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하는 기자] 아파본 사람만이 또 다른 아픔을 껴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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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지는 연필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 딱딱한 솔방울을 궁글리며 궁글리며 용기의 얼굴을 내밀고 가야겠다는 생각 손바닥 같은 숲속 작은 사람들 곁에서 우산을 펼쳐야겠다는 생각 신앙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첫 시집을 내고 예술가라기보다는 생활인에 가까워졌다는 생각 시집을 팔아야겠다는 생각 깨진 보도블록 탓하지 않으면서 까인 무릎을 껴안아 줘야겠다는 생각 저마다 바다를 띄우고 그마다 닻을 품고 이마다 파도를 버틴다는 생각 쓰러진 볏잎들을 묶어 줘야겠다는 생각 도탑게 도탑게 골목을 돌 때마다 툭툭 솔방울이 떨어지고 작은 시집을 파는 책방이 문을 연다 똑똑 문을 열면 낱말들이 몰려와 슬픔이 무사하다는 생각 - 박송이 소심한 책방,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 시인의일요일, 2022. 여름의 입구에서 눈 내린 벌판을 상상한다.
"문을 열면 낱말들이 몰려"온다는 시인의 "책방"에는 긍정의 슬픔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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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지는 연필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
딱딱한 솔방울을 궁글리며 궁글리며
용기의 얼굴을 내밀고 가야겠다는 생각
손바닥 같은 숲속 작은 사람들 곁에서
우산을 펼쳐야겠다는 생각
신앙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첫 시집을 내고 예술가라기보다는
생활인에 가까워졌다는 생각
시집을 팔아야겠다는 생각
깨진 보도블록 탓하지 않으면서
까인 무릎을 껴안아 줘야겠다는 생각
저마다 바다를 띄우고
그마다 닻을 품고
이마다 파도를 버틴다는 생각
쓰러진 볏잎들을 묶어 줘야겠다는 생각
도탑게 도탑게 골목을 돌 때마다
툭툭 솔방울이 떨어지고
작은 시집을 파는 책방이 문을 연다
똑똑 문을 열면 낱말들이 몰려와
슬픔이 무사하다는 생각
- 박송이 「소심한 책방」,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 시인의일요일, 2022.
여름의 입구에서 눈 내린 벌판을 상상한다. 시인의 책상에는 원고 더미가 소복이 쌓여있을 것이고, 쓰다만 문장들은 자기 차례가 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얗게 펼쳐진 설원 앞, 시인은 옷깃을 여미기보다 “연필”을 든다. “문을 열면 낱말들이 몰려”온다는 시인의 “책방”에는 긍정의 슬픔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내재된 슬픔은 세상을 연민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솔방울”, “우산”, “시집”, “무릎”, “파도”, “볏잎”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꼬리는 결국 “작은 시집을 파는 책방”에 도달한다. 나를 둘러싼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맞닥트리는 건 시인의 숙명. 결국 “슬픔이 무사하”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시인의 하루가 아닐까.
살다보면 문득 튀어나오는 낱말들에 자신을 투영할 때가 있다. 낱말들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시에서 걸어 나와 상처를 입히기도,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아마도 시인은 시를 쓰는 내내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늘 소통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시인은 “시심의 우물을 고요히 들여다보면서 한 바가지씩 길어 올리고 싶다”고 했다. “예술가”가 아닌 “생활인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다시금 되새겨본다.
장마가 시작됐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누군가의 마음을 적시기도 하지만, 아프게 때리기도 할 것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또 다른 아픔을 껴안을 수 있다. 여기저기 “깨진 보도블록”이 있다해도 “까인 무릎을 껴안”는 마음이 필요한 때다. 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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