 상황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개혁은 무엇이라고 보나.
"노동 개혁이라고 본다. 노동 개혁의 범위는 넓혀서 봐야 한다. 일자리 개혁이 중요하다. 일자리 개혁 없는 노동 개혁은 무용지물이다. 독일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가 있으면, 대학을 안 가도 되는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그래서 일자리 개혁은 교육 개혁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지금까지의 교육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교육 개혁만 해서 그렇다. 대입과 관련된 교육 개혁을 한다고 해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연금 개혁이 마지막이다.
"연금 개혁은 개혁의 시간이 수십 년 걸리고, 그 개혁도 한 번으로 되는 게 아니라 여러 번의 개혁을 거쳐 연착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지 개혁의 중요성에 대한 경중이 다른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 개혁안은 내놨지만 국민들이 싫어한다고 내버려뒀다. 그래서 부담이 훨씬 커졌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연금 개혁이 되지 않는다면 연착륙이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 거다. 골든타임이 거의 끝나간다."
"킬러 문항 손보는 건 일시적 증상 치료"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에 충실했다고 보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할 때 가장 고민됐던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니 3대 개혁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고, 이후 국회 구성이 바뀌어 여당이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발언이 큰 논란이 됐다.
"대통령의 지적대로 바뀐다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풍선효과가 나타나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 학생과 학부모, 학교와 교육 시장이 그런 우려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일자리 문제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의대에 가려는 학생들이 숱하게 줄 서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상징되는 대입 관련 부분을 일부 손본다고 해서 과연 우리 교육 문제의 핵심이 해결될까. 베스트 시나리오가 된다고 해도 일시적으로만 문제가 해결되는 '증상 치료' 정도일 것이다. 오히려 사교육비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또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시장이라는 게 그렇다. 시장은 늘 길을 찾아낸다."
안철수가 생각하는 교육 개혁의 핵심은.
"지금 우리의 교육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세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 학제를 먼저 바꾸고, 바뀐 학제에 맞게 교육 콘텐츠를 바꾸고, 20대까지만 교육을 받는 시스템을 평생교육으로 지평을 넓혀야 한다. 지금의 학제는 7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학제는 아이들의 성장 단계에 맞춰야 한다. 낡은 학제에 우리의 아이들을 맞출 게 아니라 새 시대의 아이들에게 학제를 맞춰야 한다. 그렇게 학제를 바꿔야만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코딩과 같은 새로운 교육을 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다. 좋은 답을 작성할 학생을 길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젠 좋은 답은 AI가 더 잘 찾는다. 더 좋은 질문을 해서 우리 상황에 맞는 지식을 뽑아내는 게 진짜 필요한 시대다. 그러려면 교육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우선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그러려면 초등학교 때의 문해력이 꼭 필요하다. 다음으로 숫자와 친해져야 한다.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연산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적성을 찾는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여기에 인성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성교육은 팀워크, 전혀 다른 사람과도 함께 지내고 소통하는 능력을 통해 길러낼 수 있다. 창의력은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과도 직결돼 있다. 이 세 가지를 기르는 중·고교 교육이 필요하다."
"정권교체 원한 민심 받들어야 총선 승리"
윤석열 정부 임기 1년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울러 대통령에게 딱 하나만 조언한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다. 제가 전당대회 나갔을 때 여당의 역할을 두 가지로 정의했다. 먼저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하고자 하는 바를 국회에서 제도적·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다음은 대통령실과 민심을 연결해 주는 일이다. 대통령실은 민심과 접점이 없다. 그런 조직이 없다. 반면 정당은 유일하게 지역구 주민들과 소통하며 민심을 계속 접한다. 그래서 민심을 누구보다 잘 안다. 대통령실이 민심과의 접점이 없다 보니 민심과 다른 정책을 발표할 때도 있다. 야당은 공격과 비판만 하면 끝이지만, 여당이면 민심이 바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동시에 정부가 채택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게 여당의 역할이다. 제가 하려던 일이 바로 이것이고, 제가 지금도 여전히 드리고 싶은 말씀도 이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이 승리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나.
"헌정 사상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교체가 됐다. 그만큼 국민들이 갈라치기와 내로남불에 염증을 느꼈다는 뜻이다. 그 두 가지를 고쳐 달라고 국민의 집단지성이 모여 매우 근소한 격차로 정권교체가 됐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 민심을 받들어 행동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 보수층과 진보층은 각각 30%의 고정 지지층이 있다. 40%의 중도층이 선거 승패를 좌우한다. 이들의 마음을 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왜 정권교체가 됐는지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고, 민심에 맞는 합리적 제도와 정책을 내야 한다. 민심을 얻는 길에 왕도는 없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안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성남 분당갑에 다시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이라면 난리가 날 텐데.
"난리 안 난다(웃음). 호사가들의 이야기라고 본다. 지역구 주민들과 당원들 모두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다. 안정돼 있다. 기본적으로 제가 분당갑에 당선된 지 이제 겨우 1년이다. 제가 지난해 6월1일 당선됐다. 1년10개월 만에 딴 지역구로 출마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제가 지금껏 약속한 공약들은 몇 년씩 걸리는 게 상당한데, 지역구를 옮기게 되면 거짓말한 게 된다. 지역구를 옮기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지역구를 함부로 바꾸는 것은 안 된다. 약속을 지키는 신의를 보여야 하는 게 정치다. 안 그러면 우리 당 의원 누가 나와도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믿지 못할 거고,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이 ‘젊은 대장암’ 세계 1위 된 이유 - 시사저널
- ‘만 나이’ 시대 열린다…입학·병역, 술·담배 구매는 예외[Q&A] - 시사저널
- 피해자 110번 찌른 정유정…父에 배신감 드러내며 살인 예고 - 시사저널
- 살 겨우 뺐는데 금방 원위치?…지속가능 다이어트 하려면 - 시사저널
- ‘로또 줍줍’ 나도 노려볼까? 했다간 낭패 봅니다 - 시사저널
- 공포의 30분…한 골목서 女 3명 연쇄 성범죄 30대 ‘구속기소’ - 시사저널
- 예비신랑이 왜 지하철 선로에…한국인 30대男, 파리서 의문의 사망 - 시사저널
- 한동훈 ‘핸드폰 분실’에 강력팀 출동? 경찰 입장보니 - 시사저널
- 목타서 마신 음료가 갈증 악화시킨다?…여름에 피해야 할 음료 3 - 시사저널
- 피할 수 없는 만성통증…완화하는 비결 있다?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