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여자 ‘대통령 경호원’ 출신…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이수련 인터뷰
어떤 문장도 그를 수식하기엔 부족하다. ‘도전 중독’이란 말도 떠오른다. “여자도 경호를 해요?”라는 말 쏙 들어가게 만드는 화제의 예능 ‘사이렌: 불의 섬’ 경호 팀 리더이자 배우 이수련 얘기다.
각 분야 최강 강인함을 자랑하는 여성들이 모였다. 상대 팀에 대한 견제마저 심장 떨리는 이곳은 넷플릭스 생존 전투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불의 섬’. 경찰, 소방, 군인, 스턴트, 운동선수, 경호원까지 다양한 직군의 여성이 모인 가운데 정곡을 찌르는 무게감 있는 말투, 이색 경력으로 화제가 된 배우 이수련(42)을 소개한다.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경호관 출신인 그는 국내 1호 대통령 여성 경호원이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세 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웃고 있는 표정에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진다. 경호원 출신 배우가 서바이벌 예능까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그의 행보다. '사이렌: 불의 섬’ 전편 공개가 마무리된 지난 6월, 장르를 불문하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그를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전편이 공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반응이 좋아서인지 인터뷰 의뢰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촬영 예정 영화가 있어서 그에 맞춰 준비하고 있고, 소소하게 취미 활동도 해요.
이제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요.
완전 민낯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 평소에 많이 알아볼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몇 없었어요(웃음). 연락 오는 지인은 확실히 많아졌어요. 해외에서도 볼 수 있으니, 특히 경호실에서 일할 때 만났던 외국 총리나 대통령 경호원 친구들한테서 연락이 와요. 함께 작품을 찍을 때 저를 많이 지지해주고 친하게 지냈던 배우 장나라 씨도 남편과 재밌게 잘 봤다고 응원해줬어요.
경찰관과 소방관이 싸우면?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힘든 프로그램인 줄 몰랐어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을 들어서 '체력 관리만 잘하고 가면 되겠다’ 싶었죠.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땐 고민이 됐어요. 배우로서 다양한 배역을 맡기 위해 연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경호원 경력으로 주목받는 게 괜찮을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직 여성들을 모은다는 취지가 너무 멋지고 설렜어요.
처음엔 기지전의 존재도 모르셨네요.
전혀 몰랐어요. 생존이라고만 들어서 사냥용 새총 만드는 방법이라도 익혀가야 하나 고민했죠.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었어요. 촬영지도 몰라서 새벽에 납치되듯이 차로 실려 갔답니다(웃음).
상대 팀을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소방, 경찰, 군, 스턴트우먼, 국가대표 운동선수 모두 대단한 직업이잖아요. 그런 분들이 한 손에 도끼까지 들고 다니면 정말 '후덜덜’해요(웃음). 살짝 '스포’를 하면 한 팀은 도끼로 문을 부수기도 하는데, 너무 무섭다가도 '저분들 덕에 내가 발 뻗고 자는구나’ 싶어서 존경심이 들었죠. 경쟁 상대는 맞지만 어느 팀 하나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요.
다른 팀 출연진도 종종 만나나요.
정말 많이 만나요. 저희 팀뿐만 아니라 전체가 굉장히 친해요. 지난주엔 종방연 개념의 전체 회식을 했어요. 얼굴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전투복만 입던 애들이, 세상에 실제론 너무 예쁜 거예요. 아예 몰라봤어요. 운동선수 팀의 김희정 선수도 저를 보더니 "배우 출연자가 있대서 찾아봤는데 그게 알고 보니 언니"였다며 "‘황후의 품격’에 가발 쓰고 나왔잖아요!" 하더라고요. "네가 그렇게 매몰차게 밀어붙이던 나였다!"라고 받아쳤죠(웃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느라 회식에 참여하지 못한 친구도 있었는데, 서로 소식을 공유하면서 응원하고 있어요.
‘사이렌: 불의 섬’의 관전 포인트는 치열한 생존에서 더 빛나는 끈끈한 팀워크다. 24명의 여성은 6박 7일 동안 불의 섬에 머물며 장작 패기, 우물 파기, 갯벌 건너기 등 피지컬·힘·전략·정신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팀 미션을 수행한다. 그들의 능력을 보고 있자니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무엇보다 엄청난 운동 자극 영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가 속한 기지는 생존에 녹록지 않은 공간이었다. 다른 팀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천막 하나로 이뤄진 텐트였기 때문. 그는 "재밌고 즐거웠던 추억"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부동산 사기’의 비밀
귀뚜라미가 자장가를 불러주고, 아침에 얼굴이 간지러워서 깨면 거미가 붙어 있어요(웃음). 저희 기지는 천막 하나밖에 없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니 장작에 불도 잘 안 붙었죠. 불 피우는 데만 한참이 걸렸어요.
정말 날것 그대로네요.
식량도 직접 구하고 물도 우물에서 길어 마셨어요. 하나하나 돌아보니 재밌네요. 팀원들이 배가 고프니까 나중엔 해안가에서 게를 잡아 오더라고요. 한번은 기지전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서 하루 종일 쫄쫄 굶기도 했어요. 촬영 끝나고 가장 먼저 초코파이를 사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웃음).
초반부 전략을 짜는 신이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경호원의 특성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보통 경호원을 그저 VIP 옆에 서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경호원은 행사 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예측해요. 서 있을 위치와 경호 주안점을 정하고요. '사이렌: 불의 섬’에선 주어진 정보가 몇 개 없었어요. 간단한 규칙을 듣고 각 팀 성향에 따라 경로를 예측해봤죠. 이걸 기반으로 계획을 수립했고 실제로 예측은 맞아떨어졌어요. 어디와 어디가 동맹을 맺어서 어디부터 떨어질 거다, 그런 거요. 저희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비가 낫다 판단했어요. 기지가 멀리 떨어져 있어 달려나갈 동안 전투가 모두 끝나버렸거든요.
기지 위치 때문인지 경호 팀 분량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부동산 사기 피해자"라는 말도 하더라고요(웃음). 저희도 기지를 처음 봤을 때 '이건 아니겠지. 촬영 팀이 들어갈 천막일 거야’ '기지가 맞다면 텐트를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나 보다’ 생각할 정도였어요. 아쉽게도 편법은 통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기량을 더욱 보여주지 못해 아쉽진 않나요.
재미 삼아 이렇게 말하는 거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출연자 몫이고 방송 분량을 편집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제작진 몫이라 생각해요. 분량이 많진 않았어도 정말 많이 노력했다는 건 리더로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호원 정장 재킷도 잃어버렸다고요.
갯벌에서 경기할 때 손이 미끄러워 슈트 재킷으로 감싸 잡다가 잃어버렸어요. 제작진이 열심히 찾으려 힘써주셨는데 결국 못 찾았죠. 떨어뜨렸다가 갯벌이 재킷을 먹어버린 거예요. 아마 썰물이 가져갔겠죠? 혹시나 어부분들이 무궁화 손수건이 들어 있는 재킷을 발견하시면 꼭 연락해주세요.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들지 않았는지요.
모두가 힘들었을 거예요. 직업의 명예를 걸고 나왔잖아요. 개인전이면 모르겠는데 팀전이다보니 제가 못하면 '이수련’이 못하는 게 아니라 '경호원’이 못하는 게 되잖아요. 다들 그런 부담이 컸죠. 각자 아프고 피곤했을 수 있지만 힘들다고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사이렌: 불의 섬’을 통해 전달하고픈 메시지도 있었나요.
저는 어렸을 때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을 했어요. 흉터가 가슴 쪽에 있는데 가끔 그걸 본 분들이 "아팠겠다" "숨 쉬는데 괜찮아?" "보기에 안 좋은데"라고 말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이 병은 대통령 경호관이 될 때도, 여배우 활동에도, '사이렌: 불의 섬’에서 경쟁할 때도 장애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인지 저와 같은 병을 가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했는데, 이렇게 씩씩한 걸 보면 (우리 아이도) 뭐든 하겠다"면서 많이들 연락하세요.
이수련은 이렇게 덧붙였다.
"멋있는 사람엔 남녀 구분이 없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이렌: 불의 섬’에서 소방 팀이 문을 부수고 나무에 올라가고 창문을 깨는데, 그게 여자 소방대원이라서 하는 일이 아니었잖아요. 단지 소방대원이라 할 수 있는 일이죠. 남녀 상관없이 누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생각해요."
"새롭고 다양한 도전 해보고파"
경호실에 입사할 땐 혼자 여성이었겠네요.
돌이켜보면 당시 남자 선배들이 저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웃음). 조직에 없던 존재가 나타났으니까요. 저의 등장으로 시설, 설비 등 모든 게 바뀌었으니까요. 업무에서 별다른 무시나 차별은 없었어요. 오히려 저를 더 강인하게 키웠죠. "위험한 거 네가 해" "무거운 거 네가 들어" 이런 식으로요.
2014년 배우로 전향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종군기자도 되고 싶었고요. 꿈이 너무 많아서 배우라는 직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맡잖아요. 그중 액션 배역은 캐스팅 제안이 꽤 들어왔는데, 경호원 이미지를 씻으려고 잘 안 했어요. 술집 마담, 사기꾼, 백화점 종업원 같은 기존 경력과 무관한 역할 위주로 했는데, 색다른 인생을 경험해보고픈 바람 때문이었죠. 여러 연기를 하려면 제가 먼저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요.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2’에서 맡은 배역인데, 하루에 치킨을 세 번 시켜 먹는 상간녀 역이었어요. '치킨녀’라는 제목으로 SNS상에서 꽤 유명해졌죠. 또 개봉을 앞둔 영화 중 감정을 쏟아내면서 오열하는 장면이 있는데, 연기하기가 어려워서 기억에 남아요.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최근 웹소설 '유부녀 킬러’를 재밌게 읽어서 일상생활에선 평범한 엄마, 일할 땐 킬러인 주인공 '유보나’ 역을 맡아보고 싶어요. 저랑 비슷한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체력 관리 비법이 궁금합니다.
집에 전기세가 얼마 안 나올 정도로 밖을 돌아다녀요(웃음). 경호원 시절 습관이 아직 몸에 남아 매일 오전 4시 30분이면 눈이 떠져요. 일어난 김에 운동복을 입고 집 뒤 공원을 한 바퀴 돌죠. 집에 와선 나머지 아침 운동도 하고요. 주변을 돌아다니면 재밌는 게 많아요. 예전 집 근처엔 검도장이 있어서 검도를 배웠고 요즘엔 탭댄스를 배우러 다녀요. 스쿠버다이빙, 낚시 같은 수상레저도 좋아해서 얼마 전엔 회 뜨는 기술을 배웠어요. 예전부터 일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은 있었는데 회 뜨는 법은 몰랐거든요. 요즘엔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다시 경호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지금 다시 경호원을 하진 않겠지만, 다시 태어나도 경호원은 꼭 하고 싶어요. 경호실은 20대를 보낸 곳이면서도 저를 키워준 곳이거든요. 그만큼 경호원을 통해 배운 게 많고 단순히 체력이나 무술보다 사명감, 정신력 같은 걸 크게 길러줬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기회가 닿는 대로 도전하고 싶어요. 크루즈로 세계 일주, 비행기 조종 등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아요. 무엇이든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오더라고요. 경호원이라는 직업을 잘 몰랐는데도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체력과 영어 실력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은 것처럼요.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내면서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사이렌: 불의 섬’과 같은 기회가 또 올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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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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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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