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으로 몰입, 횃불 들고 험로 개척… 금융계 판도를 흔든다[Leadership]

이관범 기자 2023. 7. 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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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취임 100일 맞은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글로벌 금융위기·구조조정 등
거대현안 다룬 ‘韓경제 전문가’
금융위원장땐 인터넷銀 도입
증권·보험 등 인수합병 추진
은행 의존도 줄이고 사업 재편
5년내 초대형 투자은행 목표
“금융권 신뢰회복은 생존 문제
적극적 ‘내부통제 체계’ 필요
회장 독단적 인사권은 없앨것”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취임 100일(7월 1일)을 사흘 앞둔 6월 28일 우리은행 본점 집무실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새로운 지배구조 모델을 정립하고 ‘기업금융 명가’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백동현 기자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지만,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전략이 뚜렷하다면 충분히 1등 금융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취임 100일(7월 1일)을 사흘 앞둔 지난 6월 28일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집무실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임 회장은 향후 중장기 목표에 대해 “시기를 못 박는 것이 당장은 어렵겠지만, 1등 금융을 향한 변화의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임 회장은 이날 지주와 계열사 부서장 120명과 만나 2시간 동안 허심탄회하게 향후 나아갈 바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1등 금융을 언제쯤 달성할 것으로 보느냐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임기 중에 달성을 못 하면, 적어도 1등 금융을 달성할 여건을 만들고 나가겠다”며 의중을 털어놨다고 한다. 호언장담 대신 진정성을 우선시하는 임 회장 특유의 솔직한 답변으로 해석된다.

임 회장은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과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총리실장, NH금융그룹 회장, 금융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자 민·관을 모두 아우른 보기 드문 리더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장르인 ‘회귀물’의 주인공처럼 인생을 수차례 다시 살아도 경험하기 힘든 요직을 거쳤다. 특히 임 회장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함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대규모 구조조정 등 한국 경제의 거대 현안을 제일 많이 다뤄 본 전문가로 꼽힌다. 금융위원장 시절에는 인터넷은행 도입 등과 같은 대대적인 금융 혁신과 규제 개혁을 이끌었다. 금융권은 임 회장이 앞으로 금융판을 어떻게 흔들어 나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걸출한 리더가 나올 때마다 후발 금융그룹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만년 4위’로 전락한 우리금융그룹의 변화에 이미 금융권은 긴장하는 표정이다. 우리금융은 임 회장 취임 후 전세사기 피해 지원과 고금리 부담 완화 대책 등을 가장 선도해서 내놓는 등 예전과는 전혀 달라진 민첩성을 보여주며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대적 사업재편 ‘예고’ = 임 회장은 1등 금융의 실현 방법을 묻자 “기업문화 혁신을 토대로 미래 성장 추진력을 강화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우선 과제가 ‘기업금융 명가’라는 명성의 회복이다. 우리금융은 과거 상업·한일은행이 합병해 탄생했다. 1899년부터 현재까지 124년간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며 경제성장의 역사를 같이 써왔다. 임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화돼 합병됐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은행이 과거와 같은 역할과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신성장 기업에 3조 원의 실탄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임 회장은 타금융그룹에 비해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전체 사업 틀을 통째로 바꿀 방침이다. 괜히 몸값만 높여 놓을 수 있어 성급하게 추진하진 않겠지만, 인수·합병(M&A)을 축으로 한 증권·보험·저축은행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특히 증권사 인수는 기업금융 강화 측면에서 시너지를 가장 크게 낼 수 있다. 임 회장은 “증권사 신설은 신규 인가가 어렵고 경우에 따라 대규모 증자가 필요해 M&A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수만 하면 그룹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해 5년 안에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9년 전 NH금융그룹 회장 시절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도 불구, 우량 증권사인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를 성사시켜 NH의 금융권 위상을 확 바꿔 놨다. 우량 보험회사 인수도 모색하고 있다. 연금보험 시장 주도가 목표다. 저축은행 등도 M&A를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독단적 인사권 내려놓겠다” = 임 회장은 올 하반기 금융권의 가장 큰 이슈로 ‘내부통제 혁신’을 꼽았다.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내부 횡령 사건 등이 터지면서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사태에서 보듯 내부통제에 실패하면 순식간에 은행 문을 닫아야 하는 냉혹한 시장 환경에 직면해 있다. 임 회장은 “내부통제는 금융당국의 정책 변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금융사 스스로 챙기지 않을 수 없는 어젠다가 됐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사고 발생이 두려워 변화를 기피하는 수동적 내부통제가 아닌, 혁신을 관리하는 적극적 의미의 내부통제 체계가 필요하다”며 “겸직으로 치부돼온 내부통제 업무에 전담 인력을 투입하고, 이를 거치지 않으면 관리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금융지주 회장이 사외이사로 참호를 파고 ‘셀프 연임’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객관성·전문성·투명성이 담보된 CEO 선임 및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회장의 독단적인 인사권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3일 취임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이같은 취지를 살린 4단계 다면평가를 거쳐 선정됐다. 임 회장은 “집단지성을 이용해 보다 적합한 사람을 찾겠다는 의지의 결실”이라며 “선정 과정에서 과거에 있던 잡음과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지배구조나 경영승계 문제는 금융위원장 시절에도 지난한 문제 중 하나였다.

임 회장은 과거 민영화 경험을 살려 새로운 지배구조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각오다. 공직 시절 우리금융그룹이 탄생하게 된 상업·한일은행의 합병 작업을 담당하고, 우리금융 민영화를 주도했다. 4번 실패 끝에 성공했다. 임 회장은 “당시 ‘과점주주 체제’를 만들어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면서 “과점주주가 경영진을 견제할 사외이사를 추천하므로 좀 더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주사가 마치 감독기관처럼 움직이며 비대해지는 모습”이라면서 “지주사는 전략을 짜고, 계열사는 경영, 즉 영업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성이 모든 열쇠” = 임 회장은 재정경제부 재직 시절 핵심 보직인 금융정책과장과 종합정책과장 자리를 거의 유일하게 거친 인사다. 주류인 대구·경북(TK) 및 경기고, 서울대 출신을 제치고 호남 출신의 비서울대 출신이 두 자리를 꿰찬 것은 이례적이었다. 당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비주류인 임 회장이 핵심 보직에서 밀려나지 않은 것은 ‘일 중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몰입력을 발휘한 업무 능력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총리실 출신들은 김황식 전 총리와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을 최근 20년간 역대 최강의 조합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임 회장이 경제금융비서관 시절 청와대 회의를 끝까지 참석하다 부친 임종을 놓친 사연은 유명하다.

몰입력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일이나 사람이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정성에 있다”면서 “진정성이 없으면 일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성과가 없거나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직(이해관계 조정 및 균형)과 민간(성과지향과 인센티브)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긴 하지만 그 기저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신조다. 그는 “진정성은 공직에서 배운 것이긴 하지만 민간에서도 중요한 자세”라며 “예비 리더를 만날 때마다 이런 생각을 꼭 당부한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독하게 일하는 스타일인데도 기재부 시절 1000여 명의 직원 투표로 뽑는 ‘닮고 싶은 상사’에 세 번이나 뽑혔다. 임 회장은 “선배로서 방향을 잘 정하고 최선을 다해 주는 후배에 대해 얼마나 책임져줄 것인가, 얼마나 보람을 안겨줄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 같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당사자보다는 선배가 제 역할을 하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준비된 부총리’라는 평가를 받으며 내정을 받았지만, 탄핵 정국 여파에 결국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임 회장은 “공직은 아주 고결하고 막중한 임무”라며 “공직에서 하고자 했던 정책을 이제는 민간에서 실현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관치 2.0’을 우려하는 금융권 안팎의 시선과 우려는 앞으로 임 회장이 넘어야 할 ‘숙명’이다.

이관범·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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