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마약 시장이 활개치는 그곳, 텔레그램을 추적하다

박재현 기자 2023. 7. 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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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팬데믹] ⑩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텔레그램

"마약 판매책 드랍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OO님 드랍일 하고 싶습니다."


공급책에게 마약을 받아 전국으로 배달하는 일명 '드라퍼(Dropper)'가 되기 위한 영상 지원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채용 조건은 1천만 원의 월급과 주기적인 마약 공급. 드라퍼 지원자들은 마약공급책의 간택을 받기 위해 얼굴, 주민등록증, 심지어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영상으로 찍어 보냅니다.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배신하지 않을 것을 증명하는 500만 원 정도의 '선불금'을 되레 요구하는 까다로운 공급책도 한두 명이 아닙니다. 회사 면접 과정처럼 신중하게 합을 맞춰보고 숙고 기간을 거쳐 드라퍼는 채용됩니다.


드라퍼를 채용한 공급책, 마약판매방의 문구를 바꿉니다. '부산X'였던 배송 가능지역 리스트는 이제 '부산O'로 수정됐습니다. 이 공급책은 이제 전국 20여개 지역에 마약 배송이 가능합니다. 고객은 필로폰, 코카인처럼 유명한 마약부터 브액, 떨액 같은 생소한 약물들까지 자유롭게 선택 가능합니다. 선택은 메뉴판으로, 입금은 암호화폐로, 그리고 약간의 인내만 있다면 거주지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서 드라퍼가 숨겨놓고 간 마약을 택배 받듯 수거할 수 있습니다.

공급과 배송, 수요가 적절히 균형을 맞춰 새 인력시장이 펼쳐진 이곳, 본격적인 마약 거래 시장이 열려 있는 이곳은 바로 메신저 '텔레그램'입니다.

텔레그램 창업자의 열망이 불러온 '나비 효과'

"이용자들 프라이버시는 (텔레그램 내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거란 두려움보다 더 중요합니다. 어차피 범죄자들은 보안이 불안해지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의 한 부분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테크크런치 인터뷰

텔레그램의 국내 온라인 마약시장 점유율은 72.8%입니다. 메신저 점유율 1% 조금 넘는 텔레그램이 국내 온라인 마약 거래의 4분의 3을 담당하는 겁니다. 하지만 숫자보다 무서운 것은 접근성입니다. 7년 전쯤부터 마약 거래의 온상으로 비판받았던 다크웹은 특정 브라우저를 이용해야 하는 데다 검색 방식도 까다로워 국내 마약 거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다릅니다. 메신저와 SNS에 익숙한 10대, 20대 투약자의 대부분은 흡사 일상생활을 하듯 쉽게 접근하고, 검색하고, 쇼핑하듯 텔레그램에서 마약을 구했습니다. 그들에게 텔레그램은 일종의 '인터넷 쇼핑몰'과 비슷했습니다.

텔레그램에 펼쳐진 마약 시장은 익명성에서 비롯됐습니다. 어느 정부에도 이용자의 자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창업자의 확언은 공급자와 유통책, 소비자에게 보증수표와 같았습니다. 텔레그램을 이용하면 수사기관에 검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겁니다. 이 믿음을 근거로 텔레그램 내의 마약 거래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모든 사태는 그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2013년입니다. 당시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CEO인 파벨 두로프, 그의 형 니콜라이 두로프와 20여 명의 핵심 그룹은 러시아에서 VK, 뷔콘탁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페이스북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기업, 하지만 이들은 러시아 정부에 의해 기업 운영권을 박탈당했다고 SNS에 글을 올린 뒤 러시아를 떠났습니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인사들의 정보를 내놓으라는 러시아 정부의 명령을 거부했단 이유였습니다. 이용자의 정보를 내놓지 않겠다는 신념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유럽으로 건너간 이들은 텔레그램을 선보입니다. 처음에는 독일 베를린, 그 이후에는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그룹의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본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교훈을 기반으로 새로운 운영 방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모든 정부의 간섭에서 해방되고, 어떤 정부기관의 접촉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유령, 비밀조직'과 같은 모습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겁니다.

프라이버시, 정부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파벨 두로프의 사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대한민국의 현재입니다.

텔레그램 본사 추적에 나섰던 이유

2020년 경찰청은 텔레그램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텔레그램 n번방', 조주빈으로 더 유명한 사건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실패했습니다. 텔레그램 본사 주소도, 운영진에게 닿을 이메일 주소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 내 부적절 게시물 신고 메일 등으로 7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두바이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이 또한 결과물을 내지 못한 상태, 결국 다른 단서에서 실마리를 찾아 일당을 검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텔레그램의 도움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접촉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경험은 마약 수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찰청과 대검찰청 모두 텔레그램 내 마약과 관련해 텔레그램과 접촉하거나 수사 협조를 요청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부적절한 게시물 차단을 도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텔레그램 마약거래방 차단 요청 건수는 올해 초부터 4월까지 단 1건에 불과합니다.


SBS는 지난 4월 텔레그램 본사 추적을 결정했습니다. 폭증하는 마약 사태를 진정시킬 방법은 텔레그램의 협조, 최소한 텔레그램이 우리 정부, 언론과 접촉한다는 메시지만으로도 공급자와 유통책, 소비자가 움츠러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마약 거래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정보 자산이 밀집한 미국 의회에서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2021년 5명이 사망한 트럼프 지지자 국회 난입 사건 발생 시 텔레그램이 주요 통로로 지적됐기 때문에, 미 의회에서 텔레그램을 추적했을 거란 추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SBS 취재팀은 2021년과 2022년, 미 의회에서 텔레그램에 보냈던 문서를 확보했습니다. 문서의 상단에는 미 의회에서 조사하고 확보한 텔레그램의 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현재 텔레그램 본사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장소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였습니다.

들어간 사람이 없는 그곳, 텔레그램 두바이 사무소



결과적으로 미 의회의 조사도 틀렸습니다. 미 의회가 공문을 보냈던 '두바이 미디어시티 쌍둥이 빌딩' 10층에는 이미 메신저 회사 '틱톡'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틱톡 직원은 텔레그램이 오래전 이곳을 떠났다는 말만 남겼습니다. 추적 시작하자마자 끝나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무렵,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취재진에게 틱톡 직원이 다가왔습니다.

"23층을 가보세요."

빌딩 23층에는 10개의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그중 텔레그램이 사용하는 건 3개. 문은 굳게 잠겨있고 어떠한 팻말이나 단서도 없었습니다. '2301호' 팻말 위에 쌓인 먼지가 사무실의 상태를 짐작하게 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 옆 사무실을 사용하는 컨설팅업체 직원, 취재진이 텔레그램을 묻자 대뜸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텔레그램을 찾아온 것은 당신들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사무실을 살펴보고 내게 텔레그램을 물었습니다."

지금껏 많은 정부, 수사기관에서 텔레그램을 추적해 왔던 겁니다.

빌딩 관리인은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텔레그램은 23층에 있습니다. 그런데 임대 이후 지금까지 사무실로 올라가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임대료를 내러, 계약을 갱신하러 이곳에 오지만 사무실에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 두바이 미디어시티 쌍둥이빌딩 관리인

단서는 남아있었습니다. 두바이 정부 경제부에 기업 정보가 남아있던 겁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는 없었지만 아랍어로 된 주소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 주소를 확보한 취재진은 다시 20분 거리, 두바이 시내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주소를 본 현지인들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불가능한 주소라는 겁니다. 동시에 있을 수가 없는 두 가지의 주소가 결합된 형태,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 해운대구 무릉도원면'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주소라는 겁니다.

취재진은 주소를 하나씩 떼서, 해운대구와 건물 주소, 무릉도원면과 건물 주소를 연결시켜 해당 주소도 찾아가 봤습니다. 하나는 부동산 개발업체, 다른 하나는 기업등록 대행업체였습니다.

30,000개 회사의 본거지, 그리고 텔레그램



SBS 취재진은 미 의회 자료와 영국 정부 기업 개설 서류를 근거로 다시 추적에 나섰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영국 런던,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처음으로 '텔레그램' 이름으로 기업을 개설한 곳입니다. 수많은 정부 서류에 남겨진 텔레그램의 흔적, 확인된 주소만 5곳이 넘습니다.
"텔레그램을 이메일로 저희가 관리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지금껏 이곳에 실제 있었던 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런던 셸튼가 주소지의 인물
"이 주소가 텔레그램이 맞긴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관리하는 회사는 텔레그램을 포함해 3만 개가 넘습니다."

- 런던 그레이트 포틀랜드 주소지의 인물

영국 런던에 등록된 창업자의 주소는 거짓, 서류들에 남겨져있던 하나의 전화번호는 세무법인의 전화번호, 다른 주소들도 모두 회사등록 대행업체의 것이었습니다. 등록된 아파트 주소, 링크드인에 텔레그램 근무라고 올린 인물, 이 또한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텔레그램이 맞지만 텔레그램은 없다, 텔레그램의 모습이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갔던 모든 주소지의 인물들은 텔레그램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실체를 알거나 목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텔레그램이 등록한 주소지는 위장된 사무실이거나 잘못된 주소, 또 회사등록 대행업체를 통해 세탁을 거친 주소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텔레그램은 사이버 상에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업의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미 의회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주소는 버진 아일랜드 영국령. 이 주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파나마 페이퍼스에 다수 등장했던 곳, 즉 조세피난처로 등록된 회사의 주소였습니다. SBS는 위 주소로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반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안내문과 함께 다시 돌려보내졌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박재현 기자 repl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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