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저하에 적자, 횡령 사건까지…뭘 해도 꼬이는 CJENM
콘텐츠 유행 선도해왔는데…실험적 시도도 줄어
‘판도라’ ‘이브’같은 막장도…내부선 “기획 과감성 사라져”
티빙 적자에 스튜디오드래곤 횡령까지 ‘엎친 데 덮쳐’
“전 세계인이 세 달에 한번 한국 영화를, 일주일에 한 번 한국 드라마를 볼 때까지, 하루에 한 번 한국 음악을 들을 때까지 대한민국 창조경제를 응원하겠다.” 씨제이이엔엠(CJENM)이 2013년 홍보 영상에서 내놓은 각오다. 10년 뒤 케이(K) 콘텐츠는 글로벌 문화의 중심에 섰다. 지상파 중심의 콘텐츠 시장이 다채널화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까지 온 데는 2006년 <티브이엔>(tvN) 개국이 도화선이 됐다.
그랬던 씨제이이엔엠에 무슨 일이? 티브이는 물론, 오티티 티빙까지 ‘킬러 콘텐츠’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씨제이이엔엠 자회사인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에서 횡령 사건으로 대표가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콘텐츠 강국을 자부하던 씨제이이엔엠이 흔들리고 있다.
■ 시청률도, 콘셉트도 방향성을 잃다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위협 요소다. 방영 중인 <티브이엔> 드라마 <이로운 사기>와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1일 기준 평균시청률이 각각 3.9%와 4.9%다. 배우 천우희와 신혜선을 내세우고도 성적이 저조하다. <한겨레>가 집계한 결과, 씨제이이엔엠의 2020~2023년 드라마 약 80편(티브이엔+오시엔) 가운데 약 53편의 시청률이 5% 미만이었다. 성공 기준으로 꼽히는 시청률 10% 이상은 4년간 <일타스캔들> <슈룹> <우리들의 블루스> <갯마을 차차차>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2, <빈센조> <철인왕후> 8편이 전부다.
“티브이 본방사수 시대가 지났다”는 건 옛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신생 채널(ENA)에서 방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한두시간만 기다리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는데도 시청자들이 본방사수했다.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가 재미있으면 보는 달라진 시청 행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영우>는 1회 시청률이 0.9%에 그쳤지만 5회 만에 9.1%까지 뛰었고, 17%로 종방하며 평균시청률 10.9%를 기록했다. 씨제이이엔엠 채널인 <오시엔>에서 방영한 <경이로운 소문>도 2.7%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마지막회 11%를 기록했다.
씨제이이엔엠 내부에서는 기획의 과감성이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씨제이이엔엠 한 직원은 “과거에는 새로운 시도를 지지해주는 문화가 있었는데, 요즘은 성공 법칙을 따르는 안전한 선택을 많이 한다”고 했다. <슈퍼스타케이(K)>로 오디션 시대를 열고 ‘응답하라 시리즈’로 노스탤지어 바람을 일으켰던 일은 기억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올해 1분기 씨제이이엔엠 미디어플랫폼부문에서만 매출(2779억원)이 16.6% 줄고 영업손실 503억원으로 적자전환하는 등 상황은 다시 가성비를 따지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씨제이가 작품을 보는 선구안도 약해진 것 같다”고 했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티브이엔>도 더는 시청층이 젊지 않은데 연령대에 맞는 적절한 작품을 선택해 화제성을 챙기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이티비시>(JTBC)가 <닥터 차정숙> <신성한 이혼>을 선보이는 동안 <티브이엔>은 <판도라: 조작된 낙원> <이브>처럼 이른바 ‘지상파 막장 드라마’ 같은 작품을 내놨다.
씨제이이엔엠이 2020년 10월 내놓은 오티티 티빙의 적자가 이어지면서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당시 씨제이이엔엠은 2021년부터 향후 5년간 티빙이 콘텐츠 제작에만 5조원을 투자하고 2023년까지 오리지널 100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지난해 티빙은 영업적자가 1191억원으로 2020년 61억원, 2021년 762억원보다 늘었고, 올해 1분기 순손실만 386억원이다. 티빙에 작품을 공급한 적 있는 한 제작사 관계자는 “티빙이 채널 정체성을 제대로 못 잡고 휩쓸린 것이 실적 악화의 이유로 보인다”고 했다. <환승연애> <술꾼도시여자들> 등 소소하지만 뛰어난 기획력으로 화제몰이를 했지만, <아일랜드> <욘더> 등 내용에 견줘 규모만 키운 드라마들은 잇따라 실패했다. 특히 <지옥> 등으로 넷플릭스에서 화제작을 쏟아낸 연상호 작품을 불러들여 만든 <괴이>는 참혹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 콘텐츠 제작 역량 좀 먹는 횡령사건
2016년 설립된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실적 부진도 씨제이이엔엠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올해 화제작은 <일타스캔들>과 <더 글로리> 정도. 그나마도 <더 글로리>는 자회사 화앤담픽쳐스가 만들었고, 티빙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공개했다. 삼성증권 전망으로 스튜디오드래곤의 2분기 매출액은 1400억원, 영업이익은 1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1%, 56% 추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스튜디오드래곤 주가는 2017년 상장 이후 최저가에 근접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제작 현장에 참여하는 내부 직원의 횡령 사건까지 터지면서 김영규 콘텐츠부문 대표이사가 사임했다. 스튜디오드래곤 쪽은 “부정행위가 콘텐츠 제작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한 제작사의 관계자는 “스튜디오드래곤은 씨제이이엔엠 자회사여서 꾸준히 내부 감사를 받아왔는데도 횡령이 일어났다는 것은 내부 구멍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제작 현장의 전근대적 관행을 정리하지 못하면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콘텐츠 제작 역량을 좀먹을 수밖에 없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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