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여름방학 특강 접수,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나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3. 7. 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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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일타강사 대신 진로 체험

중학교 3학년 때인 지난해 봄 3월. 아이가 자퇴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였다. 이유를 듣는 과정에서 아이가 말했다.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쓸데없이 규율을 강요하고. 교실에 앉아 있는 게 비효율적이고 내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 차라리 인강 들으면서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잘 된다고.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 진학을 빨리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대학 가면 뭐 다를 것 같니? 대학을 왜 그렇게 빨리 가고 싶어?"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학교를 다니면서는 할 수 없으니까."

"학교 다니면서 하면 되지, 왜 못 한다고 생각해?"

"엄마, 수행이 거의 매일 있고 그러다가 중간 기말 보면 또 수행이야. 시험을 위한 수행. 거기서 다른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 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면 안 하기도 어렵다고."

아이는 자퇴하지 않고 졸업했다. 고등학교도 진학했다(학교 다니는 게 이렇게 감사할 일인지 이때 처음 알았다). 이후 3모(3월 모의고사), 6모도 치렀고, 그 사이 한 번의 중간고사를 그리고 7월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 그러는 내내 나는 이상하게 1년 전 이 대화 내용이 자꾸 생각났다. 학교를 다니느라 아니 대입을 위한 공부를 하느라 내 아이가 포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솔직히 '대체 포기하는 게 뭐가 있다는 거야, 하고 싶은 거 웬만큼은 다 하고 있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포기하는 게 생각보다 많았다. 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면 해야 할 일들을 하느라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맘 편히 읽을 수 없고, 시험에 나오는 게 아니라면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차단된다. 무엇보다 겨울에서 봄이 오든 봄에서 여름이 오든 계절을 누릴 수도 없었다. 학창 시절의 낭만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학교인 듯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뭘까. 학교 생활 하면서 포기하는 게 많다고 느껴지는 상황을 덜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야자(야간자율학습) 대신 친구와 극장에 가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했고 서울로 나가 마라탕을 먹고 왔노라 고백했을 때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친구랑 같이 한다는 건 거의 하라고 했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함께 했다. 물론 나도 불안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참지 못하고 "학원 좀 가면 안 되겠니?", "이제 학원 좀 알아봐라" 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별 타격감이 없는 말일 뿐이었다.

그나마 믿는 구석이라면 아이가 진로를 일찍 정했다는 것. 학교에서 도면을 그리는 등 건축과 관련한 수업이 있는 날이면 신이 나서 조잘거렸다(평소 말이 없는 아이다). 그래서 "대학 안 가면 안 돼?"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축 일을 하려면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원 다니라고 꼬시는 재주는 없었지만 진로와 관련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중학교 때는 우연히 삼성물산에서 하는 주니어건설아카데미를 알게 되어 참여도 해봤다.

그 후로도 비슷한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체험은 초등학생 대상이 많구나, 하긴 학원 다니며 내신 등급 따기 바쁜 고등학생에게 무슨 체험 학습이겠어' 그때 내 눈에 걸려든 게 있었으니 바로 건축학교였다.

정림문화재단 청소년 과정 건축학교 소개말. ⓒ정림문화재단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정림문화재단은 한국 건축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날 재단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미디어, 교육, 포럼, 전시, 공동체 연구, 출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슬로건도 마음에 쏙 들었다.

건축학교는 '건축가를 키우기 위한 전문 교육'이 아닌 건축이 가진 인문학, 공학, 예술 등 여러 영역이 통합된 '건축을 통한 교육(Learning through Architecture)'을 목표로 합니다.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통합적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프로젝트 기반의 건축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다행히 기회가 있었다. 7월 여름방학 때 고등학생을 대학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개설된다고 해서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건축의 맥락에서 비판적 사고력, 표현력, 창의력을 키워냄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구체화할 수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래, 이거다. 나는 6월 모고를 앞둔 아이에게 당장 이 사실을 알렸고 아이는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걱정인 것은 이것이 선착순 등록이라는 점. 얼마나 몰릴 것인가. 나는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수강신청의 날을 기다렸다. 아이돌 공연이나 유명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을 예매하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설마 사이트가 다운되고 그런 일은 없겠지? 그래도 방학 때 진로에 대해 이렇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사람들 관심도 나처럼 높지 않을까?'

방학 때 진로에 대해 이렇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사람들 관심도 나처럼 높지 않을까? ⓒ정림문화재단

오전 11시 땡 하고 온라인 접수가 시작되었고 참가접수 공란을 순차적으로 채우면서 접수가 끝났다. 혹시 몰라 교육비도 바로 입금했다. 교육신청이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보고 나서야 안도했다. 내가 우려한 조기마감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명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하루 만에 마감이 되지 않은 걸 보면(오히려 정족수 미달로 폐강이 될까 봐 걱정이다).

지난주 전화상담 때 담임선생님은 말하셨다. 고1 여름방학이 성적을 올리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그 중요한 기간에 일타강사가 있는 학원이 아니라 건축학교를 등록한 나란 엄마. 그리고 그 딸. 너도 나도 '의대 못 가면 약대'를 선호하는 지금의 입시 분위기로 본다면 좀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내 주변에 학원가 여름 서머스쿨을 알아보는 엄마는 있어도 진로체험을 알아보는 엄마는 없으니까.

그나마 이럴 때 위안이 되는 건 「여덟 단어」를 쓴 박웅현 선생의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무엇인가' 하는 본질을 생각하라는 조언이었다. 나의 본질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시대가 본질,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는 책에서 썼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가 본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프로게이머가 아닌 나에게 휴대폰 게임이 내 스트레스를 풀어주겠지만 5년 후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본질은 결국 자기 판단입니다. 나에게 무엇이 진짜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봐야 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선택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국영수 킬러 문제로 야단법석인 세상을 유유히 흘려보내며 진짜 미래의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가고 있는 거니까. 아이에게도 이 말을 이야기를 해주면서 물었다.

"그런데 말야, 너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해?"

"본질? 그게 뭔데?"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너한테 가장 중요한 거?"

"그건... 나지. 나."

"오, 그걸 알고 있는 건 굉장히 좋다. 너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건 중요한 거 같아. 학교 갔다 와서 집에 오면 집중 안 된다고 핸드폰만 하지 말고 책도 좀 보면서 너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

"나... (이미) 생각 많이 해."

"그래. 생각 많이 하지. 그러면 넌 이젠 생각이 아니라 진짜 행동해야 할 때 아니야?"

"엄마는... 내가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 진로도 일찍 정한 거야."

"아, 그런 거였어?"   

무슨 대답을 하나 궁금한 마음에 그냥 한번 던져본 질문인데 꽤 많은 소득이 있던 대화였다. 적어도 5년 후 이 시간이 딸에게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겠구나 싶고. 지금 성적을 이유로 막연히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는 것도 다행이다 싶고.

이 아이가 나중에 고1 여름방학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몹시 궁금하다. 같은 꿈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건축의 맛을 0.00001%라도 느껴볼 수 있었던 뽀시래기 시절의 추억 한 스푼 정도 되려나. 그거면 되었지 뭐. 집과 학원을 오가느라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다 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렇게 믿으련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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