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범죄, 로코와의 만남…여름맞이 ‘호러’의 새로운 흐름들[스경연예연구소]
주인공이 길가의 반사경을 바라보거나 집안의 거울을 바라볼 때 언뜻언뜻 스쳐 가는 검은 실루엣. 귀신이 나타났다. 앵글에서 갑자기 사라진 귀신은 다시 주인공이 정면을 바라보면 훨씬 가까운 곳에 버티고 있다.
과거보다 훨씬 발달한 특수분장의 덕으로 그 오싹함은 더한다. 그런데 줄거리를 뜯어보면 단순히 놀라게 하려고 쓴 장치는 아니다. 훨씬 더 복잡한 속내는 추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여름의 대표장르, 호러의 새로운 변신이다.
늘 여름철 안방극장과 호러장르는 짝꿍처럼 붙어 다녔다. 굳이 과거의 명작 ‘전설의 고향’ 시리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호러장르는 흥행성이 따르지 않는 시기라면 또 단막극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며, 여름이면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소개하곤 했다.
최근 호러는 다시 안방극장의 최전선으로 전진 배치된 모양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예전과 다르다. ‘복합장르’라는 대세 아래 많은 장르들과 혼합하며 다채로우면서도 그 색깔을 유지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화제가 되고 있는 SBS 금토극 ‘악귀’가 대표적이다. ‘유령’ ‘싸인’ ‘시그널’ ‘킹덤’ 등을 히트시킨 김은희 작가의 최신작인 ‘악귀’는 최근 김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다.
지난해 방송됐지만, 작품성과 흥행에서 혹평을 받았던 tvN ‘지리산’부터 김 작가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오컬트’와 미스터리를 접목하는데 몰두해왔다. 주로 권력이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비극의 아이러니를 탐구했던 그는 ‘지리산’부터 지리산의 생령(生靈)이나 토속신앙 등을 소개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이를 본격화했다.
드라마는 악귀에 씐 여자 구산영(김태리)과 악귀를 볼 수 있는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이 구산영을 위험하게 하는 악귀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나서는 내용이다. ‘지리산’에 각종 신묘한 현상을 갖다 놓고 등산객을 유인했던 김 작가는 이번에는 두 사람이 전국의 악귀를 찾아가는 구성을 시도했다. 시청률 역시 일찌감치 10%를 넘어서 흥행을 예감하게 한다.
ENA의 월화극 ‘마당이 있는 집’ 역시 호러장르의 양식을 많이 차용한다. 엄밀히 말하면 범죄 스릴러에 가까운 장르지만 시체를 표현하는 방식과 살인범을 찾는 과정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앵글의 구도와 무채색의 색감은 호러영화의 대표적 장치다.
드라마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문주란(김태희)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추상은(임지연)이 추상은 남편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얽혀드는 내용이다. 다소 구도가 복잡하고 분위기가 무겁다는 평이 있지만, 일단 안방극장을 매개로 신선한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KBS2에서 월화극으로 지난달 26일부터 방송된 ‘가슴이 뛴다’는 호러장르의 양식에 아이러니하게도 판타지와 로맨틱 코미디의 전개를 합쳤다. 호러영화의 단골 등장인물 뱀파이어와 인간미를 찾을 수 없는 여자가 동거를 시작하며 인간성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통해 긴장감을 주지만 선우혈(옥택연)을 비롯한 인간들 주변의 뱀파이어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러니가 있다. 과거 로봇이나 AI를 다뤘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주제다.
호러의 양식이 로맨틱 코미디에까지 이종교배되면서 장르 사이의 시너지 효과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실험하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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