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제임스 러브록 “지구는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자가 조절할 줄 아는 유기체”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3. 7. 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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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불가능해, 제임스.” 그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구의 공기 성분은 생물들에 의해서 조절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같이 말했다. 세이건은 이어서 30~40억 년 전 젊은 태양은 온도가 지금보다 30%나 더 낮았을 텐데 어떻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을 만큼 지구가 그렇게 따뜻할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 했다.
1965년 어느 날 오후,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있는 미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화성에서 생물을 찾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아이디어 하나가 갑자기 떠올랐다. 세이건과 생물학이 아닌 물리학적 방법을 써서 화성에서 생물체를 발견할 수 없을지 논의하던 중이었다.

이때 그는 지구의 대기 구성이 이웃한 행성들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화성과 금성의 대기층은 전적으로 이산화탄소로 구성돼 있고 산소와 질소 수치는 1% 미만에 가까운 반면, 지구는 질소와 산소가 99%를 차지하고 이산화탄소가 0.03%에 불과했다.

생물이 공기 성분을 바꾸는 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기후까지도 조절했던 게 아닐까. 러브록은 세이건의 반응과 궁금증을 듣고서 생각이 번쩍거렸다. 마치 섬광처럼. 지표면의 생물들이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상태로 지구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지 않았을까. 이 같은 생각을 떠올린 그는 자신의 가설을 촘촘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3년 뒤, 러브록은 뉴저지주 프린스턴대에서 열린 지구 생물기원을 주제로 한 학회에서 가이아 가설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1979년에는 대중들을 겨냥해 책 『가이아: 지구 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출간했다.
책에 따르면, 45억 년 전 탄생한 지구에는 초기 초신성 폭발이 남긴 방사능 잔해들이 치명적일 정도로 많았다. 젊은 태양의 빛은 지금보다 30퍼센트나 약했다. 생명체의 생존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고, 화성이나 금성처럼 언제라도 유독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35여 억 년 전, 지구에서 우연히 생명체들이 탄생했고, 진화를 거듭해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까지 나왔다. 광합성을 하는 생물체들은 태양광 에너지를 수확해 무한한 먹거리와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구는 외부 자극과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응하는 자가 조정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기 구성을 생명 친화적으로 바꾸고, 해양의 물 역시 변화시켰으며, 토지도 생명체가 살기 좋도록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마침내 현재의 모습으로 재구성한 뒤,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도록 해왔다. 즉, 지구 전체를 살아 있는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자가 조절할 줄 아는 유기체로 보는 이른바 ‘가이아 이론’이다.

“우리는 가이아를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complex entity)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살기 적합한 물리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하는 거대한 종합체로 할 수 있다.”(56-57쪽)
가이아(Gaia)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으로, 지구 생물을 어머니처럼 보살펴주는 자비로운 신이다. 여기에선 지구의 자가 조절 능력을 구성하는 복합적인 실체를 은유하는 말로 쓰였다. 명칭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그의 친구이자 소설가 윌리엄 골딩이었다.

대기 속 유독 기체들의 농도나, 바닷물의 염도가 몇 십 억 년 동안 큰 변동 없이 생명체의 생존에 적합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생물권과 토양, 해양과 대기 등 자신이 가진 모든 요소들을 적절히 조절하는 지구의 자가 조정 능력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서 지구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리 화학적 환경을 활발하게 변화시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지구의 자가 조정 능력은 사이버네틱 시스템의 속성을 띠고 있다고, 러브록은 분석한다. 즉, 수시로 변화하는 제반 조건들을 극복하면서 예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기계적 매카니즘적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취지다. 예를 들면, 순간순간의 기후 변화를 감지하고서 땀을 흘리거나 몸을 떨거나, 음식물과 지방을 연소시키고, 피부와 사지로 뻗어 있는 혈관의 혈류량을 조절하는 몸의 여러 요소와 기능을 활용해 36~37도 사이의 적정 체온, 항상성을 유지하는 우리 몸의 사이버네틱 시스템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지구는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생명체가 살아가는 터전인 토양과 해양, 대기 등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적절히 활용해 비교적 안정적이고 균일한 상태, 즉 항상성을 유지한다.

“수억 년이라는 오랜 기간 별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왔던 생물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조사해보면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과거 그 어떤 경우에도 6%를 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현재 바닷물의 염도가 3.4%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만약 과거 한때 염도가 4%에만 이르렀더라도 해양생물은 우리가 현재 화석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종류들과는 전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187쪽)

러브록의 주장은 지구에 대한 기존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처음에는 학계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다. 일부 비판자들은 과학적 개념을 신화 속 허구 인물로 은유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핏대를 세우기도 했다. 프랑스 노벨상 수상자 자크 모노조차 자신의 책 『우연과 필연』에서 러브록을 전일주의자로 규정한 뒤 “대단히 우매한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진실은 늘 나중에야 천천히 걸어오는 게으름뱅이. 제창 당시에는 가설에 불과했지만, 1980년대 후반 신과학을 선도하는 주요 학문 분야로 부각됐으며, 1994년 옥스퍼드대에선 ‘자가 조절적 지구’라는 타이틀의 과학자들 모임을 결성하는 등 지지세가 확대됐다. 결국 50여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는 지구의 역사와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에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이론적 지위를 획득했다. 책 역시 과학계뿐만 아니라 환동운동계, 철학계, 종교계에서도 기념비적 저서이자 필독서로 읽혀졌다. 특히 기후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인류세 시대엔 기후문제 타개의 실마리를 담고 있는 중요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저자 러브록의 사망 1주기를 앞두고 2000년 개정 증보판을 바탕으로 19년 만에 개정증보판 『가이아』(홍욱희 옮김, 갈라파고스)가 출간됐다. 2016년판 서문을 추가했고, 한국어 문장을 다듬었으며, 달라지거나 틀린 용어를 바로 잡았다. 가이아 이론은 도대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이아 가설은 자연을 반드시 우리가 정복해야만 하는 본원적 힘을 가진 대상으로 간주하는 이제까지의 독선적 견해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이다. 또한 이 가설은 행성 지구를 아무런 목적 없이 태양계 주위를 방황하는 애달픈 우주선으로 표현하는 비관적 견해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58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및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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