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쟁력 앞세워 아이돌급 인기 누린 여자배구, 이대로는 위험하다

남정훈 2023. 7. 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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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출범 초중반 인기를 주도한 것은 남자부였다. 삼성화재-현대캐피탈의 ‘양강’ 구도에 대한항공이 도전하는 구도, 여기에 제7구단으로 창단한 OK금융그룹우 창단 2년차였던 2014~2015시즌과 2015~2016시즌 연거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OK금융그룹이 우승을 차지한 두 시즌의 남자부 시청률은 평균 1%를 넘어서며 ‘킬러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한동안 남자부 인기에 편승하던 여자배구는 2012 런던 올림픽 4강 신화를 계기로 국제경쟁력을 무기로 삼아 조용히 인기를 키워나갔고, 지금은 학폭 사태로 퇴출됐지만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를 앞세운 간판스타들의 파워에 힘입어 남자부의 인기를 따라잡았다. 인기의 척도 중 하나인 중계 시청률에서 2019~2020시즌에 남자부 0.83%, 여자부 1.05%로 사상 처음으로 역전한 게 그 증거다.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 한국 어드바이저 김연경이 경기가 끝난 후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1년 밀려 2021년 개최된 2020 도쿄 올림픽은 역전된 남녀부의 인기를 한층 더 공고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의 올림픽 마지막 도전, 이른바 ‘라스트 댄스’로 관심을 모았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은 대회 전 전망을 뒤집고 4강 신화를 이룩해냈다.

2000년 시드니 이후 20년 이상 올림픽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한 남자배구에 비해 2012 런던에 이어 2020 도쿄까지 4강신화를 이룩해낸 여자배구는 국제경쟁력을 앞세워 김연경을 비롯해 김희진, 이소영 등 주축 선수들은 웬만한 아이돌급의 인기를 구가하며 ‘언니부대’를 몰고 다녔다. 2022~2023시즌 평균 시청률은 남자부 0.57%, 여자부 1.16%로 여자부가 두 배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됐다. 도로공사의 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으로 끝난 2022~2023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은 V리그 역사상 최고치인 3.40%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2일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끝난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은 앞으로 여자배구가 국제경쟁력을 앞세운 아이돌적인 인기를 몇 년 안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하게 한 대회다.

홈에서 열린 2023 VNL 3주차에서 한국이 치른 4경기에서 여자배구 팬들은 승패에 상관없이 열광적인 응원을 보여줬다. 점수차가 5~6점차 이상 크게 벌어져 승패가 결정되어도 팬들은 대표팀 선수들의 포인트 하나하나에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보내줬다. 여자배구 팬덤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김연경이 대표팀에 없어도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대로 거듭된 패배는 팬들을 하나 둘씩 떠나게 할 수 있다.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내셔널리그(VNL)' 3주차 대한민국과 폴란드의 경기에서 0대3으로 완패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1
2일 폴란드전에서도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트 스코어 0-3(23-25 18-25 16-25)으로 완패했다. 튀르키예와 브라질에서의 1,2주차 각각 4전 전패로 0승8패로 홈인 수원으로 돌아온 대표팀은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반등을 기대했지만, 홈에서도 경기력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공수에 걸쳐 약점을 노출하며 네 경기 모두 패했다. 이번 VNL 12경기에서 36세트를 내주는 동안 따낸 세트는 단 세 세트에 불과할 정도로 이제 세계무대에서 한국 여자배구의 수준은 철저하게 변방으로 밀려났다. 10년 이상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김연경의 은 퇴, 세대교체라는 핑계를 대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성적표다.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스페인) 감독 부임 이후 여자배구의 국제경쟁력은 처절하게 망가졌다. 2일 폴란드전 패배로 2023 VNL 12전 전패, 지난해 VNL에서의 12전 전패를 포함하면 세자르 부임 이후 VNL 24경기 모두 패배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의 1승4패까지 합치면 세자르 부임 이후 통산 1승28패. 2020 도쿄 올림픽의 ‘4강 신화’는 불과 2년만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럴게 거듭된 패배에도 세자르 감독은 긍정적인 말만 늘어놓았다. 이번 VNL 3주차에서 팾배 이유를 물어보면 “상대가 신체적으로 강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평균 신장이 더 작은 일본이 7승5패로 7위에 오르며 8강에 진출하고, 태국도 2승(10패)을 거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내셔널리그(VNL)' 3주차 대한민국과 폴란드의 경기에서 어드바이저 김연경이 실점에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세자르는 경기 총평에서 “선수들과 전략적으로 시도하기로 약속한 플레이가 나와줘서 기쁘다. 결과는 또 졌지만, 오늘 또 성장한 것에 기쁘다. 3주차 마지막 3경기에서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3경기에서 보여준 정신과 기세였다면 첫 경기였던 불가리아를 이겼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잡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2년 동안 VNL에서 24전 전패를 기록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묻자 세자르는 “VNL 수준에 한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현재 랭킹 포인트 시스템에서 배구 강국들이 VNL에 1군 선수들을 보내다 보니 VNL 수준이 올라갔다. 한국은 국가대표를 은퇴한 선수들 이후의 세대교체 과정에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세자르 감독은 우리를 상대로 승리르 거둔 폴란드나 도미니카 공화국, 세르비아 감독들이 한국 여자배구를 두고 칭찬한 것에 기꺼워했다. 그에게 지난 2년 간 성장했다고 할 만 것을 알려달라고 하자 세자르는 “다른 대표팀 감독들이 우리의 배구에 대해 ‘Good volleyball’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승장이 패장에게 하는 의례적인 멘트, 혹은 멕이는 멘트를 끌어올 정도로 제대로 성장한 것을 세자르 본인조차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자인한 것인다.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내셔널리그(VNL)' 3주차 대한민국과 폴란드의 경기에서 실점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날 0대3으로 완패했다. 뉴스1
세자르 감독은 부임 후 1승28패라는 처참한 성적표에도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가올 아시아선수권과 파리 올림픽 세계예선,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이끌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KOVO컵 이후의 8월 재소집 때에는 공격성공률과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공격루트와 콤비네이션을 발굴하겠다. 리시브와 수비 첫 터치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리시브가 안됐을 때, 하이볼 상황에서의 해결책을 연습 때 치중하겠다”고 덧붙였다.

세자르 감독은 이번 VNL 3주차에서 거듭된 패배 속에서도 “대표팀은 성장중”이라며 ‘성장무새’ 같은 모습을 보였다. 2년간 1번 이기고 28번을 내리 지면서도 그의 말대로 대표팀이 성장했다면, 다가올 아시아선수권이나 아시안게임에서는 성장한 모습을 과정이 아닌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아무런 결과 없는, 패배로만 점철된 성장은 아무 쓸모도 없기 때문이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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