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원조 부촌' 부활 꿈꾸는 방배13구역, 이주 지연에 몸살

정영희 기자 2023. 7.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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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부터 방사능 폐기물까지… 이주 완료 '2%' 남기고 애타는 조합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6월27일 서울 서초구 방배13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 현장은 현재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이주는 약 98% 진행됐다./사진=정영희 기자
요즘 서울 부촌을 꼽으라면 이른바 '삼청대잠'(삼성·청담·대치·잠실동)이지만 20년 전엔 압구정·서초·방배동 트로이카가 '압서방'이란 별칭으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방배동은 고급 단독주택이나 빌라가 많아 '원조 부자동네'로 꼽혔지만 주거 환경 노후화로 반포동에도 밀리는 신세가 됐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방배동은 현재 정비사업 '러시' 중이다. 속도 측면에선 방배13구역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방배역에서 내려 10분가량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방배13구역으로 향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지난 6월27일 찾은 이곳은 이주가 거의 완료된 탓에 유령도시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곳곳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벽마다 래커 스프레이로 그려놓은 낙서가 가득했다. 전신주 사이엔 방배13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이 걸어둔 도로차단·통제 공지 현수막이 내걸렸다. 범죄 예방을 위해 방배13구역 내 일부 미이주 가구 통행로를 제외한 도로를 폐쇄한다는 내용이다.

방배13구역은 방배동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 중 한 곳이다. 높은 지대로 경사가 가파른데다 도로가 좁아 대형 트럭 등은 지나가기 어려운 구조다. 연립·다세대주택 밀집 지역 특성상 주민들은 주차공간 부족 문제로도 몸살을 앓고 있는 분위기다.

서울 서초구 방배13구역의 모습. 이주를 마쳐 휑한 상가가 눈에 띈다./사진=정영희 기자


'조합 설립 무효' 파고 넘고 악셀 밟은 재개발


서초구 방배동 541-2번지 일대 구역면적 12만9891㎡에는 최고 22층 높이의 아파트 35개동 2369가구와 부대복리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GS건설이 시공하는 이곳은 '방배 포레스트 자이'로 탈바꿈한다. 부스터라도 단 듯 초기 사업은 물 흐르듯 진행됐다. 2015년 정비구역 지정에 이어 2016년 7월 조합 설립 후 1년2개월 만에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시공사 선정까지 마쳤다. 사업이 지연되기 시작한 건 관리처분계획인가로 향하는 길목에서다. 당시 조합은 설립인가 무효소송에 발목을 잡혀 존폐 위기에 처했다.

2018년 조합은 '설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에 따르면 조합 설립 시 주택단지 안 공동주택의 동별 구분소유자의 과반수 동의와 주택단지 안의 전체 구분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토지면적의 4분의 3 이상의 토지소유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 방배13구역에는 각 1개동으로 이뤄진 단지 10개가 포함돼 있었다.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할 때 조합은 이들 단지를 하나의 주택단지로 간주하고 동의율이 기준을 넘기자 설립 요건을 갖췄다고 봤다. 서초구도 동일한 판단 하에 이를 승인했다. 1심 재판부는 "10개 단지를 각각 별개의 주택단지로 판단해야 한다"며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조합은 곧바로 항소, 이듬해 서울고등법원에서 "주택단지별로 나눠 구분동의자의 동의율을 산정해야 할 필요성을 찾을 수 없다"는 판결문과 함께 결과가 뒤집힌다. 원고 측은 상고했지만 같은 해 11월 대법원에서 심리 없이 이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며 조합은 1년여 만에 다시 재개발 항해를 향한 닻을 펼 수 있었다. 현재는 이주가 98%가량 진행됐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541-2번지 일대 방배13구역은 이주가 끝나 현재 안전 문제를 이유로 진입 금지 상태다./사진=정영희 기자


교회 이주 문제로 2년간 대립… 보상 기준 법제화 논의도


2019년 조합은 부지 내 2개의 교회에 줄 보상금으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주에 따른 보상금 액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합과 교회 측의 의견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21년 교회 두 곳을 상대로 건물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성흥구 조합장은 "처음엔 온건파 신도들과 대화가 잘 되는 듯 했으나 강성파 신도들이 점점 개입되며 무리한 액수를 요구해 합의가 결렬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조합과 교회 양측이 조합원과 신도 의견을 매번 모으기 힘들다 보니 차라리 법원에 중재 역할을 맡기는 게 좋겠다는 판단으로 소장을 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6월15일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강제조정) 판결을 내렸다. 강제조정이란 재판부 직권으로 당사자 의사를 강제해 이뤄지는 합의다. 별도의 이의제기가 없으면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법원은 조합에 2개 교회에 200억원 상당의 보상금과 교회 건물 신축에 따른 공사비 지급하는 한편 새 재개발 부지에 종전과 동일한 크기의 종교용지를 공급하라고 결정했다. 조합과 교회 양측이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서 조정은 확정됐다. 교회 이슈로 이주가 좀 더뎌지긴 했으나 지연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는 게 조합 측 주장이다.

교회 등 종교 시설은 꾸준히 정비사업의 암초로 자리해 왔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대상 사업지 내 부동산 소유자가 사업에 참여하면 조합원이 되는데 이때 종교시설을 따로 분류하진 않는다. 이사를 가거나 잠시 가게를 이전하면 되는 주택, 상가 소유자와 달리 종교시설은 공사 중에도 꾸준히 활동을 해야 한다는 특수성이 있어 통상 보상금을 요구하곤 한다. 대표적인 곳이 성북구 장위10구역의 사랑제일교회다.

서울 서초구 방배13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사무실 모습./사진=정영희 기자
문제는 그 액수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현행 법령에 없다는 데 있다. 조합과 종교시설 간 합의가 안 되면 결국 소송밖엔 답이 없다. 사건이 법정으로 가게 되면 조합이 불리해질 확률이 높다. 정비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업이 지연되면 금융비용이나 공사비 인상 등에서 발생하는 출혈이 더 클 수도 있다. 종교시설이 부르는 대로 최대한 보상금을 맞춰주는 조합이 많은 이유다. 지난 4월6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 교회에 보상금을 지급했거나 예정인 서울시내 재개발 구역은 총 17곳으로, 이 가운데 5곳은 보상금이 100억원을 넘는다.

종교시설에 지급해야 할 보상금 액수를 법령으로 묶어두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서울시는 2009년 '종교시설 처리방안'을 마련, 재개발 사업 관리처분계획 수립 시 종교시설은 우선 존치를 검토하고 이전이 불가피할 땐 조합이 ▲기존과 같은 면적의 용지(대토) 제공 ▲사업 기간 동안 사용할 임시 장소 마련 등을 제안했다. 이 같은 지침에도 이를 따르는 조합이나 종교시설이 많지 않다. 단순 가이드라인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는 탓이다.

현실적으로 정비사업 대상지 내 종교시설 보상기준만을 다루는 입법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종교의 자유는 한국의 최고 상위법인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라는 논리가 배경이 된다. 권주안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합과 종교시설 사이 보상금 지급 기준을 명문화한다면 사인 간 민사적 관계를 규율하는 데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종교마다 신도마다 신앙의 깊이나 종교시설이 일상을 차지하는 정도가 모두 다른데 그 편익을 일원화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사능 폐기물'도 복병… "이주 2% 남았는데" 애타는 조합


방배13구역 내 사무실을 두고 있던 비파괴 검사업체 A기업과의 보상금 협의도 또 하나의 암초다. A기업과 조합은 2017년부터 이주 보상금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소송전이 시작됐고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은 조합으로 하여금 A기업 사무실 건물을 약 25억원에 매도청구할 것을 판결했다. A기업 측은 즉각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 조합장은 "A기업은 이주 보상금으로 100억원을 요구하고 해당 건물의 감정평가액(약 25억원)의 2배인 50억원에 협의를 하자는 조합 제안도 거절했다"며 "판결 이후에도 A기업이 사무실을 비워주지 않아 최근 매도금액을 공탁한 뒤 강제집행을 통해 건물 2~4층을 비우도록 했다"고 말했다. 조합은 현재 A기업 측에 이주 지연에 따라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수반되는 금융비용 등을 물어내라는 취지의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다.

방사성 동위원소 폐기물 등이 저장돼 있는 지하1층은 아직 그대로다. 방사능 폐기물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을 통해 별도로 폐기 신청을 해야 한다. 강제집행 판결을 받았더라도 집행관이 자력으로 이를 버리거나 이전할 수 없다. 조합 측은 빠른 이주를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A업체에 명도 집행 우려가 있으니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바 있지만 명도가 원자력안전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어서 이주 등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긴 어렵다"며 "A업체가 방사성 동위원소를 취급하면서 관리가 소홀했거나 안전상 문제가 생기는 등의 상황이라야 개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법원에서 집행권원을 받았어도 기존 소유자가 못 나가겠다고 무작정 버티면 무력 등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주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며 "방사능 폐기물 관련 시설 등 특수시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13구역 재개발 대상지 전경./_사진=정영희 기자


입지 좋지만 사업성 '글쎄'… 커지는 추가 분담금 걱정


이주 과정에서 진땀을 빼긴 했으나 방배13구역은 입지 측면에서 장점이 많은 사업지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이며 인근에 초등학교와 공원을 끼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주변 아파트 시세를 고려할 때 고분양가를 피할 순 없겠지만 위치상 '완판'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본래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는 경우 관리처분계획인가 전까지 매수가 진행돼야 조합원 지위를 양도받을 수 있다. 예외적으로 사업시행계획인가일부터 3년 이내에 착공하지 못했다면 해당 지역 부동산을 3년 이상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 한해 착공 전 매도가 허용된다.

이런 이유로 매물 자체가 많지 않고 방배동이란 위치 특성과 재개발 호재로 프리미엄도 많이 붙었다. 권리가액(종전평가액에 비례율을 곱한 금액)이 1억3500만원~2억1000만원 선이며 매수 시 59㎡ 배정이 예상되는 다세대주택은 11억원대에 매물로 나와있다. 84㎡ 아파트 배정 가능성이 높은 빌라의 경우 프리미엄이 10억원부터 시작, 호가는 20억원대다. 조합원 분담금은 ▲59㎡ 7억6000만원 ▲84㎡ 10억600만원 ▲112㎡ 13억3000만원 등으로 책정됐다.

사업성이 낮은 건 조합도 인정하는 방배13구역 최대 단점이다. 이 지역은 연립·다세대주택이 주를 이루는 탓에 조합원이 많다. 조합원이 늘어날수록 일반분양 물량은 줄고 내야 하는 분담금 액수는 커진다. 조합이 지난해 최고 층수 22층으로의 정비계획 변경을 신청한 것도 사업성 증대를 위해서다. 종전에는 최고 층수가 16층으로 제한돼 있었다. 60㎡(이하 전용면적)보다 작은 소형 면적은 1218가구에서 1130가구로 줄이고 85㎡ 이상 대형 면적 가구를 늘리기도 했다.

추가 분담금은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미뤄볼 때 공사비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합 측은 "추가 분담금을 빨리 알려달라는 조합원이 많지만 아직 공사비도 확정 안돼 답변할 수 없다"며 "GS건설과는 철거와 멸실신고까지 끝낸 다음 공사비 관련 논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GS건설 관계자도 "착공 직전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정확한 공사비 변동분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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