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릉 감싼 파도, 경주 전시실 바닥까지 들이쳐

노형석 2023. 7.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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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라고분정보센터 개관
증강현실 등 첨단 영상기법
신라 고분 천년 기억 꺼낸다
경주 신라고분정보센터의 디지털실감영상실 모습. 경북 감포 문무왕릉 주변 동해에서 밀려온 파도의 물길이 전시장 바닥까지 뒤덮은 모습이다. 천장에 다수 설치된 프로젝터의 동영상이 벽면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입체적으로 투사하면서 실제 파도를 접하는 것과 비슷한 실감을 냈다. 노형석 기자

문무왕의 혼이 서린 동해 파도 물살이 발밑으로 밀어닥친다.

해변이 아니라 컴컴한 전시실 바닥이다. 빛을 뿜으며 밀려온 파도는 바닥에 허연 포말을 일으킨다. 발밑까지 덮어버린 물살의 기세에 관객들은 움찔한다.

7세기 삼국 통일 주역 문무왕의 해중릉이 바로 보이는 경북 감포 앞 동해의 입체동영상은 실감이 강렬했다. 진짜 거센 바다 물살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전시실 천장 곳곳에 박힌 비디오투사기(프로젝션)의 위력이다. 투사기들은 사면 벽과 바닥에 빈틈없이 짜맞춰진 입체 영상을 비춘다. 영상 속 왕의 영기를 품은 파도는 벽면에서 바닥으로 힘차게 번져 나왔다가 쑥 들어가기를 되풀이한다.

경주 신라고분정보센터의 디지털실감영상실 모습. 고신라 무덤에서 나온 허리띠 출토품의 확대된 세부 모습이 떠오르듯 부각되는 동영상이 나오고 있다. 노형석 기자

몰입형 상업 전시 ‘빛의 벙커‘나 ‘아르떼뮤지엄’ 못지않은 완성도와 재미에 의미까지 신라 고분 콘텐츠에서 뽑아낸 증강현실 전시장이 등장했다. 천년 고도 경주 도심 황리단길 인근 노서동 고분공원에서 지난 30일 개관식을 연 신라고분정보센터가 그 공간이다. 문화재청과 경북도, 경주시가 함께 손잡고 건립한 이 시설은 지난해 돔형 전시관이 들어선 금관총 바로 북쪽으로 연결되는데, 가상세계로 빚어낸 신라 고분의 역사적 풍경들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안에 들어가면 문무왕해중릉의 파도 말고도 금관총, 천마총, 괘릉, 쪽샘 같은 유명한 신라고분의 얼개와 실체가 등장한다. 금관, 금제허리띠, 팔찌, 토제인형 등의 출토품들을 세부실측에 바탕한 명쾌한 가상이미지로 재현하고 두둥실 떠다니거나 떠오르는듯한 역동적인 구도로 부각시킨다.

센터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일부로 2020년 12월 착공해 약 3년만에 완공됐다. 연면적 576㎡(174평)에 그랜드피아노 모양의 평면이 특징인 지상 1층 철골 콘크리트 건물. 장대한 미술관급은 아니지만, 이른바 ‘실감영상’으로 불리는 디지털 영상 콘텐츠의 내용과 기법 등은 최상급으로 평가된다.

고갱이는 35m의 미디어월 벽에 4m의 층고를 갖춘 넓이 160㎡(48평)의 디지털 실감영상실. 신라 고분의 역사와 출토품, 발굴 일화 등에서 흥미로운 부분들을 끄집어내 다큐드라마식으로 엮어낸 디지털 영상 4편을 연속적으로 틀어준다. 생명의 씨앗과 태아를 상징한다는 신라 곡옥의 등장을 시작으로, 널무덤, 돌무지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신라인들이 1천년 동안 조성한 여러 무덤 양식과 주요 출토품 등을 돌아보는 ‘신라고분 1천년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제왕인 마립간이 숨지면 어떻게 예식을 치러 영원한 쉼터인 고분 속에 안치하는지를 생생하게 재현한 ‘신라인의 삶과 죽음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생사관도 돌아본다.

영상실의 또 다른 재미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천마총 발굴 이야기 코너. 1973년 발굴 이래 지금까지 생존해 활동하며 고고학계의 레전드가 된 6명의 당대 주역들이 나와 감동과 흥분으로 가득했던 발굴상황들을 편집된 동영상과 현장 기록사진, 가상설명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특히 금관을 담은 상자를 천마총 무덤에서 갖고 나오다 벼락치고 비가 내리자 감전되지 않으려고 발굴단 사무실로 급하게 도망쳤다는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의 증언엔 천둥소리와 비 오는 장면을 덧붙여 실감 나게 당시를 추체험하게 했다. 경주 지방의 대자연과 어우러진 문무왕해중릉과 천마총, 원성왕릉(괘릉) 등을 드론을 통해 하늘에서 부감한 실감 영상도 기다린다. 네 편 영상물이 상영되는 30여분 동안 신라 천년역사가 응축된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센터 내부 가장 안쪽엔 돌무지덧널무덤인 금관총의 무덤 쌓는 공사 과정을 실제로 조망하듯이 감상할 수 있는 맵핑 체험 기기가 설치됐다. 처음 선보이는 첨단설명 장치로 뜯어보는 흥취가 각별하다. 지난 2015년 국립박물관이 금관총을 재발굴할 당시 대형 나무 기둥 구조물들을 틀처럼 짜서 무덤 덧널 주위를 촘촘히 둘러싼 사실을 밝혀낸 데 따른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신라 인부들이 돌무지 쌓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재현해 특유의 무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고분공원의 유일한 전망대인 센터 옥상(루프톱)은 상시 개방된 공간으로, 해 질 녘 황남대총과 봉황대, 서봉총, 서봉황대 봉분들이 석양을 받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개관 현장을 돌아본 강봉원 문화재위원장(69·경주대 특임교수)은 “신라의 무덤 양식이 어떻게 변모했고 어떻게 축조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디지털 동영상을 역동적으로 연출한 게 인상적이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처럼 젊은 세대에게 고고학과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주/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지난달 30일 개관한 경주 신라고분정보센터의 외관(오른쪽). 경주 최대의 미발굴 고분인 봉황대(왼쪽)와 통행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건물 뒤쪽으로 돔을 인 금관총유적전시관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노형석
센터 내부 안쪽에 설치된 맵핑 체험 기기. 돌무지덧널무덤인 금관총의 무덤 쌓는 공사 과정을 실제로 조망하듯이 감상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1973년 천마총 발굴 주역중 한 명인 원로 고고학자 윤근일씨가 지난달 30일 개관행사 뒤 센터 한켠에 진열된 천마총 발굴보고서(1974)와 보고서 표지 안쪽에 쓰인 발굴 주역들의 서명을 살펴보고 있다. 노형석 기자
센터의 전망창으로 노서동 고분군을 바라본 모습이다. 서봉황대와 서봉총, 134호분의 봉분이 눈에 들어온다. 경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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